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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25 08:15
[한국사] 잉류지역의 의미
 글쓴이 : 칼리S
조회 : 2,676  

 고려와 조선의 북방지역 즉 고려의 양계지역과 조선의 평안도 함경도 지역은 잉류지역으로 조세를 자체 소비하게 하였습니다. 제주도는 언급 안해도 잘 알겠죠.


 무슨 영토크기만 크게 그려놓으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조선이 화딱지 나시겠죠. 게다가 조선이라는 국가는 행정체계가 잘 잡히고, 이걸 자료로 잘 남겨놔서 소설화도 불가능하고요.


 조선의 영토가 현 압록강과 두만강을 기준으로 경계선을 이루는건 조선이 약해서 그런게 아니라, 그 이상을 점령해봤자, 오히려 국가적으로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압록강과 두만강 밖의 지역을 점령하고 관리하면 오히려 조정에 더 비용만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골치만 아플 뿐이었습니다.  


 조선이라는 국가는 별탈없이 고려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오히려 확장했다는걸 조선초 역사는 알려주고 있죠. 그런데 무슨 고려는 조선보다 더 큰 영토를 가졌다는 분들이 계신데, 고려는 바보였을까요. 조세를 걷지도 않으면서 방어하기 불편한 압록 두만 밖의 지역까지 양계지역을 확대했을까요? 게다가 행정적으로도 고려는 조선보다 매우 뒤떨어지는 사회로 국가통제가 약했던 시기입니다.


 압록과 두만이라는 경계선은 방어적, 경제적으로 한반도에 최적화되었기에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았던 것이지, 무슨 조선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건 아닙니다.  


 만주지역이 지금에나 농업기술의 발달로 나름 쓸만한 땅이 된거지, 예전에는 반농반목의 지역으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지역이 아니죠. 게다가 몽골과 만주지역의 유목민에게 침략당하기 쉬운 곳이라서 국방의 부담이 매우 크죠.


 고려나 조선이나 북쪽지방을 잉류지역으로 두면서 관리한것은 방어적 측면이 가장 컸죠. 그리고 압록강과 두만강은 한반도를 지키기에 가장 이상적이고, 경제적인 방어수단이었고요. 그 밖의 지역을 돌출시켜봤자 관리도 힘들고, 얻을 이익도 없었구요.


 고려나 조선이 왜 여진족을 완전히 복속시키지 않았냐 하면 그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럴 가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의 귀부를 가려가면서 막을 정도였던건 다 그럴만 했기 때문이죠.


 영토크기 줄긋기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런 경제국방적인 문제는 관심도 없겠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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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7-12-25 09:39
   
당시에는 지금처럼 국경이 선으로 딱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조선 후기에도... 압록강 이북이 모두 청나라 영토였나요? 아니죠. 청나라 영역은 봉황성을 기점으로 시작합니다. 이건 주류 재야 할 게 없는 부분이고요.
지금처럼 압록강 이북이 모두 중국 땅이 돼버린 것은 한국전쟁 이후입니다. 불과 60여년 전이죠.
     
칼리S 17-12-25 11:20
   
네 당연히 지금처럼 철저하게 국경선이 있었던게 아니죠.

그래서 줄긋기 하는게 별로 중요한게 아니란 겁니다. 다스릴 백성이 있고, 그 백성들을 먹여살릴 농토와 그들을 관리할 군대나 관료들 같은게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죠. 빈땅인데, 줄 긋는다고 그게 영토는 아니죠.

압록 두만강 밖의 지역이 좁은 지역도 아니고 광할하죠. 그렇다고 많은 인구와 농토가 있어서 관리할 가치가 있었던 땅도 아니고요.

청이 왜 만주를 봉금지역으로 만들었겠습니까? 애당초 그 지역이 중원보다 살기 팍팍하니 자신들이 죄다 중원으로 이주하고, 그렇다고 그 빈땅을 한족들이 들어와서 살면 관리도 번거롭고 해서 봉금시켜 버린거죠.

