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잠깐잠깐 일본에 무역을 터 준 때 말곤
고려 이후엔 늘 일본은 조선을 통해 중화문물을 수입했었죠. 그 마저도 비단이나 조선삼 등의 사치품이었고.
고려까지 중국이 '일본은 고려의 속국'이라 정의했으니까요.
알기로, 조공책봉이란 두 나라의 강성함을 기반으로 하되 강국이 소국에게 너무 많은 책봉을 준 일도 다소 있었다던데요.
일례로 중국은 조선에게 가장 많은 조공을 받으며 그 사신을 접대하고 하사품을 나눠주며 책봉을 하여 드는 금액도 상당, 때문에 중국 측에서 조공 좀 줄이라고 할 정도였었죠.
또한, 임란 이후 300년가까이 이어진 조선통신사에 대한 일본의 대접으로 인해 매 관례마다 국고가 휘청일 정도였다고 하던데요,
이 부분 또한 팩트인 지 궁금하네요. 매번 일본이 그만한 국고를 들여서 대접했는지 아닌지.
제가 궁금한 것은 중국 측에서 조선에게 거둬들인 조공의 정도가, 명나라와 청나라에 따라 어느정도였는지, 그리고 책봉의 최대치와 평균치가 궁금하네요.
당대 초강대국이던 중국이라 할지라도 조선의 비일비재한 조공을 무람없이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
늘 일정하게 후한 대접과 많은 책봉을 주면서 가능했던 건지, 혹은 다소 박대하기도 했어서 그런건지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