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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01 23:09
[한국사] 중국이 한반도로부터 걷어들인 조공의 정도가 어느정도인가요?
 글쓴이 : 아스카라스
조회 : 2,374  

중국이 잠깐잠깐 일본에 무역을 터 준 때 말곤
고려 이후엔 늘 일본은 조선을 통해 중화문물을 수입했었죠. 그 마저도 비단이나 조선삼 등의 사치품이었고.

고려까지 중국이 '일본은 고려의 속국'이라 정의했으니까요.

알기로, 조공책봉이란 두 나라의 강성함을 기반으로 하되 강국이 소국에게 너무 많은 책봉을 준 일도 다소 있었다던데요.
일례로 중국은 조선에게 가장 많은 조공을 받으며 그 사신을 접대하고 하사품을 나눠주며 책봉을 하여 드는 금액도 상당, 때문에 중국 측에서 조공 좀 줄이라고 할 정도였었죠.

또한, 임란 이후 300년가까이 이어진 조선통신사에 대한 일본의 대접으로 인해 매 관례마다 국고가 휘청일 정도였다고 하던데요,
이 부분 또한 팩트인 지 궁금하네요. 매번 일본이 그만한 국고를 들여서 대접했는지 아닌지.

제가 궁금한 것은 중국 측에서 조선에게 거둬들인 조공의 정도가, 명나라와 청나라에 따라 어느정도였는지, 그리고 책봉의 최대치와 평균치가 궁금하네요.

당대 초강대국이던 중국이라 할지라도 조선의 비일비재한 조공을 무람없이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
늘 일정하게 후한 대접과 많은 책봉을 주면서 가능했던 건지, 혹은 다소 박대하기도 했어서 그런건지가 궁금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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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요 18-03-01 23:44
   
조공은 세금이 아닙니다. 그냥 일종의 선물 혹은 공무역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얼마나 걷어들였느냐 하는건 맞지 않지요. 얼마나 허용해 줬느냐 얼마나 요구했느냐 하는게 맞는거 아닐까요?
     
아스카라스 18-03-01 23:50
   
지적 감사합니다만 답까지 달아주셨으면 좋을 텐데요..
          
mymiky 18-03-01 23:54
   
중국이 조선에 과한 조공을 요구한 것은,

조선초기 주원장이 조선을 견제하려고 꼬투리 잡을때나

병자호란으로 항복한 뒤,
전쟁 배상금 명목으로 조선에서 뜯어가던 시기가 어려웠던 때지..

보통때는 의례적인 것입니다.
mymiky 18-03-01 23:51
   
조선통신사는 매년 일본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초기엔, 포로송환, 일본과 다시 국교를 맺는 외교적 활동이였고,

그후 안정기에 들어가고나선,
에도 막부에 새 쇼군이 즉위하면, 축하 사절로 갔습니다.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데, 일본의 체면도 있으므로, 그들의 좋은것만 보여주려고 했고,
국빈만찬등으로 돈을 많이 썼지만..

매년 조선통신사를 맞는건 아니라서,, 이따금식 오는 이벤트적인 것이였어요.
     
아스카라스 18-03-01 23:54
   
매년은 아니어도 정기적인 행사가 아니었는지요? 3, 4년에 한번이라던가 말이에요.
그런 게 아니라면 조공이라 보기도 어렵군요.
          
촐라롱콘 18-03-02 00:09
   
조선통신사 그중에서도 조선후기 일본의 에도막부로 파견된 통신사행은

총 12회였습니다. 대략 200년 동안 12회였으니 평균 17년마다 1회 파견한 셈입니다.

정기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에도막부 장군이 바뀔 때마다 일본이 대마도를 통해

조선에 요청하면 조선이 파견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19세기 초에 이루어진 마지막 12회 사행은 통신사의 파견이

조-일 양국 모두에게 별 득이 되지 않는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에도까지 가지 않고

대마도에서 약식으로 시행되는 것으로 그쳤고.... 이후 조선통신사는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기 전까지 파견되지 않았습니다.
촐라롱콘 18-03-02 00:04
   
중국으로 가는 사행길의 조공무역 자체만 놓고보면 조선이 대체로 흑자를 본 구조가 사실이지만....