북방이 살기가 좋았다면 인구가 많았겠죠. 고려나 조선이나 북쪽지역은 항시 인구가 모자라서 남쪽지역에서 충원할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살기 좋은 동네가 아니죠. 단지 방어적 측면에서 포기할 수 없는 땅이었을 뿐이죠.

조선이 약해서 만주지역을 버려둔게 아니라, 애당초 그 땅들의 가치가 없어서 그런거 뿐입니다.

명나라 조정에서도 요동은 항시 골칫거리였습니다. 관리하는데 오히려 비용도 더 들어갔고요. 명 조정이 민란으로 어려워지자, 요동방어선은 사실상 붕괴됩니다. 왜냐하면 명 조정의 지원이 끊기니 죄다 청에 투항해버리죠. 그러나 산해관에 명나라의 주력이 건재했기에 공략하지 못하다, 이자성의 난으로 사실상 명황실이 망하고, 오삼계가 청에 산해관을 열어주면서 중원이 청에 정복된거죠.

즉 만주지역은 정주하면서 관리하는데 힘든 지역으로 고려나 조선이 굳이 그 땅을 욕심낼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는 겁니다.
          
꼬마러브 17-12-25 12:43
   
그건 당연한 이야기고요. 땅이 크든 작든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번영을 이루었던 고대 아테네 사람들이 이웃의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를 부러워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이건 당연한 이야기죠.

문제는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주장과 다른 진영의 사람들이 무시하고, 무작정 커다란 영토를 좋아하는 것마냥... 즉, 제국주의 파쇼 세력으로 '종북몰이'를 하니까 생기는 거 아닙니까.

학문적 다양성은 철처히 무시하고, 오로지 '통설'이라는 권위로써 폭력을 행사하며, 이 권위와 다른 주장을 펼치면 정말로 뜬금없이 '환단고기'를 들먹이며 매도하는 게 정상입니까?

토론을 하자고 해도 오로지 선동-비하만 일삼고, 아니 한사군이 한반도에 없었다고 주장하면, "무작정 영토 큰 것만 좋아하는 환빠 파쇼세력"으로 낙인이 찍히는데, 누가 언제 그런 주장을 했답니까? 제가 언제 "우리 민족은 위대하다"라고 했나요?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진실을 외면하는 쪽은 재야가 아니라 바로 주류사학계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현재 강단사학계 역사의 틀이 일제시대 때의 조선사편수회의 것을 기초로, 중국 고고학계에 크게 의존하여 '축소지향적'인 건 사실 아닙니까?

그래서 얼마 전에 생존 애국, 순국선열 후손들까지 나서서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http://misahyeop.com/gnu/bbs/board.php?bo_table=membernews&wr_id=40

현재 우리 역사학계가 상해 임시정부 당시의 역사체계를 계승하고 있기는 합니까.
이해한다 17-12-25 11:02
   
저의 시점에서 근거가 합당하며 동의하는 부분이 큽니다. 잉류지역이라는 곳은 결국 각종 종족들과 해적들이 판을 치는 현대의 공해 지역과 같은 곳이다 라고 이해하였습니다.
     
칼리S 17-12-25 11:34
   
좀 다르죠.

잉류지역이라고 하는건 그만큼 국방에 들어가는 비용을 어느정도 충당할 수 있을만한 지역이면서 방어해야 할 지역이기에 설정하는 거죠. 무법천지의 지역이 아니고요.

함경도만 해도 잉류지역이라고 해봤자 워낙에 험지 불모지라서 조정의 지원은 항시 있었던 곳이죠.

속담에 나올 정도로 평양감사가 좋았던 건 나름 풍족한 평야지대를 관리하면서 잉류지역이라서 탐관일 경우 엄청난 착복을 할 수 있었던 지역이었거든요.
          
이해한다 17-12-25 12:03
   
그렇군요.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알겠습니다.
     
감방친구 17-12-25 15:23
   
이 글에 뭔 근거가 있길래 이해를 하셨는데요? 눈 씻고 찾아봐도 합당한 근거는 커녕 근거 자체가 없는데
하시바 17-12-25 11:09
   
ㅋㅋㅋ 중국인들의 두려움.

