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모용선비설의 근거는
울진 봉평비에서 신라 법흥왕의 실명이 "모(牟)진"으로 기록이 되어져 있음은 고고학적으로 명백한 팩트이다. 그리고 법흥왕의 이름은 중국의 문헌에서는 "모(牟)태"로 기록이 되어져 있는데, 모태는 모진의 오기인 것으로 학자들이 이해들을 하고 있다. 어떻든 법흥왕은 모(牟)씨이고, 법흥왕의 이름이 모(牟)씨인 것을 보고, 한 발랄한 방송국 피디는 자신의 책에서 "신라 김씨는 모용(慕容)선비족"이라는 말 같잖은 논리를 개시를 했던 바가 있다.
그러나
고구려의 모(牟)씨를 살펴보면
모두루(牟頭婁)
생몰년 미상. 고구려 광개토왕 때 북부여의 수사(守事). 관등은 대사자(大使者)였다.
모두루의 존재는 1935년 10월에 중국의 길림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의 동북, 즉 북한의 자강도 만포의 맞은편 언덕인 하양어두(下羊魚頭)에서 발견된 모두루묘지명에 의하여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신라왕의 모씨랑 한자가 같다는 것을 알수있다.
그러면 모용선비의 한자는 慕容 씨로 한자자체가 다르다는것을 알수있다.
제발 해괴한 논리는 주장하지말자
어떻게 慕容 ----> 牟 가 될수있을까??
마치 우리나라 동음이의와 같은것처럼 하는 주장이 있던데
잘 아시다시피 한자는 상형문자 한글은 소리글자이므로 이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것인가를
아실수 있을것입니다.
오히려 신라는 고구려에 왔다는 것이 더 가깝다.
그 이전에 부여계라는것이 오히려 더 팩트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광개토대왕이 후연의 모용(慕容)씨와 대립중인데 같은 혈족이라고 주장하는
신라에
정병 5만 기마병을 보내서 왜로부터 구원해 줬는가가 더 의문입니다.
오히려 정벌해야하는데
신라랑 후연보다
고구려랑 신라랑 가깝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