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륭제의 역사 의식
다이칭구룬/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漢族들은 끝임 없이 다이칭구룬/청으로 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민족 의식을 고취 시키는등 明나라 부흥 운동을 위해 반청 운동을 전개 했다.
그러자 다이칭 구룬/청의 6대 황제인 乾隆帝는 “그렇다. 우리는 소위 너희가 말하는 東夷 사람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숭상해 마지 않는 순임금과 주무왕도 모두 夷族이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고 너희가 존경하는 맹자가 직접 순임금은 東夷사람이요, 周武王도 西夷사람이다”라고 했다.
이어 건륭제는
“즉 東夷, 西夷는 단지 동서 지역을 가르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너희 明나라 출신들은 周나라의 후예를 자처한다 하니 서이 사람이고, 우리 청나라 사람들은 동이 사람이다.
동이 사람 순임금의 후예인 우리가 서이의 후예인 너희를 지배하는 것이 무슨 대수일 것인가”라고 말했다.
건륭제 유지의 근거로는 맹자가 <이루장구 하>에서 말하기를
舜生於諸風 移於負荷 卒於鳴條 諸風負荷鳴條 東夷之地 舜東夷之人也”
“순임금은 제풍에서 태어나고 부하로 이사하시고 명조에서 죽으셨는데, 제풍·부하·명조가 동이족의 땅이니 그는 동이사람이다.
라고 했으며,
또한 맹자가 '文王生於岐周 卒於畢郢 西夷之也”
“주나라 문왕은 기주에서 태어나 필영에서 죽었는데, 그는 서이사람이었다".
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건륭제의 명쾌한 이 말은 만주족과 한족의 분명한 민족적 구분을 설정하는 것이고 동이와 서이란 동서로 구분된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周武王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漢族을 자신들이 지배하는 것이 부당한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반문이다.
분명한 민족관의 이론으로 무장된 건륭제는< 흠정만주원류고>의 편찬과정을 모두 챙기고 진두지휘하며 자신이 직접 초안을 작성한 확고한 민족주의적 역사 이론가 였다.
<흠정만주원류고>의 범례를 보자.
凡在古為肅慎,在漢為三韓,在魏晉為挹婁,在元魏為勿吉,
在隋唐為靺鞨、新羅、渤海、百濟諸國,在金初為完顔部,
及明代所設建州諸衛並為考據異同,
옛날에는 숙신이라 불리었고, 한나라 때는 삼한, 위진때는 읍루, 원위때는 물길, 수당 때는 말갈, 신라, 발해, 모든 백제의 나라들, 금나라 초때는 완안부, 명대에는 모든 같은 것과 다른 것을 상고하여 합쳐서 건주라 했다. 수와 唐代에는 신라와 발해 백제의 모든 나라들을 말갈이라 했다는 놀라운 기록이다.
역사의 계승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 국사가 주장하는 대로라면 고구리는 건국부터 멸망에 이르기 까지 만주에서 명멸해 갔다고 하는데 건륭제의< 흠정만주원류고>에 고구리가 보이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청나라가 고구리에 대한 역사 컴플렉스 때문에 고구리를 의도적으로 기술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슨 역사 컴플렉스로 역사를 호도하는가?
고구리와 말갈은 同種異類라고 한다. 즉 종은 같지만 문화와 풍습 그리고 언어가 다르다는 말이다.
우리 삼국의 뿌리를 다시 살펴 보자.
고구리는 東胡(동호)이며 부여에서 나왔다고 한다. 북위는 부여에서 나왔으며 고구리와 백제는 부여에서 함께 나왔다고 한다.
즉 부여는 동호라는 말이다.
거란은 조선의 樂浪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위만 조선은 흉노다. 그런데 신라는 진한이며 진한은 묘예라고 한다. 묘예는 흉노의 다른 갈래다. 같은 흉노지만 신라는 고구리 백제 등과는 다른 흉노라는 것이다.
그런데 <흠정만주원류고>에서는 백제와 신라는 계림에서 함께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은 고구리와 백제 신라는 교집합 종족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는 "계승의식"이다.
부여와 백제 신라 그리고 발해는 우리 역사가 분명하다,
건륭제가 밝히는 역사의 계승은 부여와 백제 신라 그리고 발해다.
만약 청나라가 중공의 역사라면 부여와 백제 신라 발해를 계승한 우리 역사는 중공역사인가?
왜 우리는 역사를 해석하는데 수세적이며 소극적인지 모르겠다.
우리의 역사를 우리 역사라고 말을 못하는 우리나라.
내것을 내것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우리 대한민국.
한반도 영구 침탈의 목적으로 모든 기록을 한반도로 축약하여 한국 통사를 쓴 일제식민사관을 신앙처럼 믿는 우리나라 사람들.
거란(遼)이 고구리를 이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필자가 아니라 거란의 소손녕이며 桓因의 후손이라고 스스로 인파견임을 주장을 하는 것은 거란의 초대 황제인 아율 아보기이다.
그런데 일제식민사관을 신앙처럼 믿는 사람들은 거란이 고구리를 계승하였다는 필자의 말에 불같이 화를 낸다.
징기스칸의 영역을 자랑하던 고구리의 역사를 믿는다면 거대한 고구리를 계승한 나라가 어찌 고려 밖에 없겠는가?
고구리를 계승하였다는 나라는 투르크(돌궐)와 발해도 있다.
발해를 자신들의 조상 국가로 인식하는 것은 청나라다.
스스로를 동이[東夷]라고 밝히고 있으며, 중국의 역사와는 전혀 다르게
신라,백제,말갈,발해를 모국이라고 스스로 사서에 그렇게 썼다.
청의 강희제는 明나라 지배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위해 <明史>를 썼다.
원나라는 한족들을 지배하기 위한 당위성을 위해 원말삼사를 썼다.
일제는 조선을 영원히 지배하기 위해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고 한국 통사를 썼다.
원과 청이 중공역사가 되는 논리라면 일본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역사인가? 믿고 믿지 않는것은 우리 후손들의 몫이며 판단은 독자들이 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