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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3-25 00:43
[세계사] 삼전도비의 비밀
 글쓴이 : RaMooh
조회 : 3,687  

삼전도비의 비밀

 


우리가 너무 당연시 하는 일들이 있는데, 삼전도의 비석에 대한 것이 그 하나이다. 단순히, 전쟁에 져서 굴욕적인 일을 당한 흔적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상식에 반하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과연 어떤 의문이 있고, 그 의문의 답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다른 의문도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만 살펴보겠다.

 


1. 삼전도비는 자발적으로 세운 것인가? 

2. 삼전도비는 승전비인가? 

3. 삼전도비의 옆에 있는 귀부는 무엇인가?

 


1.

먼저, 삼전도비를 세우게 된 과정 즉, 누가 세웠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문제는 실록을 비롯해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청나라의 요구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서, 자발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다. 간혹, 동국이 먼저 세우려하였다는 말이 들리는데 잘못된 사실이다.

 


삼전도비에 관한 기사가 일기에 처음 나타나는 날짜는 3월 12일이다. 그리고, 3월 15일자의 기사에서, 당초(當初) 마차(馬差:馬夫大의 差官)가 간절히(勤懇) 말한 것이라 하여, 청나라의 요구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당연하겠지만, 인조는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자꾸 미루려 한다. 비변사에서, 큰 이해관계가 없는 일이면서 생색은 낼 수 있는 일이라, 청나라가 다시 말하기 전에 동국이 먼저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한다.

 


자발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다른 의문이 생겨난다. 삼전도비를 세우는 것은 공식적인 요구였는가? 혹자는, 국서가 왕래할 때 빠뜨린 것을 뒤늦게 챙기는 것이라 하지만, 여러 정황상, 삼전도비는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을 뒤늦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는 성격의 문제이다. 청나라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동국이 세우는 것이며, 감사의 뜻으로 세우는 것이라, 감사를 표하는 것은 전적으로 감사하는 사람의 자유에 속하고, 기념비 등을 세우는 일은 전후 처리에 관계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부대가 직접 얘기하지 않고 차관을 통한 것이다. 비공식적인 일이라도 거절할 수는 없었을 것인데, 아마도 황제에게 아첨하기 위해 마부대가 꾸민 일로 보인다.

 


그러면, 청나라가 직접 세우지 않고 동국이 세우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굴욕감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아니다. 이미 한 집안이 되었고, 진심으로 복종하기를 바라는 청나라의 입장이므로 반감을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직접 세우나 동국이 세우나, 어차피 굴욕감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청태종이 마부대에게 시켰던지 마부대가 아첨한 것이던지 간에, 분명 대단한 영광이라 여겨서 세운 것이다. 정벌한 여러 곳 중의 한 곳에 자랑삼아 세운 것이 아니라, 동국에 세우는 것이 특별한 영광이라 생각한 것이다.

 


삼전도비를 세우는 것은 공식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명나라와 교류를 끊으라는 요구를 어겼을 때에는 군사를 일으킬 수 있으나, 삼전도비를 세우지 않았을 경우에는 군사를 일으키지 못하고, 다른 방법으로 압박할 수 있을 뿐이다. 공식적인 요구가 아닌 비공식으로 요청하고, 간절히 요청한 것은 그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즉, 직접 세우지 못할 이유가 있었거나, 동국이 세워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이다.

 


2.

삼전도비가 청나라의 승전비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삼전도비는 승전비가 아니다. 승전비는 승자가 세우는 것이지, 패자가 승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승전비를 세우는 경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어디에도 없는 일이다. 실제로, 삼전도비의 진짜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이고 그 내용도 청태종의 공과 덕을 찬양하는 것으로서, 승전비가 아닌 공덕비이다. 청나라가 세우지 않고 동국이 세웠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승전비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공덕비를 자신이 세우는 경우는 없다. 공덕을 입은 사람이 세우는 것이 공덕비이므로, 공덕을 입은 동국이 세운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대한 의문을 가져야 한다. 왜 승전비가 아닌 공덕비가 세워졌는가? 왜 승전비를 세울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왜 공덕비를 세울 생각을 하였는가?

