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음력9월16일
명량 해전
음력7월16일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이 궤멸되었다는 참담한 소식을 들은 선조는
도원수 권율의 휘하에서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을 다시 복직시켰다
다시 한 번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이었지만, 그는 배 한척도 지휘하지 못하는 수군통제사였다
사실 이순신은 수군이 궤멸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백의종군이고 뭐고 임무지를 박차고 나와
독단으로 흩어진 병사들을 다시 끌어모으고 버려진 군수품들을 회수하는 등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음력 8월22일 다시 한 번 그를 통제사로 임명한다는 교서가 그에게 도달했다
이때 교서에는 선조가 이순신에게 왕으로선 상당히 비굴할 정도로 용서를 구하는 어투를 사용했으며,
이는 조선 역사상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전황의 심각함과, 모친3년상 중이라 이순신이 관직을 거부할 수도 있음을 고려하여 그런 듯 하다
음력8월18일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배설이 이끌고 도주하였던 판옥선 12척이 이순신의 진영에 합류하였다
겨우 수군이라는 구색만 갖춘 상태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정에서는 차라리 수군을 폐하고 육군으로 돌리자는 의견과,
수군을 한 부대로 집합시키지 말고 여러 단위로 나눠서 각 포구나 방어하자는 의견 등이 나오는 등
수군에 대한 희망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군통제사 이순신은
"今臣戰船 尙有十二...(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있사오니...)"
라는 장계를 올리며 전의를 보였다
조정은 한 번만 수군을 믿어보기로 하였다
음력 8월 20일
이진포에 새로이 진영을 꾸린 조선 수군
하지만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배설은 임금의 교서에 절도 하지 않는 등 조정에 대한 심각한 반감을 보여주면서
현대로 치면 PTSD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고,
임진년부터 이순신을 도와주다가 칠천량에서 전사한 이억기의 후임으로 전라우도 수군절도사로 내정된
김억추는 그 사람됨됨이 미덥지가 못하였다
거기다 병사들 대부분도 자신감을 잃어 겁에 질린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이순신 본인까지 지병으로 앓아 누워버리고 말았다
음력8월21일
조선수군은 어란진으로 진영을 옮겼다
그리고 음력8월28일
왜 수군의 정찰대로 보이는 적선 8척이 출현하였다
조선수군은 자신들의 숫자가 많음에도 겁에 질려 제대로된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고,
이순신의 고군분투 끝에서야 이 정찰대를 무찌를 수 있었다
이 어란포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이 해제된 이후의 첫 승전이었지만,
동시에 왜 수군이 아직까지 활동하는 조선수군이 존재함을 깨달음과 동시에
이순신의 복직을 의심하게 만드는 전투였다
이순신 장군은 이튿날이 되자 벽파진으로 다시 진영을 옮겼다
음력9월에 들어서자 왜수군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음력9월2일 결국 경상우수사 배설이 탈영을 하고 말았다
배설의 행동이 많이 이상해진 것을 눈치채고 있던 이순신은 담담히
'배설이 달아났다'라고만 장계에 기록하였다
음력 9월7일
전선 55척으로 구성된 왜수군 함대가 어란진에 입항하였고,
이중 13척을 벽파진으로 보내 무력시위를 벌였다
이순신은 이 13척을 모두 격파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이 전투로 인해 왜군은
조선수군의 함대가 13척이 전부인것을 확인하였고, 이순신의 복직 역시 확신하였다
왜군의 대규모 함대가 서쪽으로 점점 깊숙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음력 9월15일
이순신은 대규모 전투를 예상하여 물먹인 이불을 배의 양측 난간에 걸치게 하여 총탄을 막게하고
열매 안에 물이 든 동아라는 식물을 배에 잔뜩 실어 식수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리고 진영을 울돌목 넘어 해남의 전라우수영에 함대를 집결시켰다
이순신은 이날 장수들을 불러모아
必死則生 必生則死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라고 다짐하였다
음력 9월16일 아침
초병이 대규모 왜군 함대가 접근한다고 알려왔다
병사들의 얼굴빛은 잔뜩 질렸고, 이순신은 결의에 가득차 함대를 출전시켰다
이순신의 대장선이 가장 먼정 앞장섰다
하지만 나머지 조선 수군 함대는 왜군의 규모와 급한 조류에 겁을 먹어 차마 진격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미 전의를 잃고 있었으며, 이순신을 따라 출전한것마저 놀라울 지경이었다
전라우수사 김억추는 가장 뒤에서 전의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으며,
믿음직한 장수들인
거제현령 안위, 녹도만호 송여종, 조방장 배흥립, 해남현감 류형, 가리포첨사 이응표 등 까지도
언제든지 도주할 수 있도록 후방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왜군의 선봉이 조류를 타고 급히 이순신의 기함으로 돌진해왔다
기함은 단독으로 왜군을 막아서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몇몇 판옥선이 도주의 기색을 보였고, 이순신은 호각과 초요기(집합 명령깃발)를 이용하여 겨우 그들의 도주를 막았다
초요기를 보고 몇몇 판옥선이 미적미적 다가왔다
가장 먼저 도착한 거제현령 안위의 함선을 향해 이순신이 호통을 치자 그제서야 안위는 함선을 이끌고 기함의 옆에 서서
적에 맞서 싸웠다
두번째로 온 함선은 중군장 김응함의 함선이었다
중군장의 임무는 기함의 호위였으며, 이순신이 이에 직책의 회피를 꾸짖자 김응함 역시 전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후 난전이 벌어지며 안위의 함선에 피해가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기함이 안위의 함선을 구원하는 등 고군분투를 이어나가자
녹도만호 송여종과 평산포대장 정응두의 함선이 합류하여 왜군을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