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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7 11:50
[한국사] 조선 초기의 북방영토에 대한 소견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939  

1. 태종과 영락제의 국경조약


공험진 1.png
          조선 초 조선과 명 사이에 합의된 국경선(여진족 귀속문제를 제외하곤 국경선 자체에 이견은 없었슴)

a)조선 태조 이성계는 재위 1(1392) 728일 즉위 조서에서 국호는 그전대로 고려라 하고 의장(儀章)과 법제(法制)는 한결같이 고려의 고사(故事)에 의거한다고 말했다. 고려의 의장과 법제를 계승했다는 말은 고려의 강역도 계승했다는 뜻이다.

태조 이성계를 비롯해서 정종·태종·세종 등은 모두 고려의 북방 강역이 현재의 요령(遼寧)성 심양(瀋陽) 남쪽 철령(鐵嶺)과 흑룡강(黑龍江)성 목단강(牧丹江)시 남쪽 공험진 까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jpg
                           태종때, 공험진과 철령을 국경선으로 한다는 실록(4년 5월 19일 기사)

 

b)특히 태종은 이 국경선을 명나라 영락제로부터 다시 확인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종은 재위 4(1404) 519일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김첨(金瞻)과 왕가인(王可仁)을 명나라 수도 남경에 보내 두 나라 사이의 공식적인 국경선 획정을 다시 요구했다.

 

밝게 살피건대(照得), 본국의 동북 지방은 공험진부터 공주(孔州길주(吉州단주(端州영주(英州웅주(雄州함주(咸州) 등의 주()인데, 모두 본국의 땅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태종은 명나라 영락제에게 공험진 남쪽 땅에 대해서 설명했다. 고려 고종 45(1258) 12월 고려의 반역자 조휘와 탁청 등이 압록강 북쪽~두만강 북쪽 땅을 들어 원나라에 항복하자 원나라에서 그곳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했지만 공민왕이 재위 5(1356) “공험진 이남을 본국(本國·고려)에 다시 소속시키고 관리를 정하여 다스렸다는 것이다.

 

c)이후 명나라가 심양 남쪽 지금의 진상둔진(陳相屯鎭)에 철령위를 설치하려 하자 고려 우왕이 재위 14(1388) 밀직제학 박의중(朴宜中)을 명 태조 주원장에게 보내 공험진 이북은 요동에 다시 속하게 하고 공험진부터 철령까지는 본국(고려)에 다시 속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명 태조 주원장이 철령 때문에 왕국(고려)에서 말이 있다면서 철령~공험진까지를 그대로 고려 강역으로 인정했다는 설명이었다. 태종은 김첨에게 함경남도 철령부터 두만강 북쪽 공험진이 본국(本國·고려 및 조선) 강역이라는 시말을 자세히 적은 국서와 지도까지 첨부해서 영락제에게 보냈다.

 

2. 여진족들의 귀속권

 

a) 문제는 압록강 북쪽~두만강 북쪽에 사는 여진족들의 귀속 문제였다. 여진족들이 세운 금()나라가 원나라에 붕괴된 이후 국가가 없었으므로 명나라에서 여진족들도 사는 이 지역을 자국령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 지역에는 이역리불화(李亦里不花)” 등 이 살고 있었다. “이역리불화는 이화영(李和英)이란 조선 이름도 갖고 있었는데, 조선 개국 1등 공신이자 이성계의 의형제였던 이지란(李之蘭)의 아들이었다.

태종은 이 여진족들은 조선에서 벼슬도 하고 부역도 바치는 조선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역리불화 등 은 비록 여진 인민의 핏줄이지만 본국 땅에 와서 산 연대가 오래고또 본국 인민과 서로 혼인하여 자손을 낳아서 부역(賦役)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그곳에 살고 있는 여진의 남은 인민들을 전처럼 본국(本國·조선)에서 관할하게 하시면 일국이 크게 다행입니다.”

 

국서와 지도를 가지고 명나라에 갔던 김첨이 돌아온 것은 다섯 달 정도 후인 태종 4(1404) 101일이었다. 김첨은 영락제의 칙서를 받아 돌아왔다.

 

b) “상주(上奏)하여 말한 삼산 천호 이역리불화 등 인원을 살펴보고 청하는 것을 윤허한다. 그래서 칙유한다.” 이역리불화 등 이 사는 요동땅이 조선 강역임을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로써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선도 철령과 공험진이라는 사실이 영락제에 의해 재차 확인되었다. 태종은 조선과 명의 국경선이 심양 남쪽 철령부터 두만강 북쪽 공험진까지로 확정된 사실을 크게 기뻐하고 계품사 김첨에게 전지(田地) 15결을 하사했다.

 

c)세종도 마찬가지였다. 세종은 재위 8(1426) 4월 근정전에서 회시(會試)에 응시하는 유생들에게 내린 책문(策問·논술형 과거)에서 공험진 이남은 나라의 강역이니 마땅히 군민을 두어서 강역을 지켜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서 서술하라고 명령했다.

