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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01 10:38
[한국사] 백제무왕,,,,무왕의 아버지는 누구이고, 그는 진평왕의 사위인가?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812  

1. 출생 

무왕의 출생 배경과 가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의 가계는 사서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1)삼국사기는 무왕을 법왕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2)삼국유사는 과부의 아들이라고 전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무왕이 못가에 사는 여인의 자식이라고 전하며, 무왕의 어머니는 못가에 사는 과부였는데 어느 날 못에서 검은 용(익산에 귀양 온 왕족)이 나타나 과부와 통정해서 아들을 낳았다고 전한다. 그 아들이 자라서 재주가 뛰어나고 용기가 있었는데 그가 왕위에 올라 무왕이 되었다고 한다. 
3)전라북도 익산의 전설에는 무왕이 연못에서 사는 용의 아들(이것은 지방관으로 파견된 왕족,담로장이라는 의미이다. 특히 연못은 저택에 부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이라는 탄생 설화도 전해 내려온다.
4)이에 비해 중국의 북사는 무왕이 위덕왕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는 혜왕과 법왕의 재위가 짧아서 나온 오해이다) 
5)구당서와 당나라로 끌려간 백제 유민들의 묘비석에는 무왕이 알려지지 않은 왕족, 부여관의 아들이라는 기록도 있다 
6) 일본 '신찬성씨록'이나 도요타씨, 오우치씨의 족보에는 진이왕으로 나타난다.  그의 존재는 조선 정종  일본의 번주 오우치 요시히로가 보낸 족보를 통해 알려졌다. 오우치는 자신이 성명왕(성왕)의 셋째 아들 임성태자의 후손이라는 것을 확인, 입증해 달라는 공문을 정종 1년(1398년) 7월에 조선으로 정식으로 보냈는데, 거기에 진이왕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
여전히 진이왕 부여관이 위덕왕, 혜왕, 법왕과 어떤 관계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 백제의 왕족으로, 일본 도요타 씨와 오우치 씨 가문의 제15세대 선조라고 한다. 일본 도요다 씨와 오우치 씨의 족보에 따르면 그는 백제 무왕의 아버지이다. 일본 도요타 씨 가문의 가계도에서는 14대조 법왕과 16대조 무왕 사이에 존재한다.

7)무왕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진이왕의 존재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가, 19세기 이규경이 중국의 묘지명을 자신의 저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인용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중국사서인 《풍속통 (風俗通)》, 《만성통보 (萬姓統譜)》, 《성보 (姓譜)》를 인용하여 “百濟國王夫餘寬生璋, 號帶方郡王。生義慈, 唐拜帶方郡王金紫光祿大夫。生隆, 熊州都督隆。生文宣, 司膳卿左衛大將軍樂浪郡公。此見《萬姓統譜》又《姓譜》”백제국왕 부여관(진이왕으로 추정)이 장(무왕)을 낳고 호는 대방군왕이다. 그가 의자를 낳으니 당나라 로부터 대방군왕, 금자광록대부를 받았다. 그는 융을 낳으니 웅주도독이고, 그는 문선을 낳으니 사선경 좌위대장군 낙랑군공에 봉해졌다. 이는 만성통보 또는 성보에 나타났다.)라고 적고 있다.

즉, 뚜렷한 무왕의 아버지에 대한 증거는 여전히 미궁이지만 다음과 같은 추론은 가능하다 

1)분명, 무왕의 부친이 진이왕 부여관이라는 기록이 있다.
2)부여관이 혜왕(부여계)이나 법왕(부여선) 더더군다나 위덕왕(부여창)은 아니다. 
3)즉, 무왕은 혜왕이나, 법왕 그리고 위덕왕 아들일 수는 없고, 그들의 방계손자일 가능성이 가장크다. 즉, 익산의 전설 흑룡은 몰락하거나 왕권경쟁에서 밀려난 왕족을 묘사한 구절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연못의 용은 그가 익산에 부임한 왕족출신 지방관(담로장)을 의미한다. 
 
