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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8 17:52
[한국사] 고조선의 수도의 이동과 위치에 대한 소견(1)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768  

1) 고조선의 첫 수도 평양은 어디인가?


홍산문명3.jpg

삼국유사에는 고조선의 도읍지에 대한 두 가지 기록이 있다.

 

a)“<위서 魏書>에 이르기를 지나간 2천 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나라를 세워 이름을 조선이라고 하니 중국의 요와 같은 시대였다.”는 기록이 있다. <위서>에는 단군조선의 도읍지가 아사달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b)“<고기 古記>에 이르기를 단군왕검은 요가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는데 그곳을 궁홀산이라고도 하고 금미달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다스리기 15백 년이 지나, 주나라 무왕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로 돌아와 은거하다가 산신이 되었다.”는 취지의 기록이 있다.

 

정리하면, <고기>에는 단군조선의 도읍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a)평양 b)백악산 아사달(궁홀산, 금미달) c)장당경 d)아사달 순으로 옮긴 것으로 되어 있다.

 

<위서>에서는 도읍지를 아사달이라고 하고, <고기>에서는 첫 도읍지를 평양성이라고 한 것을 들어, 아사달과 평양성을 동일한 곳으로 파악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위서>가 아사달을, <고기>가 평양성을 첫 도읍지로 각각 지시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 둘이 동일한 지역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편찬자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위서>는 단군조선의 도읍지로 아사달만 거론하고 있는데 반해, <고기>a)평양성, b)백악산 아사달, c)장경당, d)아사달을 거론하고 있다.

 

<위서>보다는 <고기>가 보다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서>의 편찬자는 어느 시점에서의 정보를 근거로 도읍지를 아사달로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전체를 모르고 부분적인 사실만 파악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기>에서는 별칭이 있는 경우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다시말해서, 백악산 아사달은 a)궁홀산이라고도 하고 b)금미달이라고도 한다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평양성이 아사달이라고도 불렸다면 이러한 설명을 덧붙였을 것이다.

 

일연은 단군조선의 첫 도읍지를, 고려 당시의 서경, 즉 평양으로 판단하였다. 그러나 일연이 고조선의 수도가 평양이라 주장한 이후, 조선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단군조선의 도읍지를 현재의 평양으로 받아들인 문제가 발생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서경이라 불리우는 평양과, 고구려의 평양과는 같은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박지원(朴趾源, 1737-1805)<열하일기 熱河日記>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평양은 대동강 부근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a)당서 唐書에는 봉황성을 왕검성이라 하기도 한다고 기술되어 있고, <당서> 지리지에는 봉황성을 평양성이라 하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봉황성은 요녕성(遼寧省)에 고구려 산성이 있던 곳이다. 그런데도 조선의 선비들은 대동강 부근의 평양만 평양인 줄 알고 한사군을 압록강 안쪽으로 몰아넣고 패수를 한반도에서 찾고 있다.”


봉황성.jpg


지명은 처음에 보통명사였던 것이 고유명사로 굳어진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지형이나 역할을 하는 지역에 동일한 명칭이 부여되는 것이 다반사였을 것이다.

 

, 평양이란 넓고 평평한 땅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지형을 가진 곳이라면 얼마든지 평양(平壤)이나 양평(壤平)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을 것이다.

고려시대만 해도 지명이 어느 정도 굳어져서 고유명사화 되었을 것이다.

일연이 이러한 지명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지, 아니면 훗날의 조선의 사대부들이 그러한 인식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대의 평양을 자신이 알고 있는 평양으로 한정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여전히 강단에서는, 우리 선조가 인정한 평양의 위치를 왜 이제와서, 중국의 사서를 가지고 비판하느냐 항변하고 있는 것이 현 우리 사학계의 현실이다.

고고학적 근거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에, 바이칼호 부근에서 신석기문명을 가지고 남하한 북방계 인종은 만주,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에까지 흘러갔다고 한다.

 

이들은 요하문명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 문명을 만들었고, 중국의 황하문명(黃河文明), 장강문명(長江文明)을 이룬 남방계와 차별화 된 문화인류학적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었다.

 

특히 서쪽이 사막이나 산맥으로 가로막힌, 황하문명이나 장강문명 보다, 요하문명을 이룬 이들은 앞선 청동기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우수한 청동기문명를 바탕으로 건국된 나라가 바로 단군조선이다.

 

요하문명이, 중국보다 먼저 청동기문명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지역에서 고대국가가 먼저 출현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문명이란 중심지에서 주변으로 흘러가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식에 입각해서 볼 때 단군조선과 같이 당시로서는 강력한 고대국가가 요하문명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한반도 서북부에서 발생하였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을 한다.