 

작자.jpg

d)‘세종실록’ 21(1439) 36일자에 명 태조 주원장이 공험진 이남 철령까지는 본국(조선)에 소속된다고 했다고 기록한 것처럼 조선의 국경은 압록강 북쪽 철령부터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까지였다.

 

e) 최윤덕, 김종서 등은 세종의 명을 받들어, 조선 강역 내에 방어용 도시(46)를 세우고, 반 조선계 여진족을 몰아내며 공험진 이남 영역을 확실히 하였다


3. 현실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선에 대한 명확한 이해 및 양국간에 동의가 있었슴에도, 조선의 영역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한정이 된다(이른바 셀프 국경 축소 -> 소중화주의 & 사대주의 결합) 


a) 현실적으로 압록강 -두만강 라인을 넘어서 행정권을 행사할 만한 실익이 없었다.

    (군대주둔 비용 부담과 군 체계가 사림정권 이후 비정상화 됨)


b) 고려와 같이 외왕내제 체제가 아니었기에, 제후국의 역할을 할 북계/동계 지역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고려국은 북계와 같은 영향력 지역이나, 탐라국이나, 여진부족을 제후국으로 삼아, 황제국 역할의 부속품

    으로 삼음)


c)결정적으로 하삼도민(경상,전라,충청)을 북쪽에 옮기는 사민정책이 대 실패를 거두어, 실질적으로 남방민

   의 북방거주 거주정책이 이름만 남고, 유명무실화 되었다. 


d)임진왜란을 겪으며, 요동방면이, 청나라 건국 후에는 청나라의 만주의 봉금령이 실시되었다. 


e)그럼에도 임난 전 요동의 상당수 거주민은 여전히 조선계(이여송 등, 자신이 조선계라는 정체성도 지녔슴)

  였고, 두만강 이북지역도 사냥이나, 약초를 구하기 위해 활발한 조선인들의 활동이 있었다.   


f)훈구가 몰락하고, 사림이 정권을 잡으면서 북방에 대한 이해도 관심도 없어졌다.

   (세조 때 까지만 해도, 중앙의 관리들이 북방의 도총관을 지낸 인물도 많았고, 요동이나, 공험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인물이 많았지만, 사림의 정권장악 후에는 소중화 논리만 팽배해 졌슴)


ea5_012_i1.jpg
      대마도, 독도는 우리강역으로 인식한 동국여지도 


ea5_014_i1.jpg
        조선국 팔도 총합도 (사림의 사대논리를 충실히 반영한 조선강역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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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ender 18-03-27 12:04
   
음.....여말선초의 국경선은 한번, 감방친구님께서 정리해 주신적이 있습니다, 한번 그 글 검색해 보시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history2 18-03-27 12:12
   
아 그렇군요... 찾아보겠습니다....제가 나름 정리한 생각인데....아무튼 철령 -공험진이 우리의 영토로 인정을 받았지만, 이렇게 두만강 이남으로 쪼그라 든건,,,우리의 책임이 큰데, 저는 그것의 가장 큰 이유가 사대주의 때문에,,,,더 이상 제후국 역할을 할 지역이 필요가 없게 된 것도 큰 이유라고 생각을 합니다...조선은 정말 확실히 다스릴 수 있는 곳만 행정권을  완전히 행사했고, 영향력이란 구역은 존재하지 않은 듯 합니다.
감방친구 18-03-27 12:46
   
태종때, 공험진과 철령을 국경선으로 한다는 실록(4년 5월 19일 기사)
 
ㅡㅡㅡㅡ 공험진과 철령이 국경선이라는 말이 아니라 공험진부터 철령 (함경남도) 까지 본래 우리 땅이었다는 말입니다
ㅡㅡㅡㅡ 이 철령은 철령위가 설치된 철령이 아닙니다
ㅡㅡㅡㅡ 명 철령위는 혼하 중류 봉집현에 최초 설치됐다가 현 테링 (철령)시로 옮겨갑니다
감방친구 18-03-27 12:50
   
세종실록’ 21년(1439) 3월 6일자에 명 태조 주원장이 “공험진 이남 철령까지는 본국(조선)에 소속된다”고 했다고 기록한 것처럼 조선의 국경은 압록강 북쪽 철령부터 두만강 북쪽 700리 공험진까지였다.
 
ㅡㅡㅡㅡ 이 말도 잘못입니다
ㅡㅡㅡㅡ 압록강 북쪽 철령이 아닙니다

철령은
ㅡ 철령1 함경도
ㅡ 철령2 봉집현
ㅡ 철령3 현 테링시

지명 자체가 철령인 곳은 철령1
2와 3은 철령위 자리

여말선초 명과의 국경은
명일통지에 봉집현을 기준으로 동서 500리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당시의 철령위는 현 테링시에 있었습니다
감방친구 18-03-27 12:54
   
최윤덕, 김종서 등은 세종의 명을 받들어, 조선 강역 내에 방어용 도시(4군 6진)를 세우고, 반 조선계 여진족을 몰아내며 공험진 이남 영역을 확실히 하였다.