 


왜 승전비가 아닌가? 실록이나 일기, 병자록 등을 종합하면, 병자호란은 청태종이 일으킨 의병(義兵)이다. 의병을 일으킨 것이라 청태종이 스스로 말하였고, 동국인들도 인조가 천토(天討)를 자초한 것이라 하였으므로, 승전비를 세우는 것은 너무나 부족한 평가이다. 두 나라가 서로 세력 다툼을 벌이다 전쟁이나 전투에서 이겼을 때, 그 때에 세우는 것은 단순한 승전비이지만, 하늘의 뜻에 따라 천하를 평안하게 한 것은, 하늘에 공을 세운 것이면서 동시에 천하인민에게 덕을 베푼 것이 된다. 따라서, 동국에게 이긴 것을 자랑하기 위해 동국의 심장부에 승전비를 세우는 것은, 천자가 할 짓이 아니다.

 


왜 공덕비인가? 하늘의 뜻에 따라 두 나라가 형제의 의를 맺고 천하 만민에게 평안을 주었는데, 동국이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분란을 일으켜 천하를 어지럽혔으므로, 천명을 받은 청태종이 의병을 일으켜, 하늘을 대신하여 인조와 동국의 잘못을 벌하여, 천하에 평안을 가져왔으므로 공덕비를 세우는 것이다. 또, 동국이 하늘에 죄를 지어 종사가 끊어질 수도 있었는데, 종사가 보존될 수 있게 하였으므로 동국에게 공덕이 있는 것이다. 비석의 화자(話者)는 동국의 신하이다. 청태종이 동국과 동국의 백성에게 은덕을 베푼 것이고, 청태종이 인조에게 공을 세운 것이다. 하늘에 죄를 지어 천토를 부른 인조의 잘못을 바로잡은 것이 청태종의 공이다.

 


천토란, 하늘이 죄지은 자를 벌하는 것이며, 하늘이 벌할 때는 대행자를 통해 벌하는 것이며, 대행자는 천명을 받아 벌하는 것이다. 천하에서 천명을 받을 수 있는 자는, 중국에서 천하를 통치하고 있는 천자 밖에 없다. 천자인 황제는 하늘의 대행자로서 모든 분란을 평정할 의무가 있고, 천명을 받았기에 모든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따라서, 전쟁에서 이기는 쪽이 천명을 받은 것이 되며, 전쟁에서 이기는 자가 천자가 되는 것이다. 즉, 전쟁에서 이긴 청태종이 하늘의 뜻을 받은 것이며, 하늘의 뜻을 받았으니 천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동방의 세계관이 그러한데, 구석에 있는 조그만 한반도에 자리 잡은 나라인, 동국에 이겼다고 해서 천자가 될 수 있는가? 동국을 침략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천하는 명조와 청조로 크게 양분되어 있었다. 청조가 일어나기 전의 천하는, 명조가 중국이었으며 천자였고 천명을 받아 천하를 통치하였다. 그런데, 청조가 일어나서 천하를 양분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였으며, 이를 동국이 비난하자 청태종이 동국을 침략한 것이다. 오고 간 국서 등과 홍익한과 청태종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겉으로는 동국이 형제간의 의를 어겼기 때문이라 말하지만, 진짜 이유는 천자라 자칭한 청태종을 동국이 비난하였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국의 비난과는 관계없이, 반드시 동국을 침략하여 천자로 인정받기 위해서이다. 즉, 동국과 명의 관계를 끊고, 명조에 하던 모든 것을 청조에 하도록 만드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동국이 스스로 명과의 관계를 끊고 청태종을 천자로 인정하여, 명조가 아닌 청조에 사대하였다면 병자호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광해군이든 인조이든 그 누가 임금이든 간에, 명조에 사대하고 청조에 사대하지 않는 한, 호란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국은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왜 청태종을 비난하는가? 청태종은 동국의 비난을 왜 참지 못하는가? 그것은, 진짜 천자가 되기 위해서는 동국의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동국의 사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동국은 동방의 바티칸이기 때문이다. 황제교황주의와 교황황제주의가 다투는데, 실록이나 일기 등을 비롯한 모든 고전을 살펴보면, 동방은 황제교황주의로 결론이 난 것으로 보인다. 황제가 교황을 겸임한 것은 아니고, 교황의 신분이 황제 보다 낮은 것도 아니지만, 동방은 동국이 중국의 황제를 떠받드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할 것이다. 즉, 황제를 떠받드는 것은 동국이지만 황제를 임명하는 것도 동국인 것이다. 이것이 병자호란의 진실이다.

