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해자說文解字>에 우于를 조烏[가라]라 한 것은 조烏의 어원이 구口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본어에서도 조烏를 カラス(가라수)로 읽는다. 이는 조烏가 소리에 특징적인 동물로서 어원 구口에서 파생된 ‘소리’에서 명명된 [가라]였음을 확인하는 것이 된다. 또,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조烏는 ‘여위조호呂爲烏呼’라 하여 여呂는 ‘가마귀 우는 소리’라 했다. 여呂의 초음初音은 [가라]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오즉불烏則不’이라 한 것이다. 불不의 초음初音은 [pərg]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맥족貊族의 [밝(pərg)]과 일치한다. ‘가라’族은 곧 맥족貊族이라는 것이다. 오환족烏桓族도 이와 관련된다 할 것이다. 요컨대, 선우鮮虞, 선우鮮于의 우虞, 우于는 [가라]를 음사한 것이었고 초음初音이 모두 [가라]였던 어於, 조烏, 여呂와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돌궐突厥은 [가라]족族의 일파였던 것이다. 돌突의 初音은 [달(dər)]이며 높다(고高)는 뜻으로 우리말 고어의 [달>달(dər)]이 됨으로써 돌궐突厥은 [달가라]로 재구된다. 마한馬韓, 말갈靺鞨은 가라족 가운데 자신이 서로 ‘맏이’라 칭하고 돌궐突厥은 가라족 가운데 ‘높은 가라’로 칭하면서 각각이 자기 종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를 나타낸 이름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긍지와 자부가 종족명과 함께 유전되었을 것이다.
주서(周書)에 [突厥者,蓋匈奴之別種,姓阿史那氏。別為部落]이라 하였다. 여기서 중대한 사실은 돌궐突厥이 ‘흉노의 별종’이라 했고 성姓이‘아사나씨阿史那氏’라는 것이다. 아사나阿史那는 초음初音으로 [가사라]로 재구된다. 예濊의 초음初音 [kəsər]과 동일하다.아阿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가可[ka]성聲이라 했고 나那는 [ra]로 음독되었던 것이다. 서나벌徐那伐은 [사라벌]로 읽혔으나 후에 나那가 [na]로 변하자 서라벌徐羅伐로 대체했던 것과 같은 경우인 것이다. 성姓을 예濊의 초음初音 아사나阿史那[kəsərə]로 했다는 것은 예濊의 적통임을 의미한다. 돌궐突厥의 딴 이름인 정령丁零, 고차高車, 철륵鉄勒도 모두 당 시대에서 [달가라] 음을 나타낸 이표기들인 것이다.
<상태사시중장上太師侍中狀>은 최치원이 중국 관리에게 여러 편의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을 적은 장지이다. 그 가운데 아래 기록을 볼 수 있다.
伏聞東海之外有三國, 其名馬韓卞韓辰韓. 馬韓則高勾麗, 卞韓則百濟, 辰韓則新羅也.
업드려 듣자온대, 동해 밖 세 나라가 있어 그 이름을 마한, 변한, 진한이라 합니다. 마한은 곧 고구려이고, 변한은 곧 백제이고 진한은 곧 신라입니다.
이것은 마한, 변한, 진한과 고구려, 백제, 신라의 관계를 말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논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정황이다. 그러나 당시의 중국 고위 관리 태사시중太師侍中이라면 이 관계를 잘 알고 있었을진대, 최치원이 거짓 관계를 말했을 리도 만무하다. 이를 초음初音으로 보면 사실로 드러난다. 마한馬韓이 고구려高句麗라 한 것은 앞서 논의대로 마한馬韓은 [말가라]이며 ‘가장 높은 가라족’이란 뜻이다.고구려高句麗의 공식 국호는 처음부터 고려高麗였다. 제가諸家들은 고구려高句麗를 줄인 것이 고려高麗라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고高는 당시 읽기법으로 馬(말)에 해당되는 [달 ᄃᆞᆯ]이고, 려麗는 그 초음初音이 [kərə(가라)]이므로 高麗만으로 ‘달가라’, 즉 ‘높은 가라’를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후에 려麗는 [rə(라)]로 변천함으로써 구句[kə(가)]를 넣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고구려高句麗가 된 것이다. 결국 고려高麗, 고구려高句麗는 [달(高) 가라(句麗)]였던 것이다. 백제百濟가 변한卞韓과 같다는 것은 변卞의 初音은 [bər(발)]이고 이는 후에 [밝]으로 변천하여 백百과 동일한 변천을 했기 때문이다. 제濟의 초음은 [kəsər]로 예濊의 초음과 일치한다. [부루濊, 밝濊]를 말하는 것이다. 진한辰韓이 신라新羅와 같은 것은 진辰의 初音이 [dər]이니 진한辰韓은 [달가라]인 것이다. 이는 신라新羅가 돌궐突厥과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의 돌궐突厥족은 터어키를 세우고 있는데 현재도 이 나라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역사에서 가르치고 있다. 6.25 한국전쟁 때, 터어키가 참전한 명분은 ‘형제의 나라를 돕자’는 것이었다. 최근 경주와 터어키가 국제적인 행사를 거행한 것도 양측의 혈연관계에서 시작된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