ㅆㅂㄴㄷ아 언제까지 그냥 보고 있을줄 아나?
신수무량 17-12-25 12:06
   
식민사학을 이어받은 주류사학에서 주장하는 전형적인 주장 '영토크기만 크다고 좋은 게 아니다' ; 누가 영토 크기가 커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이 있나요? 역사기록으로 논해야지요..

고려 경계는 통설로은 고려장성에 의해 그 경계를 이루었다고 하는데..그러면 최소한 고려장성연구를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일제강점기 쩍바리 하나가 조선 일부학자들이 자신들도 잘 모르면서 지정해놓은 것을 이어받아 아무렇게나 비정한 장성이 현재의 고려 경계입니다...그런데 제대로 된 연구도 없이 그대로 받아 들이면 그게 답인가요?

고려장성:
고려서에 따르면, 고려는 1018년 12월에 고려를 침공한 10만 거란군을 괴멸시킨 이후, 1023~1030년 기간 중에 여러 성을 순차적으로 쌓았다고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현종(顯宗) 14년(1023년)에 요덕진(耀德鎭)에 성을 쌓았다. 634칸이고, 문(門)은 6개이다."


"현종(顯宗) 17년(1026년)에 순덕(順德)에 성을 쌓았다."


"현종(顯宗) 18년(1027년)에 동북계(東北界)의 현덕진(顯德鎭)에 성을 쌓았다.

또 청새진(淸塞鎭)에 성을 쌓았다. 821칸이고, 문(門)은 7개, 수구(水口)는 4개, 성두(城頭)는 15개, 차성(遮城)은 4개이다."


"현종(顯宗) 20년(1029년) 개경(開京)의 나성(羅城)이 완성되어, 무릇 21년 만에 공사가 끝났다.

또 평장사(平章事) 유소(柳韶) 등을 보내어 오래된 석성(石城)을 수축(修築)하고위원진(威遠鎭)을 설치하여 성을 쌓았다. 825칸이고, 문(門)은 7개, 수구(水口)는 1개, 성두(城頭)는 12개, 차성(遮城)은 12개이다.

또  정융진(定戎鎭)에 성을 쌓았다. 835칸이고, 문(門)은 7개, 수구(水口)는 3개, 성두(城頭)는 12개, 차성(遮城)은 5개이다."


"현종(顯宗) 21년(1030년)에 인주(麟州)에 성을 쌓았다. 1,349칸이고, 문(門)은 9개, 수구(水口)는 2개, 성두(城頭)는 23개, 차성(遮城)은 6개, 중성(重城)은 55칸이다.

또 영덕(寧德)에 성을 쌓았다. 852칸이고, 문(門)은 7개, 수구(水口)는 1개, 성두(城頭)는 14개, 차성(遮城)은 7개이다."


즉, 요덕진(耀德鎭), 순덕(順德), 현덕진(顯德鎭), 청새진(淸塞鎭), 위원진(威遠鎭),  정융진(定戎鎭), 인주(麟州), 영덕(寧德) 등에 성(城)을 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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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는 성들의 위치는 제대로 비정되었나요?...
높이와 폭이 25척이나 되는 석성인데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고려 천리당성 선을 따라가면 고려장성 쌓았을 때 사용된 돌덩이들은 북한지역에서 좀 나오나요?

비판없이 받아들이지 마시고 제대로 연구 조사해 보세요.
     
칼리S 17-12-25 12:13
   
고려 장성이 그나마 북한지역이면 가능하기나 하죠. 만주 그 넓은 지역에 장성을 어떤 방향으로 쌓습니까?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한건데, 만주에 쌓는게 가당키나 합니까?