 


[짐의 내외 여러 왕과 문무의 신하들이 짐에게 황제의 칭호를 권하여 올렸다. 너는 이 말을 듣고 이르기를 "이것이 어찌 우리 군신이 차마 듣고 참을 수 있는 말인가" 했다는데 이는 또 무슨 까닭이냐. 무릇 황제의 칭호를 올리고 안올리는 것은 너에게 달려 있지 않다. 하늘이 도우면 평범한 지아비도 천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이 재앙을 내리면 천자도 한 이름없는 사내가 되는 것이니, 네가 한 말은 심히 방자하고 망령스럽다.]

(병자록)

 


현재의 시각으로는, 인조의 말은 내정간섭에 해당하고 주제넘은 짓이다. 청태종도 굳이 이렇게 반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세계관으로는, 인조의 말은 당연한 것이고, 청태종 역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하에 천자가 둘이 있을 수 없고, 천자의 중국에 사대하여 천하를 다스려야 하는 동국의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혹자는, 동국에게는 두 배로 힘든 일이 되겠지만, 명과 청 두 나라에 함께 사대하였다면 호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지만, 두 나라에 사대한다는 것은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로서,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황제의 칭호를 올리고 안올리는 것은 너에게 달려 있지 않다’고 청태종이 말하였는데, 이는 ‘너에게 달려 있다’는 말과 같다. 황제라 칭한 청태종에 대해, 동국의 군신이 참지 않는다는 것은, 할 수만 있다면 군사력으로 정벌할 수도 있다는 말과 같다. 즉, 동국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동국의 군사력이 강했다면, 청태종은 감히 황제라 칭할 수 없었다는 말이 된다. 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청태종은, 군사력이 강했던 청태종은, 군사력을 믿고 ‘너에게 달려 있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하늘이 도우면 ~ 하늘이 재앙을 내리면 ~’이라고 부연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동국이 천자를 인정해야만 천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늘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변명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청태종이 요구하는 것은 유신이다. 중국을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꾸는 것이다. 그것을 동국이 거부하자 군사를 일으켰고, 군사를 일으킨 정당성을 얻기 위해 청죄할 것도 요구한 것이다. 그래서, 인조가 청죄의 절과 유신의 절, 두 번의 삼배고두를 행한 것이다. 천토를 당한 인조는 하늘에 청죄를 행할 수밖에 없었고, 수강단에서 천명을 내려 받아 청태종을 황제로 임명하는 유신을 행한 것이다.

 


따라서, 천하를 유신하고 천자를 임명하는 동국의 심장부에, 자신의 업적을 기록한 공덕비를 세우는 것은, 더 없는 영광이 되는 것이다. 동국을 능멸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스스로 세우게 하여 자발적인 복종심을 끌어내기 위한 것도 아니고, 단지 더 없는 영광을 얻고 싶었던 것뿐이다. 미국에서 세계야구대회가 열렸고, 메이저리그 구장에서 한국야구가 우승을 차지했는데, 구장관계자가 결승전이 열린 구장에, 한국의 우승을 기념하는 기념물을 세웠다면, 한국의 야구팬에게 얼마나 큰 영광이겠는가?

