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음력 7월 10일
안골포 해전
음력7월10일
의병장 고경명과 전라병사 곽영의 부대가
금산성에서 패배하던 날
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의
조선 수군 연합함대는 이틀 전 음력 7월8일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대함대를 격파하고 가덕으로 항해 중이었다
도중 척후선으로부터
안골포에 다수의 왜선이 정박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함대를 안골포를 향하게 하였다
안골포의 왜군의 정체는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함대를 급히 쫓아온 구키 요시타카의
왜수군 주력부대였다
구키 요시타카는 왜군 중에선 가장 수전에 유능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음력 7월 10일 새벽
조선 수군은
전라우수군은 포구 밖에 매복
전라좌수군은 학인진의 형태로 포격 및 전진
경상우수군은 그 뒤를 따르도록 작전을 실행하였다
그러나 안골포구는 수심이 얕아 덩치가 큰 판옥선은 쉽사리
출입이 어려웠으며,
조선군은 왜군을 유인하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용인전투의 대승을 통해 자만심에 가득 차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아니었다
노련함과 신중함을 겸비했던
구키 요시타카의 왜군은 쉽사리 유인에
걸려들지 않았고
조선군은 작전을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조선군은 소수의 전선을 번갈아 가며 포구로 들어가
총통과 대장군전으로 장거리 포격을 가하였고
이에 피해가 누적되자
왜군 역시 반격을 시작했다
때마침 매복으로 후방에 배치하였던
이억기의 전라우수군이 합류하여
전투는 더욱 격렬해졌다
허나 하루종일 이어진 전투에
왜군의 피해는 커지기만 하였고
구키 요시타카의 기함 니혼마루가
정면에서 방어벽이 되려하였으나
대장군전에 피격되어 큰 피해를 입고
왜선의 대부분이 격침되자
결국 모든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주하였다
이 전투로 왜군은 42척의 함대 전부와
수천에 가까운 병력을 잃었다
이틀전 한산도 전투와 이 전투로 인하여
왜 수군의 주력이 큰 피해를 입는 바람에
왜수군은 결국 호남 진출을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이는 왜육군의 보급선에도 타격을 주어
고니시의 1군이 평양성에 주저 앉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조선수군 역시 개전이래 수전 중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으며
19명이 전사하고 114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편, 구키 요시타카는 이 전투에서
자신의 기함에 내려꽂힌 대장군전에 크게 충격을 받아
이를 회수하여 후퇴하였으며
이를 잘 보관해 전쟁이 끝난 이후에
본토로 가져갔다
이 대장군전은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