반대로 중국의 칙사가 오게되면 칙사대접에 허리가 휠 지경이었지요!

더구나 그 칙사가 조선에서 아쉬운 국왕, 왕비, 왕세자 책봉사라면 칙사에게 바칠 뇌물의 규모 또한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래도 뇌물의 규모가 선조시기까지는 중국칙사 1회당 은 수천냥 수준으로

조선이 감당할 규모였지만... 광해군-인조 시기에는 군왕의 정통성 취약이라는 약점까지 겹쳐

칙사 1회당 은 수만냥~10만냥 단위로 가져다 바쳐야 했습니다.

10만냥 단위라면 당시 국가재정을 담당하는 호조 예산의 근 절반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게다가 모문룡이 가도를 차지하고부터는 모문룡에게 지원하는 식량,물자,은자 등도 당시 쌀로 환산하면

1년에 수 만석 단위에 이르렀으니.... 사실 당시 후금~청나라와 대치하던 조선의 어려운 처지임에도

가장 최전방인 청천강 이북의 방위가 허술해진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모문룡에 대한 지원으로

조선의 허리가 휘청거렸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명이 멸망하고 청이 중원의 주인이 되고부터는 칙사대접에 소요되는 조선의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17~18세기에는 은과 인삼을 매개로 한 청과 일본 사이의 중계무역으로 큰 재미를

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졍묘호란-병자호란에서 조선이 패하고 후금~청이 장성 이남으로

입관하기 이전까지는 당시 후금~청도 명나라와의 교역루트가 단절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였던지라

조선에게 식량-물자를 의존했던 측면이 컸고 당시 조선은 명나라사신과 모문룡을 대접하고 지원하는 것도 모자라...

후금~청나라의 무리한 요구까지 어느정도는 수용할 수 밖에 없던 처지인지라 이중으로 고통받았던 힘겨운 시기였습니다.
     
국산아몬드 18-03-02 00:45
   
광해군때 칙사 대접에 힘들었다는 건 여러 책에 나오긴 합니다. 그 전에도 칙사 뇌물로 수천냥을 주었다는 건 첨 봅니다. 태종때만 하더라도 명나라 칙사가 푸대접을 당해 황제께 고해바치는 내용도 보았는데 뇌물로 수천냥을 주었다니 이해가 안가네요. 사료를 볼 수 있을까요?
          
촐라롱콘 18-03-02 01:23
   
1.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 5월 6일 정축 3번째기사 1409년 명 영락(永樂) 7년]]
사신 해수가 지난해 황엄에게 지난 해와 같이 뇌물을 많이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다

임금이 돌아와서 태평관(太平館)에 이르러 황엄(黃儼) 등을 보았다. 해수(海壽)가 은밀히 이무(李茂)에게 이르기를,
 
"지난해 황엄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왔을 적에 뇌물로 받은 안장[鞍子] 둘과 신물(新物)이 매우 많았는데, 황제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지금 또 전과 같다면, 내가 마땅히 아뢸 것입니다. 주는 자나 받는 자나 모두 죄가 있습니다." 하였다.
Tenchu 18-03-02 15:15
   
명나라떄겠죠..
조선의 소랑 말이 씨가 마를정도로 조공해야했었슴.. 그결과.. 수레대신 가마가 발달..
     
mymiky 18-03-02 17:29
   
조선의 소와 말이 씨가 마를정도로 조공했다는 기록 있습니까?

대체, 이런 날조는 어디서 배워오는 것임?? -.-

비슷한 내용이, 아마 명 태종 주체때 일겁니다.

명나라가 소인지 말인지, 너무 많이 요구해서 이방원이 곤란하다고
줄여달라고 해서, 30마리 보낸걸로 아는데?

그리고, 소랑 말이 씨가 마를정도로 조공을 해서,

수레를 안 쓴게 아니라

조선은 산과 계곡이 많은 지형이라,
평지에 수레 타고 다니는게 익숙한 중국보다 덜 쓴거지.

안 쓴건 아닙니다. 조선에도 수레 있어요.
     
뚜리뚜바 18-03-02 17:53
   
와;; 날조도 이런날조가 ㅡㅡ;
     
무라드 18-03-03 12:25
   
10몇년전 네이버 왜구들 주장을 그대로 옮겨 온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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