 


3.

일기에는 있는데 실록에는 없는 부분이 몇 있는데, 그 중에 주목할 만한 하나가 바로 비석(碑石)이다. 승정원일기를 제외하고는 실록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연려실기술을 참조하면, 이 비석은 첫 번째 삼배고두를 한 위치에서, 1백 보 가량 떨어진 지점에 있었던 것이 된다. 즉, 삼전도에 쌓은 수강단의 동작문에서, 인조의 걸음으로 1백 보 가량 떨어진 위치에, 비석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인조가 비석 아래에 앉았다고 한 것으로 보아서, 상당한 크기의 비석으로 보인다.

 


이 비석의 정체는 무엇인가? 삼전도와 비석이라는 두 단어만 들으면, 누구나 삼전도비(대청황제공덕비)를 말하는 것이라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삼전도비는 절대 아니다. 그러면, 그 비석은 무엇이고,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 것일까? 왜 실록에는 기록되지 않았을까? 청태종은 왜 다른 곳이 아닌 삼전도에 단을 쌓았을까? 삼전도에 수강단을 쌓은 것이 우연일까?

 


현재 삼전도비의 옆에는 귀부가 하나 있는데, 그에 대한 강단학계의 설명은 ‘청나라의 변덕으로 비석을 더 크게 만들게 되어, 이전까지 만들던 귀부가 용도폐기된 것으로 추정’이라 한다. 정말 강단학계의 추정이 사실일까?

 


추정한다.

 


삼전도비의 옆에 있는 귀부는, 인조가 앉았던 곳에 있었던 비석의 귀부이다. 그 비석을 보고 청나라가 삼전도비를 세워달라고 요구한 것이며, 그 비석에 비교하여 삼전도비를 더 크게 만들어 달라 요구한 것이다.

 


버려진 귀부와 삼전도비의 귀부는, 동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없다. 디자인 즉, 장식과 문양이 너무 다른데 가장 큰 차이는, 귀부의 판석이 있고 없고가 다르고, 거북의 머리 모양과 목의 각도가 다른데, 누구나 쉽게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부분적으로도 장식과 문양이 너무 다른데, 동시대에 만들면서 크기만 다르게 만든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무리가 따른다. 단순히 비석의 크기를 조금 더 크게 한 것이라면, 모양이나 문양 등이 똑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해야 하는데,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다. 또, 버려져서 관리가 안 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세월의 차이가 많이 난다.

 


청나라가 다른 곳이 아닌 삼전도에 수강단을 쌓은 것이 우연이 아니며, 삼전도비를 세워 달라 요구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즉, 버려진 귀부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삼전도는 남한산성과 경복궁의 중간에 위치해 있는데, 그 삼전도에 의문의 비석이 있었고, 그 곳에 수강단을 쌓고 삼전도비가 세워진 것이다.

 


버려진 귀부는, 명나라와 관련된 비석의 귀부이다. 그래서, 비석이 없어지고 귀부만 남은 것이다. 중국이 된 청나라는 그 비석을 보고, 삼전도비를 세우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동국에서는 당연히 이전의 비석과 같은 크기의 비석으로 만들려 하였고, 청나라는 명나라와의 차별을 원해서 더 크게 만들어 달라 요구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청나라가 더 크게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귀부만 있는 비석의 크기도 작은 것이 아니며, 삼전도비가 귀부에 비해 눈에 띄게 큰 것도 아니다. 즉, 비교대상이 있었기에 도중에 마음을 바꾸어 더 크게 만들어 달라 한 것이다.

 


그럼, 의문의 비석은 언제 어떻게 세워진 것일까?

 


(1) 임진왜란 후 세워진 것이다.

(2) 한양천도 후 세워진 것이다.

(3) 고려 말 개성에 세워진 것을 옮겨온 것이다.