 다만, 이 부여관, 혹은 진이왕이 익산에 있다가, 왜로 넘어간 임성태자(성왕의 아들)나 혹은 그 시기의 왕족일 가능성도 있다(일본에는 부여관에 대한 기록이 있으므로). 그러나 무왕의 아버지는 무왕을 익산에 홀로 남겨진 체  익산을 떠난것으로 보인다.


2. 결혼 

무왕은 역시 선화공주와의 결혼 스토리가 가장 부각되는 인물이다. 선화공주는 삼국유사에 기록에 따르면 진평왕의 셋째 딸이자, 무왕의 왕후이다.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 의하면 백제무왕의 왕후는 사택왕후로 기록되 (我百濟王后佐平沙宅積德女種善)었기에 그 실존 여부에 관한 논란이 있다. 그러나 이 가택왕후의 기록이 반드시 선화공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제왕이 두명 이상의 왕후를 두는 것은 극히 평범한 일이고, 또한 선화공주가 빨리 사망했을 상황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초년의 삶 정리 

1)그의 아버지는 몰락한 왕족으로 익산지역에 유배온 자이거나, 익산지역의 지방관으로 부임한 부여관이란 인물로, 진이왕이라는 왕작을 받은것으로 보인다. 그의 아버지는 무왕을 홀로 남겨둔 체, 떠났기 때문에(일본이 유력하다, 도요타 씨 등 족보에 등재) 무왕의 초년의 삶은 궁곤했다. 
2)그의 아버지 진이왕은 정식 백제국왕이 아니라, 무왕의 즉위 후 받은 추증이거나 혹은 백제가 왕족에게 수여한 왕작일 것이다(백제는 좌현왕, 우현왕 등 왕작을 왕족에게 수여하였다)  
3)당시 새롭게 백제의 경제력의 중심으로 떠 오르던 익산의 호족 특히(사택 씨)의 도움으로 선왕인 법왕을 대신하여 왕위에 올른것으로 보인다.
법왕과 혜왕의 치세가 합쳐 겨우 1년 6개월 남짓인 것을 보면, 무왕이 무언가 정변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무왕이 흑룡의 아들임과, (2)선대왕인 법왕이 살생을 금지를 이유로 모든 사냥도구를 없애려 했다는 기록이 그 증거이다  즉 이 정변에는 익산의 호족이 강력한 힘을 행사했을 것이고, 그  후 이 익산의 사택가문은 왕비가문이 된다. 
(사씨는 대성8족 중 하나이기는 했지만, 왕비가문은 아니었다가 성왕 때 부터 급격히 세력을 확대한다)

4.치세 
그의 치세는 신라와의 전쟁으로 시작한다. 600년 법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는데 신라와 자주 충돌하였다. 602년 신라의 아막산성(阿莫山城)을, 611년 10월 가잠성(椵岑城)을, 616년에는 모산성(母山城)을 점령하고 623년 가을에는 늑노현(勒弩縣)을 침범하였다. 633년 음력 8월 서곡성(西谷城)을, 636년 5월 장군 우소(于召)에게 명령하여 독산성(獨山城) 을 습격하였다.
한편 무왕 고구려의 남진을 견제하기 위해 수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여러 번 고구려 공격을 청하였다. 수나라가 멸망하고 당나라가 건국한 뒤에도 친선 정책을 전개하였다. 624년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당 고조(高祖)로부터 대방군공 백제왕(帶方郡公百濟王, 아마 요서의 일부에 대한 세력권을 다시 확보했을 것이다. 대방은 전통적으로 요서지역에 대한 명칭)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627년 또  군사를 동원하여 신라를 침공을 시도하였으나, 당 태종이 백제와 신라의 화친을 권유했으므로 이를 중지하였다.