 

단국대학교 교수 윤내현님은, 대동강 유역의 평양을 도읍지로 해서 단군조선을 건국한 세력이 힘을 키워 만주에서 요서까지 영토를 넓히면서, 도읍지를 평양에서 요서로 옮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상황을 놓고 볼 때, 홍산문화 유적 부근(요서)에서 고조선이 발생하여 한반도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하였다는 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견해라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단군조선의 첫 도읍지인 평양성은 홍산문화 유적의 중심지에 있어야 한다.

 

단군조선은 첫 도읍지를 평양성에 두었다가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는 구절에서,

처음, 고조선의 평양성은 위에서 논증한 바와 같이, 홍산문화 유적 부근 즉 요하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홍산문명.jpg


2) 두 번째 도읍지가 된 백악산 아사달은 어디일까?

 

a) 하북성 창려현 : 낙랑군 조선현(朝鮮縣)이다. <한서 漢書> 지리지에 따르면 낙랑군에는 25개현이 있었는데, 그 수현(首縣)이 조선현이라는 설명이 되어있다. 그러나 진,한 당시의 해안선을 고려하면 현, 창려로 비정되는 지역은 해수에 잠겨있어야 함으로, 당시 해안선을 고려하면 창려는 훨씬 내륙으로 이동되어야 한다. 


1904_628_2427.jpg

1.jpg


갈석산과 더불어 이동된 지명들.jpg

 

a)후한(後漢)의 학자인 응소(應劭)는 조선현을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봉했던 곳이라고 설명하였다. <진서 晉書> 지리지에도 조선현은 주나라가 기자를 봉한 땅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 기자조선의 도읍지가 낙랑군의 수현인 조선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기전 195년경에 연나라의 위만(衛滿)은 기자조선으로 망명한 후 정변을 일으켜 기자조선을 멸망시키고 위만조선을 세웠다. 위만조선의 도읍지는 왕험성(王險城)이다. 왕검성(王儉城)이라고도 한다.

왕험성은 기자조선의 도읍지와 같으므로 낙랑군 조선현에 위치하였을 것이다.

 

응소는 요동군 험독현(險瀆縣)에 대해 조선왕 위만의 도읍지다. 물이 험한 것에 의지하므로 험독이라고 한다.”고 설명하였다. <사기>의 주석에서 서광(徐曠)은 험독현이 창려에 있다고 했다. 위만조선의 도읍지가 하북성 창려현에 있었다고 본 것이다.

창려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므로 위만조선의 왕험성은 갈석산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요서지역이다.

윤내현님은 북대하(北戴河)에서 발굴된 고대의 궁궐터를 왕험성의 유적으로 보고 있다.

 

images.jpg

DSC07602.jpg

b)<위서 魏書>조선현은 전한과 후한 시대로부터 진 시대에 이르기까지 낙랑군에 속해 있다가 폐지되었다. 서기후 432년에 조선현의 주민들을 비여현으로 이주시켜 조선현을 다시 설치하고 북평군에 속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낙랑군이 고구려에 의해 축출당하자 북위가 조선현을 비여현으로 옮기고, 북평군에 소속하게 하였다는 것이다(이른바 교치) 비여현은 지금의 난하 유역에 있었다. , 조선현의 원래 위치가 난하의 동쪽 부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난하를 중심으로 창려지방에서 조선현 즉, 아사달과 낙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 단군조선이 옮긴 장단경은 어디인가?

 

a)유주의 당장경설: 삼국유사에 따르면 기자가 동쪽으로 와서 기자조선을 세우자 단군조선은 그 도읍지를 백악산 아사달에서 장당경으로 옮겼다고 한다. 허목의 미수기언(眉叟記言)에는 장당경을 당장경(唐臧京)이라고 표시하였으며, "유주(幽州)에 당장경(唐臧京)이 있었으니 고려사(高麗史)에서는 그곳을 단군조선의 도읍지라고 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유주는 창려의 서쪽에 있슴으로 이치에 맞지 않다.

 

. 단군조선이 도읍지를 옮긴 것은 아무튼, 힘의 원리에 의해 단군조선이 기자조선에 의해 밀려났기 때문이다. 기자조선이 도읍한 곳은 낙랑군 조선현이 되었다. 그렇다면 백악산 아사달은 낙랑군 조선현과 같은 곳에 있었을 것이다. 기자조선은 단군조선의 도읍지에서 단군을 밀어내고 새로운 정권을 세운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기자가 서쪽으로부터 왔으므로 단군조선은 동쪽으로 옮겨갔을 것이다.