 


임진왜란 후 세워졌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재조지은이 있었으니 비석 하나 세우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청나라가 삼전도비를 세운 명분이, 하늘에 죄를 지어 종사가 끊어질 위기에서 청태종이 은덕을 베풀어 종사를 보존한 것이므로, 역시 재조지은이다. 따라서, 재조지은이 있는 명나라의 만력제를 위하여 비석을 세웠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나, 그러한 기록이 없다. 분명, 기록되고도 남을 일인데 기록이 없다. 가능성이 가장 높기는 하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한양천도 후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있다. 기록이라는 것은, 일상적이 아닌 특별한 일이어야 기록될 가능성이 높은데, 명나라를 중국으로 임명하는 내용이 담긴 비석이라면,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적인 일이라, 기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고려 말 개성에 세워졌을 비석을 대체하여, 천도로 인해 새 도읍인 한양에 새로 세우는 일이라,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따라서, 한양천도로 인해 새로 세우게 된 비석일 수 있다.

 


마지막 가능성으로, 고려 말 위화도 회군 이후, 명나라를 중국으로 임명하는 비석을 개성에 세웠을 것이지만, 조선 건국 후 한양으로 천도하고, 개성에 있는 비석을 옮겨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가능성이 가장 낮다. 한양에 새로 세우면 될 일이고, 정말 옮겼다 하더라도 옮기는 데에 상당한 노력이 들 것이 분명하므로, 기록에 남지 않을 수 없다.

 


아무래도, 삼전도비가 공덕비인 것을 고려하면, 의문의 비석은 만력제를 위해 세운 공덕비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비석을 없애버렸다는 것은, 만력제의 공덕비가 아니라 명나라를 중국으로 임명하는 비석일 가능성도 있다. 청나라의 입장에서 만력제의 공덕비는 단순한 유적에 불과한 것일 수 있지만, 중국으로 임명하는 비석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즉, 대청황제공덕비는 청태종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면서, 청나라를 중국으로 임명하게 된 경위를 새긴 비석, 청태종을 황제로 임명하게 된 명분을 새긴 비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청나라가 수강단을 삼전도에 쌓은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며, 삼전도에 중국에 관한 비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강단과 사직단의 차이는 목적이 전혀 다르다는 데에 있다. 사직단은 매년 정기적으로, 수시로 제례를 지내야하므로 계속 존재해야 하는데, 수강단은 왕조가 바뀌거나 중국이 바뀔 때만 필요한 것이라, 계속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존재하게 되면 불손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수강단의 위에 삼전도비를 세운 것이다. 굳이 다른 곳이 아닌 수강단의 위에 비석을 세우는 것은, 비석에 청나라를 중국으로 임명하는 의미가 담겨 있고, 수강단 역시 청나라를 중국으로 임명하는 제례가 행하여진 곳이기 때문이다.

 


[인조실록 35권, 인조 15년 6월 26일 계해 1번째기사 1637년 명 숭정(崇禎) 10년

 삼전도(三田渡)의 단소(壇所)를 고쳐 쌓고 벽돌을 깔고 각(閣)을 만들라고 명하였다. 장차 비석을 세우고 청인의 공덕을 찬술(撰述)하기 위해서이다.

 또 공조의 말로 아뢰기를,

“삼전도(三田渡) 단소(壇所)를 개축하고 벽돌을 깔고 각(閣)을 짓는 일을 지금 시작해야 하는데 단소가 강에 가까워 지세(地勢)가 낮으므로 매양 큰물을 만나면 반드시 침수될 단서가 반드시 갖추어져 있습니다. 만약 인력을 써서 높이 쌓지 않으면 수해가 염려스럽습니다. 단을 쌓는 역군(役軍)이 나올 곳을 묘당으로 하여금 적절히 배정해 주게 하고 비석은 용두(龍頭)가 모두 길이 10척(尺) 5촌(寸), 너비 3척 5촌이고, 청색(靑色)이며 넉넉하고 깨끗한 것을 이미 갖추어 두었고 농대석(籠臺石)과 계체(階砌)는 떠내야 할 것이고 각을 짓고 벽돌을 굽는 등의 일도 시급히 처리하여야 완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료(材料) 및 장인(匠人), 조역(助役)도 호조와 병조로 하여금 상의해 정탈한 다음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삼전도비를 그냥 단순히 청나라의 승전비라 여기고, 동국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기 위해서 세운 것이라 여기는 것은, 너무나 무식하고 너무나 게으른 짓이다.

