중국 역사서 "수서"를 보면 이런말이 나요죠
“진(陳)나라를 평정할 때, 한 전선이 표류해서 바다 동쪽의 담모라국에 도달하였다. 이 전선은 백제를 경유하여 돌아왔는데 이 때 백제왕 창(위덕왕)은 물자를 후하게 보내고 진을 평정한 것을 축하하는 사절을 같이 파견하였다. (중간 생략) (백제에서) 남쪽바다로 3개월이나 걸리는 먼 곳에 담모라국이 있는데 남북이 천여리이고 동서가 수백리에 이르고 그 땅에는 노루가 많이 있고 백제에 부용되어 있다.”
平陳之歲 有一戰船 漂至海東聃牟羅國 其船得還 經于百濟 昌資送之甚厚 并遣使奉表賀平陳 髙祖善之下詔曰百濟王既聞平陳逺令奉表往復至難若逢風浪便致傷損百濟王心迹淳至朕已悉知相去雖逺事同言面何必數 然璋内與髙麗通和挾詐以窺中國七年帝親征髙麗璋使其臣國智牟來請軍期帝大悅厚加賞錫遣尚書起部郎席律詣百濟與相知明年六軍度遼璋亦嚴兵於境聲言助軍實持兩端尋與新羅有隙每相戰爭十年復遣使朝貢後天下亂使命遂絶 其南海行三月 有聃牟羅國 南北千餘里 東西數百里 土多麞鹿 附庸於百濟
기존에 담모라국을 제주도라고 생각했던 역사학계의 이 기록은 다른 역사 해석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담모라국이 사실은 대만이였을지도 모른다 이지요. 근거는:
) 수나라의 전선 1척이 황해바다를 건너 제주도에 표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중국 동부연안에서 제주로 오려면 횡단항해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국의 내해인 발해만으로 올라갔다가 한반도쪽으로 내려오는 연안 해류를 타야한다. 그렇다면 고구려 수군에게 걸리게 되어있어 그렇게 표류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담모라국은 중국 동부연안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
2) 담모라국은 백제에서 남쪽바다로 3개월 걸린다는 먼 거리에 있다. 우선 이 기록은 제주도와 맞지 않는다. 반도사관으로 볼 때 백제의 충남 해안에서 제주도까지 3개월은 커녕 3주도 걸리지 않는다. 3일에서 최대 일주일 정도면 충분할 것으로 본다.
3) 수서에 기록된 담모라국의 크기는 동서 수백리이고 남북 천여리 된다 하였으니 담모라국의 모양은 남북으로 길쭉한 모양이라 하겠다. 그런데 제주도는 동서 축이 75km, 남북 축이 35km로 동서로 길쭉한 모양의 섬으로 사서상의 담모라국과는 크기는 고사하고 우선 모양부터 다른 섬이다. 대만은 동서간 144km 남북간 386km로 사서의 기록과 크기도 비슷하고 모양도 남북이 길쭉한 모양이다.
4) 대만은 노루가 많은 섬이다. 예전에 대만은 이주(夷州)로 불렸다. 참고로 이주의 이(夷)자와 대만의 대(臺)자는 같은 글자로 봐야 한다. 후한서 동이전 왜조에는 “사방이 산과 골짜기로 둘러싸여 있고, 사람들은 머리를 빡빡 깎고 녹각(鹿角)으로 창을 만들어 전쟁에 쓰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대만의 서안에는 녹항(鹿港)이라는 항구가 있는데 주 거래 품목이 노루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동지나 해상에서 태풍으로 조난당했을 때 배는 대만지방으로 표류한다고 했다. <삼국지 오서>에 따르면, “단주(亶州)는 바다 가운데 있는데, 거기 사람들은 때로는 회계(會稽 절강성)에 와서 포목을 사간다. 회계의 동치현(福州) 사람들이 배로 또는 태풍에 조우해서 류이(流移)해서 단주에 닿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10952§ion=section78 (여기에 정보 더 있으니 보고싶으시면 보세요)
꽤 흥미로운 기록인데...
확실히 저 기록을 보면 담모라는 대만이 맞는것 같습니다. 어쩌면 담모라랑 탐라는 다른거였을지도...
근데 정말 백제가 대만을 부용국으로 삼았던걸까요?
명사
(1)
대국(大國)에 딸려서 지내는 소국(小國).
네이버 한국어 사전 부용 뜻입니다. 중국 기록에는 대만이 백제에 "부용"해 있다 썻지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아마 백제가 옛 홍콩, 마카오, 칼커타같이 서양애들이 동양에 새운 무역 식민지 도시같은걸 하나 대만에 세워서 원주민들과 무역을 하고 그 과정에서 백제를 부용하는 소규묘 세력이 생겼거나 한건 아닐까...추측해봅니다.아무래도 고고학적으론 증거가 부족하긴 하니...아직 발굴이 잘 안된걸수도 있고요 물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반박 댓글은 안쓰겠으니 걍 생각들을 막 써주시면 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