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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3-02 00:07
[기타] 한족의 티벳 대학살
 글쓴이 : 꼬꼬동아리
조회 : 4,097  

티벳 학살
  -> 일단 중국이 티벳 지역을 손에 넣기 이전의 역사를 보면 기 원 이전부터 중국의 서부 산악지대에는
        강족과 저족이라는 민족들이 살았습니다. 이 민족들은 중국과는 전혀 다른 세력으로서 비단길을 통한
        동서무역을 통하여 많은 번영을 누렸었습니다. 이들의 전성기는 7세기초 토번(혹은 토욕혼) 이라는
        통일국가로 이들은 다시 탄생하였습니다. 당시 중국 당나라는 직접적인 충돌은 최대한 피하려했고,
        공주를 시집보내는 등 회유정책을 쓰면서 토번을 견제하였습니다.
        당 이 멸망하고 송나라가 들어서도 송나라는 감히 이 나라를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강성한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를 멸망시키는 초강대국이 있었으니 바로 몽고족이었습니다. 몽고족은
        티벳을 침략했지만 황제인 쿠빌라이칸이 티벳의 승려를 황제의 스승으로 두는 등 티벳 불교에
        심취하여 서기 1252년 스승을 티벳의 군주(달라이 라마)로 즉위시키고 티벳을 독립시켜 주었습니다.
        세계 최강대국으로부터 피 한방울 안흘리고 단지 종교의 힘만으로 티벳은 독립을 쟁취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티벳은 정치와 종교가 합일된 지배체제를 굳히기 시작했습니다.
        티벳은 독립된 후 명나라와 청나라때까지도 독립된 세력을 유지하였다. 청나라 강희제 재위년인
        1718년 티벳은 청나라에 복속되지만 실질적인 지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반독립국가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금 현재의 티벳 독립운동의 힘은 이런 역사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18세기 후반부터 영국과 러시아는 티벳을 중국에게서 떼어내고 자신들의 세력아래 편입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패하고,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그 혁명의 와중에서 티벳은 독립국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국민당 정부는 1930년부터 다시금 티벳에 관리를 파견하고
        중국의 종주권을 공표하였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티벳은 사실상 독립국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티벳은 중립을 선포하고 또한 세계의 공식조약에도 가맹하는 등 완전한
        독립국으로써 인정을 받았습니다.(적어도 1950년까지는)
        그러나 독립 국 티벳에 불운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니, 바로 중국군의 침략이었습니다.
        1950년 10월 티벳은 중공군의 총칼 앞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국제연합군의 개입과 영국의 지원을 기대하였으나 모두 실패한 끝에 51년 5월 중공의
        종주권과 티벳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17개항의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한편 라싸(티벳의 수도)에
        중공의 민간 주재기관과 군사사령부를 설치하게 하고 시캉성[西康省] 창두 지구를 편입받았습니다.
        (이 조약은 중국에서 완전히 위조한 무효조약이었습니다.)
        그 후 중공군 및 민간인의 계속적인 유입으로 인한 자원 부담과 양쯔강[揚子江] 상류의 동부지역에
        살고 있는 티벳인에 대한 박해를 계기로 1959년 라싸에서 대규모 반란(이 반란으로 약 12만여명이
        중국군의 직접적인 공격으로 사망하였습니다.)이 일어났습니다. 공식적인 통계자료를 통해서 볼
      때 당시 1959년 3월 10일 하루동안 시위에 참석한 티베트인들 중에 1만 5천여명의
      티베트인들이 사살되었으며, 티베트인들의 민중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중공군은
      6,000 여개의 불교사원 파괴와 12만명의 티베트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1950년에 중국이
      침략한 이래 70년대 후반까지 약 120만명의 티베트인들이 시위, 투옥, 사형, 고문 등으로
      사망했습니다.120만명은 당시 티베트 인구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를 지도자로 내세운 이 반란은 수많은 희생자를 낸 채 실패로 끝나고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많은 추종자들은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망명정권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과 함께 티베트에서는 중국 체제를 본 뜬 파시스트적 지배가 실시되어
        사유재산이 몰수되고 사원과 귀족의 영향 아래 있던 티베트의 사회구조는 농민조합을 중심으로 한
        집단체제로 바뀌었습니다.
        중국은 자치를 유지한다는 명목을 세우기 위하여 중국의 꼭두각시인 새 판첸 라마를 임시 행정부의
        의장으로 앉히고 수많은 불교 사찰 가운데 상업적으로 볼만한 것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였으며
        승려들의 대부분은 피신하거나 투옥되었습니다. 그 뒤 중국의 지배에 반발하고 적대적인 티벳민에
        대한 강제는 계속되었으며 1961년, 62년 기근으로 티벳민의 대항쟁이 일어나지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많은 티벳민들이 인도로 유입되고 게릴라전이 계속됨으로써 괴뢰의 판첸 라마도 그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1965년 중국 정부는 티베트를 자치구로 만들어 명목상에 불과한 민족자치로 눈속임하고 당시까지
        행정구역의 하나였던 창두 지구를 시짱 자치구에 편입시켰지만 독립을 향한 티벳인들의 저항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아래는 중국에 의한 티벳자치정부가 수립된 이후 일어난 티벳인들의
        항쟁목록입니다.
* 1987년 10월 1일: 59년 이후로 최대의 독립 시위 발생, 중국군경의 야만적 테러로 유혈사태 발생
* 1987년 10월 4일: 티벳민중 시가체에서 독립의거, 중국군경 유혈진압
* 1987년 10월 6일: 수도 라사에서 또다시 독립시위, 승려 60여명 체포
* 1987년 10월 7일: 중국정부, 티벳으로 통하는 외부통신 완전차단, 외국인 기자 15명에게 48시간 이내에
  티벳으로부터 철수할 것을 명령
* 1989년: 수도 라사에 계엄령 선포. 13개월동안 계엄령 유지 (89년 당시 티베트 서기는 현 후진타오
  중국국가주석)
* 1993년: 라사 거주민들의 생활고에 의한 시위발생
* 1998년: 티벳 청년당(Tibetan Youth Congress) 소속 6명 단식투쟁단 중 Thupten Ngodup 분신,
    다음날 12시 사망.
* 2000년: 중국 티베트자치구 (괴뢰)인민정부 출범, 티베트불교 4대 종파중 백교 지도자인 카르마파라마가
  인도로 탈출

정리: 중국한족이 1950년 침공시부터 지금까지
      난징대학살을 넘가하는 학살을 저질렀다
      그 수는 지금까지 150만명 정도에 달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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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국 16-03-02 00:26
   
진짜 중국은 신제국주의 국가같습니다
     
꼬꼬동아리 16-03-02 18:37
   
그렇죠 일본에게 당한거 생각하면 자기들이 그렇게
하면 안되는데 더 심할정도로 괴롭히네요
난징대학살 저리가라 할 정도로 더러워 보이네요
무좀발 16-03-02 21:36
   
현중국 중원에 있던 과거 제국들이 티벳과 전쟁을 한것은 거의 3000년이 넘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이기지 못했죠. 당나라 수나라.명나라... 그 이전부터
티벳은 지긋지긋한 중원국가들의 전쟁도전에 염증을 느껴 히말라야 산맥을넘을 정도 였습니다.
장기간의 티벳의 평화는 종교국가화되고  힘을 상실하게 됩니다.
청나라후기에도 근근히 버티었으나 모택동의 현대화된 무기에 굴복하고 맙니다.
불교제정일치 국가는 나라조차 잃어 버렸으나 조만간 다시 살아 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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