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고려의 영토는 화북, 산동, 강소성까지 봐야한다.
1. 보정시保定는 고려의 땅이었다.
요사지리지에는 아주 친절하게 보주,정주가 고려땅이었다고 써놨다.
<요사지리지>
보주 선의군(保州 宣義軍)
保州 宣義軍 節度, 髙麗置州, 故縣 一曰 來逺.
聖宗 以髙麗王詢 擅立 問罪, 不服.
開泰三年取其保定二州.
統和末 髙麗降於此 置㩁場, 隸東京統軍司, 統州軍二縣一.
來逺縣 初 徙 遼西 諸縣民 實之, 又 徙 奚 漢 兵 七百防戍焉. 户一千. 宣州 定逺軍 刺史,
開泰三年 徙 漢户置, 隸保州.
懐化軍 下 刺史, 開泰三年置, 隸保州.
보주(保州) 선의군(宣義軍)이 설치되었으며 절도를 두었다. 고려가 설치한 주이며 옛 현은 래원(來遠) 하나이다.
성종이 고려의 국왕 순(詢 ; 현종)이 멋대로 즉위한 것을 문죄하였으나 불복하였다.
개태(開泰) 3년에 보주(保州)와 정주(定州)를 취하였다.
통화 말년에 고려가 항복하였는데 그곳(보주 정주)에 각장(搉場 ; 고려 시대에, 지금의 의주와 정평에 두고 거란•여진과 무역하던 장)을 두었다.
동경통군사에 예속되었으며, 주와 군 두개와 현 하나를 관할하였다
내원현(來遠縣) 처음 요서 지역의 백성을 옮겨 채웠고, 다시 해(奚)와 한(漢)의 병사 700명을 옮겨 지키게 하였다. 호구수는 1,000이다.
선주(宣州) 정원군(定遠軍)이 설치되어 있으며 자사를 두었다.
개태 3년(1014)에 한(漢)의 호구를 옮겨 설치하였다. 보주에 예속되었다.
회화군(懷化軍)은 하급이며, 자사를 두었다. 개태 3년 설치하였고 보주에 예속되었다.
정주 보녕군(定州 保寧軍)
定州保寧軍 髙麗置州, 故縣 一曰 定東.
聖宗統和十三年 升軍, 遷 遼西民 實之, 隸 東京 留守司,
統縣一 定東縣, 髙麗所置.
遼 徙 遼西民 居之, 户八百.
정주(定州) 보녕군(保寧軍)은 고려가 설치한 주이다. 옛 현은 하나로 그 이름은 정동(定東)이다.
성종 통화(統和) 13년(995)에 군으로 승격되어 요서 지역의 백성을 옮겨 채웠다. 동경유수사에 예속되었다.
관할 현은 하나이다. 정동현(定東縣) 고려가 설치한 것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요나라 때 요서 지역의 백성을 옮겨 거주케 하였다. 호구수는 800이다.
<거란지리지도>
<화이도>
중국 최고(古) 지도중의 하나인 1136년 송나라 화이도의 보정
따라서 고려와 거란의 국경 전투지역 또한 태행산맥과 화북인근으로 봐야한다.
화북 일대는 명백하게 고려의 땅이었다. 요나라에 잃어버렸지만....
덧붙여 고려사를 보면 거란황제가 고려 왕태자 책봉시 내려주는 직책을 통해 고려왕의 통치영역을 알수있다.
[고려사 해당링크]
順義軍節度使 朔武等州觀察處置等使 崇祿大夫 檢校太尉 同中書門下平章事 使持節 朔州諸軍事 行朔州刺史 上柱國 三韓國公
순의군절도사 삭무등주관찰처치등사 숭록대부 검교태위 동중서문하평장사 사지절 삭주제군사 행삭주자사 상주국 삼한국공
위의 거란지리지도에 삭주와 무주 위치가 좌측하단에 명확하게 보인다.
여기서부터 중국대륙 동해안을 따라 초기 고려의 땅들이 있었다.
지금 충청도 청주는 물수변이 붙은 淸州
고려사에 기록된 청주는 산동반도의 靑州
둘은 각기 다른 청주다.
2. 강소성의 고려왕성
보응현지략에 고려왕성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3. 인종시절 고려와 송의 국경은 회수와 절강성 인근이었다.
<고려사 링크>
고려사 > 卷十六 > 世家 卷第十六 > 仁宗 14年 > 9월 > 송 명주에 사신을 보내 서하 밀사 파견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전달하다
송 명주에 사신을 보내 서하 밀사 파견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전달하다
<윗글생략....>
그러나 금과 국토가 서로 맞붙어 있는 관계로 어쩔 수 없이 화친하였는데,
만약 사신을 파견하여 하국 사람과 같이 일을 논의하였다 하면 필시 〈세 나라가〉 몰래 모의했다고 생각할 것이고
이 때문에 시기하고 분노하여 군대를 출정시킬 명분으로 삼는다면 저희 나라가 전쟁에서 이길지 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제후국이 되지 않는다면 〈상국의〉 회수(淮水)와 절강(浙江)의 연안 지방까지가 바로 금과 인접하게 될 것이니 진실로 상국에도 이롭지 않습니다.
또한 상국이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를 경유하여 공격한다면 저들 역시 우리나라를 경유하여 반격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연해의 여러 고을은 필시 경비할 겨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아랫글 생략...>
내용을 보면
1. 금, 고려, 송은 인접한다
2. 송나라가 금나라를 치려면 고려를 거쳐가야한다.
3. 금나라가 송나라를 치려면 고려를 거쳐가야한다.
4. 고려와 송의 국경은 회수와 절강 연안지역이다.
물론 이후의 고려의 영토에 대해서는 축소 및 회의적으로 될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록으로나마 고려 초기의 최대영토에 대해서 우리는 추정할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