ㅡㅡㅡㅡ 확실히 하지 못했어요 무력으로 제압을 하며 겨우 유지를 했을 뿐으로 두만강 녹둔도가 전초기지였을 뿐입니다
ㅡㅡㅡㅡ 즉 여진족은 조선 땅인 수빈강~두만강 사이 땅에 들어와서 설치고 다닌 것이죠
history2 18-03-27 13:03
   
(감방)친구님의 의견이 무엇인지는 알겠구요,,,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사실은 현실 부분입니다...인정 받았든 , 원래 우리 땅이였든 아무튼 상실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마음에 아픕니다...
     
쇠고기 18-03-27 13:11
   
그건 동감합니다.

지키지 못한 땅이 참 많죠.

이제 와서 침 흘려봐야 다른 나라 땅 돼버린..
     
감방친구 18-03-27 18:39
   
(감방)친구님의 의견이 무엇인지는 알겠구요,,,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사실은 현실 부분입니다..
ㅡㅡㅡㅡ
뭔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본문에서 님이 잘못 기술했기에 지적한 것인데
          
history2 18-03-27 18:41
   
제가 님의 논점을 잘 못 파악했군요.. 함경남도에 위치한 철령부터 ~ 압록강 상류, 두만강 북쪽에 위치한 공험진이라 해야 정확하겠네요

1번지도도 그 취지에 맞군요....철령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비좀와라 18-03-27 14:39
   
감방친구님...

감방친구님의 의견 대로 라면 조선은 고려의 양계지역을 명나라에 할양 했다는 소리가 됩니다.

그럼 먼저 양계지역에 대한 정의가 있어야 겠죠? 강동 6주는 양계중 북계에 속하거든요? 북계는 평안도를 말하는 것 이고요.

강동 6주가 요하에 있다고 고증을 하고선 뜬금없이 조선의 북쪽 영토는 지금의 압록강이라? 이게 기존의 강단 사학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아세요?

기존의 강단사학은 강동 6주를 현 압록강에 비정하고 거기에서 거란과 고려의 전쟁이 일어났다고 설명 하거든요? 왜 그럴 까요? 강동 6주가 북계에 속하고 북계는 평안도 특히 평북지방을 말하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양계지방의 위치선정이 틀렸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고 감방친구님 직접 고증 했지 않나요?
     
감방친구 18-03-27 19:09
   
고려 전기 서북계
잉커우~ 태자하~본계~무순~장춘

고려 전기 압록강=혼하

고려 전기 동북계=용천~목단강/공험진

공민왕이 수복했으나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할양이 아니라
서북계는 봉집현에서 봉황성까지, 그리고 나중에는 현 압록강까지 조선 전기에 걸쳐 그 국경라인이 밀린 겁니다
명나라의 위세에 앉아서 빼앗긴 겁니다
history2 18-03-27 18:54
   
철령: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과 강원도 회양군 하북면 사이에 있는 고개.

철령: 선양[瀋陽] 북동쪽, 랴오허강[遼河] 동쪽 창다철도[長大鐵道:長春∼大連] 연변에 위치한다. 요(遼)나라 때에는 인저우[銀州]라고 불렸고, 명대(明代)에 톄링웨이[鐵嶺衛], 청대(淸代)에 톄링현의 설치되었다.
     
감방친구 18-03-27 19:13
   
명나라와 여말선초의 우리는 서로 철령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유는 몽골 침략 초기에 함경도 지역의 반역자 (이름 기억 안 남)가 그쪽 땅을 들고 몽골에 귀부했고 몽골에서 그 지역을 쌍성총관부에 소속시키고 이 과정에서 요동의 쌍성과 함경도에 있던 쌍성 비스무리한 것이 혼동을 일으켰고 또 나중에 동녕부에 속하게 되면서 쌍성총관부의 관할지역에 혼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history2 18-04-01 21:35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조선 초기의 영토의식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백두산이 나타나 있고, 공험진·선춘령이 언급돼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지식인인 사대부들은 조선의 영토가 고려 때 윤관이 세운 선춘령 비까지 뻗어 있다고 생각했다. 선춘령은 두만강 건너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지만 이 비석은 없어졌다. 이곳이 현재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한다. 중국 쪽 학자는 선춘령이 지금 북한 땅에 있다고 하지만, 한국 쪽 역사학자는 이곳이 만주지역에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면에서 박학다식했던 세종이 선춘령비 또한 간과했을 리 없다. 세종실록(세종21년 8월 6일 기사)에는 이 같은 기록이 잘 나와 있다.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에게 전지하기를,

“동북 지경은 공험진으로 경계를 삼았다는 것은 말을 전하여 온 지가 오래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본국의 땅을 상고하여 보면 본진이 장백산 북록에 있다 하나, 역시 허실을 알지 못한다. ‘고려사’에 이르기를, ‘윤관이 공험진에 비를 세워 경계를 삼았다’고 하였다. 지금 듣건대 선춘점에 윤관이 세운 비가 있다 하는데, 본진이 선춘점의 어느 쪽에 있는가. 그 비문을 사람을 시켜 찾아볼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김종서의 답은 세종실록에 나타나 있지 않다. 4군6진을 개척했던 김종서는 과연 선춘령을 찾지 못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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