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방후원분과 임라일본부설이 관계가 없는 이유
(1)기간의 문제: 원래 묘제는 상당히 보수적인 유물인데, 전방후원분이 나타나는 기간은 50년(475~520년 사이)도 채 안될 정도로 1회성 묘제이며, 임라일본부와 전방후원분이 나타나는 시기가 다르고, 기존 알려진 임나와 지역도 다른다.
(2)정치적 구심점이 무존재: 영산강 유역의 경우 일본열도에서 확인되는 전방후원분이 집중하는 정치적인 중심지가 존재하지 않고 그들이 상호연계하여 세력화되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이 한 곳에 밀집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무덤의 주인공들이 어떤 세력을 펼 수 없었음을 뜻한다”라는 의견이다.
3)서울 강동, 하남의 전방후원분 발굴 상황
하남 전방후원분 발굴지
백제의 옛강역인 강동, 하남지역에 최대규모의 전방후원분이 모양의 민둥산이 발견되어, 유적탐사와 정밀지표조사를 벌였으나, 하남시 민둥산 지역이 인공으로 조성된 지형이 아니고, 전방후원분의 속성인 a)성토상 분구, b)테라스형 단, c)주구등이 확인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하탐사에서도 매장주체부(시신이 놓인 곳)로 추정할 만한 자료가 확인되지 않은 점으로 미뤄 전방후원분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이 전방후원분 추정지는, 규모도 거대하지만 2~3세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고, 일본보다 먼저 만들어진 전방후원분인지 확인이 되면, 임라일본부에 대한 어떠한 가설의 증거로 전방후원분이 사용될 여지를 없애는 것 이기에 매우 중요한 발견으로 여겨졌었다,.이 지역은 1910년대 지도에는, 자연구릉 형태이고 원형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1960년대의 항공사진에는 농지 개발 등으로 모양이 변경돼, 외형상 전방후원분 형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정상부 탐사에서도 유적의 잔존 징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또한 금동유물이 매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 곳에서도 탐사 결과 별다른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고, 지형이나 모양 또한 전방후원분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4)강동.하남의 구릉이 전방후원분이라는 주장(3번에 대한 반론)
서울-강동의 전방후원분 발굴지
하남시와 강동구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 세계최대의 고분들은 2005년 강동구문화원의 조사의뢰로, 백제문화연구회가 1년간 조사하면서 발견되었던 것이며, 2005년 10월 31일 KBS 9시뉴스에서도 방영되면서, 진실공방이 이루어 졌었다고 주장한다. 이 구조물들을 ‘세계최대의 전방후원분’이라 주장 하는 이들은, 조사과정 중 도로공사로 이미 파괴된 131m의 암사동고분을 기존학계와 문화재청에서 고분이 아니라고 무시하자, 맥이민족회 등 시민단체가 강제발굴하여 원분의 직경이 68m, 꼬리부분의 길이가 63m인 것을 밝힘과 동시에 정상부에 여러개의 토광묘가 존재하고 있고, 그곳에서 백제토기편, 철편, 개머리 형태의 돌 등을 확인했다고 하였다. 또한 강동구 상일동 강일지구 아파트 단지 공사를 하면서, 강동구의 능골고분(220m)을 방사선형태로 시굴하여 3단으로 축조된 것이 오순제 박사에 의해 발견되면서 파괴를 면하여 아파트 단지내에 보존돼있는 상태라 한다. 이 고분은 고분을 상징하는 이곳 '능골' 지역의 주민들이 예전부터 기제사를 지내왔던 고분으로 아파트가 형성된 지금도 제사를 지내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이들은 세계최대의 고분이 파괴되고 있다면서,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하남시의 황산고분(770m)과 민둥산고분(680m)이 미사지구 아파트 개발로 파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상에는 고분군이 발굴되고 있음에도 아래는 여러 대의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일요임에도 긴급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원래 도시계획도에 ‘도로’ 등으로 없어질 위기에 놓인 것을 사단법인 백제문화연구회가 2012년 4월 12일 문화재청, 2013년 5월 11일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하자, 하남시와 협의해서 문화재 지역으로 조치하도록 했다. 그런데 최근에 경기문화재단, 한백문화재단 등이 이곳을 시굴을 하였는데 백제문화연구회에서 이곳이 일본의 전방후원분과 같이 3단으로 축조된 것, 판축 부분, 정상부의 여러 개의 고분과 백제토기 등이 존재하고 있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러개의 포크레인으로 많은 부분을 파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론)
1.영산강일대의 전방후원분은 임나일본부와는 전혀 관계 없다.
2.영산강 일대 전방후원분은 동성왕과 무령왕과 함께 들어온 왜의 장수(백제의 용병)가
지방관으로 파견되면서 만든 무덤이라는 것이 학계의 가장 통설이다.
3.서울-강동.하남의 백제지역 문화의 보호와 보존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