5.신라와의 분쟁의 원인 
1)증조부 성왕에 대한 복수(위덕왕 -진이왕 -무왕) 
  여기서 진이왕이란, 칭호는 무왕이 왕이 된 후 부친에게 수여한 추증이거나, 백제왕족에 대한 왕작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2)아내가 된 선화공주가 신라 진평왕의 딸 이기에, 무왕은 진평왕의 사위가 되어, 무왕은 신라의 후계권을 도모할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신라와의 전쟁은 왕위계승전쟁이라는 추론 

6.신라왕위 계승전쟁이라는 추론에 대한 증거 
1)진평왕의 아들이 없이 딸만 세명 있었다.(천명,덕만, 선화)
2)신라는 아들, 딸, 사위가 모두 왕위에 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3)진평왕은 천명의 사위 용춘이 왕위에 올르면, 당연히 무왕에게도 왕위 계승권이 있음을 염려하여, 배우자가 없던 덕만을 왕위에 세운다 
4)무왕도 백제 계승권에 정당성이 떨어졌기에, 신라의 왕의계승권에 집착을 하여, 많은 재물을 신라의 서라벌에 보냈다는 기사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5) 이 때문에 선덕여왕 사망 후, 진덕여왕이 왕위에 오르고, 김용춘의 아들 김춘추 때가 되어서야 남계 왕위가 다시 확립이 된다(신라 중대의 시작) 
6)문무왕(김춘추의 아들)은 백제계와의 연관성을 지우기 위해, 신라 김씨를 휴도왕 김일제와 성한왕을 거론하며 왕위계통을 정리한다(진흥왕 때 부터, 신라는 자신들이 석가의 후선을 자처하는 등 종종 이러한 족보세탁을 했고 그로인해 여러 신라왕통에 대한 추측을 더해준다...이 휴도왕의 기사로 인해 신라의 김알지계는 흉노계통으로 보는 견해가 존재한다) 

7.반론
1)선화공주가 실존했다는 사서는 삼국유사가 유일하며, 증거가 없다 
2)무왕의 왕후는 사택씨가 기록상은 유일하다(그러나 왕후가 둘 일 수 있기에 선화를 배제하는 반론으로는 여전히 궁색하다)
3)최근에는 신라-백제 통합 후, 남은 백제 유민을 달래기 위해, 신라가 무왕의 혈통이 반은 신라계임을 조작하여 유포하였다는 설이 대두되었다. 
즉, 신라판 '신라-백제 동조동근론'이다.  

*선화의 실존인물설실존인물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줄 유물이 발견되어 논의가 가속화 될 예정이다. 익산의 왕릉급 고분인 대왕묘에서 출토된 유골이 20-40대 사이의 여성이고, 부장품 중에 신라제 토기가 있어, 선화공주 설화와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신라에서 백제로 건너온 왕족급 여성은 실존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8.죽음 
무왕은 641년 음력 3월에 생을 마쳤다. 무왕이 죽은 후 당 태종은 소복을 입고 통곡을 하였으며 현무문(玄武門)에서 애도식(哀悼式)을 거행하였고 광록대부를 추증하였다고 한다.
무왕의 능은 익산시 팔봉면 신왕리에 있는 쌍릉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고려시대에 이미 도굴된 적이 있는 쌍릉은 1916년에 조사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사비시대 능산리 고분의 묘제와 일치함이 밝혀졌다. 무왕의 능을 통해 그가 익산 태생이며 그의 성장기반이었던 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익산을 중시했던 점을 고려해 볼 수 있다.

9.결론 
1.무왕의 아버지는 익산지역에 유배온 왕족(흑룡이라는 기사)이거나 익산의 담로장 즉 지방관(연못의 용)으로 온 왕족이었다.
2.무왕의 선화공주 이야기는 신라판, 신라-백제 동조동근론일 수 있다.
(서동의 이야기가 날조일 경우)
3.무왕의 신라공격은 무왕의 신라왕위 계승전쟁의 성격도 일 수도 있다
(서동의 이야기가 진실일 경우)
4.무왕의 아버지는 진이왕 부여관이고, 그가 몰락한 왕족 즉 흑룡이였다면 진이왕이라는 칭호는, 무왕 즉위 후 부여한 추증이고, 연못의 용(익산의 지방관)이였다면, 백제가 왕족에게 수여한 왕작일 것이다. 
5. 그는 익산을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하여, 왕위에 올랐고 그의 지지세력은 8대 대성인 사택씨 가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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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ender 18-03-01 11:02
   
굿!!!!!
백제의자왕의 부왕, 무왕 부여장에 관해 많은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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