중국세력에 대항한 고구려와 달리 고려는 거란과 여진같은 적을 상대하기 위해 쌓았는데, 만주에 쌓습니까? 좀 생각을 하세요 ㅋㅋㅋ
          
신수무량 17-12-25 12:46
   
고려장성이 만주에 있었는지 아님 또다른 지역에 있었는지는 연구조사해봐야 알겠죠..그리고 넓다고 만주지역에 무조건 없었다고 무슨 근거로 주장하시는지?
고려장성이 북한에 있었다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우리 조상 고려사람들이 무식해서 성을 산능성이를 가로질러 쌓았군요..
능성이를 따라 성을 쌓았다면 이해라도 해주겠지만 한심하기 그 짝을 찾을 수가 없네...바보천치였을라나ㅡ
이해한다 17-12-25 13:22
   
논하고자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국경이 어디까지인가가 요지인듯 하고, 그 기준을 성의 기준으로 삼은 듯 보이네요. 성의 기준으로 국경을 삼은 거면 신수무량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유물 및 사료가 있기에 타당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국경이라고 하면 칼리 S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말씀하신 잉유지역에 가깝다고 생각되는군요. 사유는 손익의 효율에 비해 손해가 심하였기에 유지할 수 없었고 결국은 그 성은 넘어갔을 거란 생각이 되는군요. 저의 시점으로는 성을 짓고 그 지역을 얻고자 노력하였으나 가치에 비해 손해가 심하여 포기하였다라는게 저의 생각이네요.
     
신수무량 17-12-25 14:37
   
옛날엔 보통 국경이라는 것이 선이 아니라 강이나 산맥 등으로 나눠졌다고 들었습니다.
고려 때도 그랬겠지요.
그런데 고려 장성이라는 것이 현 국사책에는 그 당시 국경선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런 국사책을 누가 만들었나요? 모르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겠지요?
아니라면 어린 우리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책부터 빨리 바꿔야지요...

고려장성: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55848

장성에 대한 고려의 인식은 국경으로서 이외에......


도데체 무슨 근거가 있어서 저리 손익계산을 잘할 수 있는지.....
Marauder 17-12-25 14:40
   
동아게에 이정도 기초도 모르는사람은 거의 없을테고... 말대로라면 잉류지역은 없애는게 좋다는겁니까? 잉류지대라도 넓으면 군사력이 강해질테니 그거라도 확보해야 하는건 당연한것이죠.
 당연하지만 전쟁의 종심을 길게하기 위해선 완충지대가 필요한법이고요...
애초에 고려와 조선을 비교하긴 어렵지만 세종때만 하더라도 압록강 너머에서 군사작전한건수도 없이 많고 공격적으로 영토확장한건 중국에서도 비일비재하구요.
 또한 조선이 행정력이 좋다어쩐다 하지만 평상시엔 작은 고려만도 못한 군사동원력을 가지고있었을뿐입니다.
힘에서도, 그 행정력 활용에서도 크게 차이나는게 조선은 세금이작고 징발을 적게했기 때문에 굳이 영토를 넓힐 이유가적은나라였지만 고려도 그랬을까요?
행정력이 아무리 뛰어나봤자 고려의 2배에서 3배나되는 인구에서 병력을 절반밖에 뽑아내지 않는게 무슨 힘이고 능력인지 모르겠군요. 뭐 애민정신이니 혹은 적이없어서 그정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냥 자위아닙니까? 정작 중요한 전쟁이 있을때... 어땠습니까?
전략적으로봤을때  평야지대를 활용함에 있어서도 애초에 수만의 기병을 운용했던 고려는 여진족의 제왕노릇이 가능했지만 조선이 가능했을까요.
고작 수천의 기병을 운용했던 조선은 압록강 너머를 유지하기 힘들지만 고려의 수만이면 충분합니다.
감방친구 17-12-25 15:10
   
사람들이 양심도 없이 자꾸 딴소리를 하네
눈알이 빠져라 사서 원문 찾아서 번역하고 비교해서 분석하고 고찰을 하느라 120 시간을 넘게 걸려 논고(그것도 십수 개의
각도에서)를 게시를 했으면
12시간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한두 시간은 써서 글을 읽어보고 따져봐서 비판을 해야지
읽어보지도 따져보지도 않고 근거 자료 하나 없이 어디서 주서들은 잉류지역 운운하면서 "땅덩이만 크다고 좋은 게 아니다" 라고 헛소리를 똥방귀 뀌 듯 픽픽 싸네

쓸모 없는 땅 어쩌구 헛소리 할 거면 요ㆍ금ㆍ원ㆍ명ㆍ청은 다 쓸모 있는 땅이었고 진ㆍ한ㆍ수ㆍ당ㆍ송은 다 쓸모 있는 땅이었느냐?