 

b)대능하 금서시 설: 중국의 고고학자 복기대는 대릉하(大凌河) 유역을 주목한다. 조양(朝陽) 부근에 금서시(錦西市)가 있다. 1997년 요녕성 금서시 연산구(連山區)에 있는 고성(古城) 터에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이라고 쓴 봉니(封泥)가 발견되었다.

금서시는 지금의 호로도시(葫蘆島市, 중국명 후루다오시)로서 요녕성 서쪽에 위치한다. 복기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봉니와 함께 수습된 유물들에 대한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해준다.

, 3기층의 제2단에서 토착문화(고조선)로부터 한문화(지나)로 크게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지배계층이 사용했던 유물이 많이 수습되었다. 이것은 지금의 요녕성 금서시 연산구 여아가 태집둔 소황지 지역에서는 제3기층 후반기인 중국의 전한시대에 와서 한의 지배계층이 많이 이주하여 거주했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토착문화, 즉 고조선문화가 있었는데 그 후 한문화가 대거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부근의 고분에서는 고조선 유물인 비파형동검이 출토되고 있다.

이를 통해, 고조선의 영역이 어느지점 에까지 이르렀는지 추측할 수 있다,.


난하요하일대신석기유적지.jpg


c)
심양인근 본계시설: 한편 윤내현은 험독(險瀆)은 검독(儉瀆)을 의미하며, 검독은 조선의 옛 도읍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터잡아 단군조선의 도읍지로 두 곳의 후보지를 물색하였다. <요사 遼史> (지리지)에 집주회중군(集州懷衆軍)은 한나라 때 험독이었다는 설명이 있다. 집주회중군은 지금의 심양시(瀋陽市) 동남 지역이다.

그래서, 윤내현은 심양시 동남쪽에 있는 본계시(本溪市)를 지목한다. 본계시에는 조선령(朝鮮嶺)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고 한다. <대청일통지 大淸一統志>에 험독 옛성이 광녕현(廣寧縣) 동남에 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곳은 대릉하 동부 연안에 있는 지금의 북진(北鎭) 근처이다. 윤내현의 고증에 따르면 장당경은 지금의 본계시나 북진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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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3-28 18:26
   
대개 사서에서 燕東有 朝鮮、遼東 요렇게 표기가 되어 있다면
朝鮮、遼東 순서상 앞의 조선朝鮮은 극동쪽이고, 요동遼東은 동쪽이 됩니다.
일반지명이 함께 나열되면 첫번째가 가장 동쪽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登州東北海行,過大謝島、龜歆島、末島、烏湖島三百里。北渡烏湖海,至馬石山東之都里鎮二百里。
東傍海壖,過青泥浦、桃花浦、杏花浦、石人汪、橐駝灣、烏骨江八百里。
등주에서 바닷길로 동북쪽으로 가는데, 대사도(大謝島)·귀흠도(龜歆島)·말도(末島)·오호도(烏湖島)까지 300리나 된다.
북쪽으로 오호해(烏湖海)를 건너 마석산(馬石山) 동쪽의 도리진(都里鎮)까지 200리나 된다.
동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청니포(靑泥浦)·도화포(桃花浦)·행화포(杏花浦)·석인왕(石人汪)·탁타만(橐駝灣)·
오골강(烏骨江)을 지나는데 800리나 된다.
===>
동북쪽으로 가는데, 대사도(大謝島)·귀흠도(龜歆島)·말도(末島)·오호도(烏湖島)까지 ....
=> 배치를 해주면... (서쪽)-오호도-말도-귀흠도-대사도-(동쪽)

東傍海壖,過青泥浦、桃花浦、杏花浦、石人汪、橐駝灣、烏骨江八百里。
=> (서쪽)-오골강- 탁타만 -석인왕 -행화포 -도화포 - 청니포 -(동쪽)
실제로도 고지도에서 청니포는 도화포의 동쪽입니다.
history2 18-03-28 18:34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건, 고조선의 시류가 요하문명의 홍산에서 시작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적봉 -> 평양-> 창려->대능하의 금서 로 전개를 했습니다..... 그래서 소견이라 밝힌것 이고(제 생각) 먼저 요하문명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제 의견이 100% 맞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소설이라 말씀하시면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저 요하문명의 물결이 서->동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니, 서->동으로 이동을 하게 되네요 ^^
     
도배시러 18-03-28 18:40
   
저 당시의 해수면 높이가 나오는 지도가 있다면 좋겠네요.
현재 지도에서 상상을하면 어렵습니다. 대개 조개무덤이 해안선의 기준이죠.

산동반도 부근은 물바다였는데... 오늘날은 개천이 흐르는 수준이죠.
요하쪽도 의무려산 동쪽이 바다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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