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여러 중국 고지도와 구글맵 지명 띄워놓고 직접 해석하면서 설명하는 사람은 유투브에 저 사람 뿐이지 않나싶네요.
일반적인 재야사학자들보면 지도 지명의 객관적인 설명없이 카더라 카더라 장님 문고리 잡다가 자기 뇌피셜만 대충 풀다가 끝냅니다.
무지렁이가 보더라도 직관적으로 신빙성 차이가 날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무지성으로 배운 어릴때 국사시간에
'교과서에 그려져있던 지도'는 오래전에 만들어진 고지도가 아니라
'황국식민사학에 이론을 참고하여'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합의로 만든 뇌피셜 지도일텐데
나를 보고 자꾸 남을 비방하고 조롱하는 사람으로 몰더니 이제는 대화하기 싫다고 혼자 도망치기입니까;; 왜 해명을 안하고 비열하게 그렇게 구는건지. 하기는 그렇게 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으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죠. 나도 더 이상 정치꾼 수법으로 남을 대하는 그 쪽하고 대화하기가 염증이 나던 차이니 한 마디만 합니다. 남을 기만하고 물 먹이려고 들 시간에 사서 탐구나 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예. 백번 양보해서 제가 위구르 님께는 잘못을 했다고 합시다.
스파게티님이랑 위구르님 두 어르신 싸우시는데 껴들어서 죄송합니다.
이 무의미한 댓글들 말고 화제를 바꿔봅시다! 제발 좀!...
혹시 위구르님께서는 본문의 구글맵 영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냥 헛소리다.라고 치부하지 마시고 고견을 부탁드립니다. 17분이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지만..
한번 보시고 고견 부탁드려요.
제가 보기에는 참신하고 새로워서 그렇습니다. 정말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저는 사실 진짜 이런게 궁금합니다.
저도 궁금해서 절반까지 보긴 했는데 어질어질합니다. 두 가지 례만 들자면 4:25에서 지금의 운성시 부근이 요동과 요서라고 하는데 어떤 사서를 봐도 그런 식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 없습니다. https://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75202& sca에 따르면 지금의 영정하가 요동과 요서의 기준인데 운성시의 훨씬 북쪽에 있습니다. 또 사기 월절서에는 전국시대의 조나라와 제나라, 연나라가 소유한 지명이 열거됐는데 공통적으로 요동이 있음으로 보아 지금의 북경에서 산동성 북계에 이르는 곳이 요동으로 불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서 기록들 중에서 그 둘보다 요동이 더 멀리 위치했다고 묘사한 기록이 어디있습니까?
이어서 4:34에 영락진이라는 말을 가지고 영락이라는 연호를 쓴 광개토태왕이 주둔했던 곳이라고 설명을 하는데 '단순히' 지명만 가지고 그렇게 보는 수준이 한심했습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십시오. 영락(永樂)이라는 말을 쓴 임금이 광개토태왕 뿐입니까? 보다 최근에 명나라의 3대 임금인 주체가 영락제 아닙니까? 그럼 그 영락제가 주둔했던 곳이라고 오로지 지명만을 가지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반박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론 이런 시도가 전례가 없어서 특수한 가치가 있긴 하지만 더 다듬고 사료적 근거가 뒤받침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고 고지도나 지명만으로 추측을 하는건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꼴입니다
그 요주가 대청광여도에서는 위치가 확인이 됩니다.
동일하게 요주가 기록으로 확인되는 고지도는 아주 많습니다.
우적도(1136년 송), 천하고금대총편람도(1666년 조선), 대청광여도 (1785년 청)
요동성이 요주고 그 위치까지 고지도들에 교차검증된다는데 말을 더해서 뭐하겠습니까?
일단 제가 올린 대청광여도 해설영상을 참고하면 좋으실것 같습니다.
굳이 반박을 해보자면 위구르님이 말씀하신 4:25는 운성시에 대해 영상에서는 '요동이다 아니다'라고 언급하고 있지않습니다. 그곳은 소금호수고 고대에 소금은 전쟁물자고 강력한 재화입니다. 고구려가 강성했을때는 거기까지 영역이 미쳤을것이고 나중에는 뺐겼겠죠. 영락진이 광개토대왕과 연관이 있다는게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그때는 강성했다'로 해석하는게 옳지않나 싶습니다.
이 또한 여러 의견중에 하나로 보시면 될것 같습니다.
어느 하나 진리라는 정답은 아직은 없겠죠.
오히려 구글맵 해설에선 지명을 토대로 요서 진평2군 해석도 쉽게 가능하지 않나 싶네요.
대청광여도에도 진의 지명이 나오지 않습니까?
영락진에 대해서 영상 설명에 보면 영락진도 있고,보셔서 아시겠지만 영락궁도 있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제가 확인해보니 영락궁도 동일하게 구글로 검색하면 확인이 됩니다.
물론 영상에서 해설하는 사람도 영락의 호가 '광개토대왕'과 '명나라떄 3대 영락제'라 있다고 말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락궁을 찾아보니 도교의 4대 사원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불교도 아니고 도교?!!
몽고때 불에타서 다시 증축을 했나봅니다.
최소한 명 황제의 영락을 뜻하는건 아닌것 같네요.
도교 8선중에 呂洞賓 을 기렸다고 하는데, 진실로 그랬는지 시대가 지나 나중에 바꼈는지 이것은 더 탐구 해봐야 알것같고
영락궁이란 건물은 제쳐두고 해석을 해야할지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는 영락현 지명 자체가
북위(386~534) 때 최초로 설치되었다고 나온다고합니다. 광개토대왕 아들인 장수왕 시절이죠.
한나라 때는 북평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관련 기사가 있네요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24554 글의 마지막을 연개소문의 무덤도 '영락진 뒷산인 구봉산'이다로 끝맺음을 하는데 ㄷㄷㄷ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