쓸모 없는 땅, 행정력을 부리기에 힘만 들고 돈만 깨지는 땅이라는 만주, 연해주는 왜 꾸역꾸역 저들 영토에 집어넣는데?

엄연히 수많은 사서(그것도 우리 사서가 아니라 거의 다 남의 사서)에 교차돼 적힌 저 분명한 기록들은 어쩔 것인데?

근거를 제시해야지, 근거를

잉류지역이라 조선도 경영 안 했고 못 했으니 고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조선은 고려 영토를 그대로 넘겨 받아서 오히려 넓혔다?
아이구 이건 뭐
감방친구 17-12-25 15:18
   
조금이라도 글이 길다, 한자가 섞였다 싶으면 머리통에 쥐가 나서 마우스롤을 덜렁덜렁 뭐라도 떨어질까 도망치듯 굴리는 수준에서 뭔 반박이 가능하겠수?

사서 원문 한 줄이라도 가져 와야 대꾸라도 해주지
대꾸는 커녕 상종할 가치를 못 느끼게 하는 수준이니
감방친구 17-12-25 15:31
   
비판이라는 것은 상대자의 논고를 성의 있게 읽는 것부터가 첫 걸음입니다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1) ㅡ 고구려 서안평과 압록강의 위치 고찰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309&sca=&sfl=mb_id%2C1&stx=cellmate&page=2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2) ㅡ 학야성과 내원성의 위치 고찰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334&sca=&sfl=mb_id%2C1&stx=cellmate&page=2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3) ㅡ 요와 고려의 접경은 현 철령시ㆍ범하 근방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357&sca=&sfl=mb_id%2C1&stx=cellmate&page=1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4) ㅡ 봉집현(옛 철령위)은 현 번시시가 아니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366&sca=&sfl=mb_id%2C1&stx=cellmate&page=1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5) ㅡ 압자수와 혼동강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411&sca=&sfl=mb_id%2C1&stx=cellmate&page=1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6) ㅡ 압록강의 위치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452&sca=&sfl=mb_id%2C1&stx=cellmate&page=1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7) ㅡ 암연현의 동계신라(東界新羅) 문제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551&sca=&sfl=mb_id%2C1&stx=cellmate&page=1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8) ㅡ 요 주/현의 교치상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558&sca=&sfl=mb_id%2C1&stx=cellmate&page=1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9) ㅡ 고려의 압록강 진출과 그 확보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770&sca=&sfl=mb_id%2C1&stx=cellmate&page=1

고려 서북계 위치 추적 (10) ㅡ 고려 120년의 전성기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773&sca=&sfl=mb_id%2C1&stx=cellmate&page=1
이해한다 17-12-25 16:24
   
만주지역이 쓸모없는 땅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한국과 중국은 그 땅을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여기에서 반박하실 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중국과 한국은 그 땅을 차지하고 복속하지 못하였습니다. 청, 금, 원, 요 등을 중국을 지배하는 종족이 계속 탄생하게 되었죠. 그럼 왜 그 만주지역을 복속하지 못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그에 대한 사료는 이미 문서로 나와 있습니다. 만주지역에 살고 있는 종족들이 성을 달라고 간청하면서 계속 공격해 온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땅이 쓸모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이익에 비해 피해가 컸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레지스탕스와 정주 인원이 아닌탓에 세금수급의 불편성, 끊임없는 약탈, 낮은 인프라, 낮은 인구 밀집성, 결정적으로 유목생활과 정주생활 차이에 의한 반목 등에 의해 실효적인 지배가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현대에도 같은 국가에서도 종교차이때문에 반목이 심한데 아예 생활문화 차이가 나는데 그 문제가 더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곳은 주인이 없는 땅이 아니었고, 점령은 쉬우나 유지하기 어려운 땅이었습니다. 냉정하게 보십시오. 만주는 쉽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중국을 여러 번 지배한 세력을 길러 낼수 있었습니다.
     