 


필자의 이러한 말들이 허황된 헛소리로 들리는가? 필자가 그대들에게 할 말은, ‘쇠귀에 경 읽기’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대들에게 식민사학 어쩌고저쩌고 하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필자는 훈민정음과 삼전도에서 직접 몸으로 깨달았기에, 그대들을 식민사학자라 비난할 수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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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장 16-03-25 01:27
   
잘 읽었습니다.
글 중에 교황이야기가 나와서 생각이 난게
우리나라 조상님들이 흰옷을 즐겨입는 이유가, 재사장집단이기 때문이라고  김정민박사가 그러더군요
재사장=종교수장=교황청 이렇게 표현이 되네요
Marauder 16-03-25 11:49
   
바티칸이라고 한것은 너무 나간게 아닌지... 임명이란말도 좀 웃기는데 인정이라고 해야하는것 아닙니까? 임명이라면 높은 나라에서 하는거지 작은 나라에서 하는게 아니죠.
     
RaMooh 16-03-25 13:28
   
임명은 높은 나라에서 하는 것이 맞습니다. 당연하죠!

문제는, 동국이 낮은 나라였느냐입니다(나라가 작다고 낮은 나라인 것은 아님). 역사를 탐구할 수록, 동국이 상국(上國)이 아니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발견됩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지식이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중세 유럽의 교황과 황제, 왕의 관계에서, 시대나 상황에 따라 황제교황주의니 교황황제주의니 하면서 서열의 다툼이 있기도 하지만, 교황이 하느님(예수님)을 대신하여 황제나 왕을 임명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패자가 승자에게 항복하러 왔다면서, 하늘에 절을 하고, 하늘에 절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독점한다는 황제는, 패자가 하늘에 절을 하도록 자리를 피해주는 일이,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일입니까?

즉, 동국이 상국이고 인조가 청태종을 황제로 임명한 것입니다.

청실록을 보면 인조가 청태종이 아닌 하늘에 절을 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청나라의 시각으로 기술한 것이지만, 인조가 예신찬례(禮臣贊禮)하였고, 이미 황제가 된 청태종은 더 이상 신분이나 등급이 올라갈 데가 없었는데, 인조가 반차(班次)를 주청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이것은 인조가 청태종을 황제에 임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반차(班次):품계(品階)ㆍ신분(身分)ㆍ등급(等級)의 차례(次例)
예신(禮臣):신하(臣下)가 병들거나 곤궁(困窮)할 때에, 임금이 의약(醫藥)이나 물품(物品)을 주는 일
찬례(贊禮):①제향(祭享) 때 임금을 전도(前導)하여 행례(行禮)하게 하는 일  ②또는, 그 관원(官員). 예조판서(禮曹判書)가 맡음

승정원일기에도, 인조의 술상등급을 낮추었는데도 청태종의 술상과 모양이 같다 하였고, 기록자인 승지의 사견으로, 이는 인조의 존경을 가려서 청태종의 우월함을 드러냄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동국이 신하의 입장에서, 임금인 중국에게 사대하는 것은 맞지만, 단순히 약소국이 강대국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즉, 동국의 백성이 중국의 백성이고, 중국의 백성이 동국의 백성입니다.

인정한 것이 아니라 임명한 것입니다. 제 글들에서 이미 다 설명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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