감방친구 17-12-25 16:34
   
만주 어디를 말씀하시는 건데요?
금나라가 어디에서 건국됐는데요?
길림합달령을 비롯한 만주지역 산맥이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 찾아보세요
현 철령 동북쪽 개원에서 300리 동북쪽에 떨어진 곳에 있던 신주가 고려와 가까웠다 한 요사 지리지와 고려의 북쪽이 용천까지였다 한 고려에 보낸 요나라의 숙종 책봉문은 어찌하실 건데요? 동북 변방의 15개 주와 인접한 곳에 11개 주를 설치했고 여진의 고려땅에 편입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여 변방부터 차근차근 성보를 쌓아 멀리에 있는 곳까지 영토에 편입했다는 고려사 문종 대의 기록은 어찌하실 거구요?
     
감방친구 17-12-25 16:42
   
그에 대한 사료는 이미 문서로 나와 있습니다. 만주지역에 살고 있는 종족들이 성을 달라고 간청하면서 계속 공격해 온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ㅡㅡㅡㅡ

고려사 숙종, 예종 대를 읽어보세요
만주 송화강 일대에서 완완아골타가 세력을 키워서 고려 동북쪽에 속한 여진족들을 공격ㆍ포섭하면서 예종 대의 대규모 여진 토벌 전쟁이 벌어진 겁니다
금나라가 건국된 게 1115년이고 건국본거지가 길림합달령 북쪽 송화강, 혼동강 일대(현 하얼빈)입니다
고려 전성기 북계 바깥입니다
     
감방친구 17-12-25 16:52
   
"여진족은 본래 10세기 초 이후 거란족이 세운 요(遼)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12세기 초 북만주 하얼빈[哈爾濱] 남동쪽의 안추후수이[按出虎水] 부근(지금의 松江省) 아청[阿城]에 있던 완안부의 세력이 커지자, 그 추장인 아구다가 요를 배반하고 자립하여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금(金)이라 하였다. 그가 곧 금나라 태조(재위 1115∼1123)이다."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1069852&cid=40942&categoryId=33395

하얼빈 위치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d/China_Heilongjiang_Harbin.svg/1280px-China_Heilongjiang_Harbin.svg.png

肇州城《金志》云:在會寧西五百里鴨子河、黑龍江之側,舊名出河店。宋政和四年,女真取寧江州,遼人使其將蕭嗣先等發兵,屯出河店,阿骨打御之,至混同江。

조주성, 금사 지리지에 따르면 회령 서쪽 500리 압자하와 흑룡강의 옆에 있는데 옛 명칭은 출하점이다
1114 년에 여진이 녕강주를 취하니 요가 소사선 등을 시켜 군병을 일으켰으나 아골타는 출하점까지 차지하고 혼동강에 이르렀다 (이후 1115 년에 금나라 건국)

<독사방여기요>


만주지역 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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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한다 17-12-25 17:28
   
감방친구님이 격렬히 저항하고 싸웠기에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고 왜 이렇게 고려의 영토에 열과 성의를 다해 성토하는가 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북한과 통일이 되었을 시에 일제와 중국의 이익에 의해 사라진 영토를 되찾기를 바래서이지 않습니까?

이에 고려해보니 현재에도 국가간의 영토와 관련되어 얽혀 있는 문제인거 같습니다. 아무런 이익과 관련없는 문제였다면 눈에 보이는 사료와 자료로 판단할 수 있겠으나 날조의 국가가 직접적으로 이익에 관련되어 있는 사안이기에 함부로 판단을 내리는건 현명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거는 역사에 대한  탐문심에 의해 노력하시는 것이라기 보다 훗날 국가를 위해 헌신하시는 것 같군요.
     
감방친구 17-12-25 17:31
   
저는 나이가 40대인데 지금껏 살아오면서 세상이 불의하다, 부조리하다는 거, 그리고 사람들이 비겁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왔습니다

통일을 대비하자는 것도 있지만
자식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비로 살자는 게 가장 큽니다
도배시러 17-12-25 23:35
   
잉류지역 관련 당대 문헌 소개 부탁해요. 소설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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