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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9 12:30
[기타] 동남아시아 유일의 백인왕국 '브룩 사라와크'
 글쓴이 : history2
조회 : 2,707  

동남아시아 역사에 유일한 백인 왕조가 있었다. 보르네오섬 사라와크(Sarawak)주를 다스리던 영국계 브룩(Brooke) 왕조다. 브룩 왕조는 2차 대전 직후에 몰락하고, 사라와크주는 현재 말레이시아 연방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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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왕조의 영토(붉은부분)

이 백인왕조의 시조는 제임스 브룩(James Brooke, 1803~1868)이다. 1841년부터 1946년까지 3대에 걸쳐 사라와크를 통치하다, 말레이시아 연방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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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조의 시조 제임스 부룩

1)건국의 배경

16~17세기 브루나이 왕국은 그 세력을 오늘의 북부 보르네오섬 사라왁 주, 사바 주 지역으로 뻗어 나갔었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였던 브루나이 왕국은 필리핀 쪽으로 부터 가톨릭 세력인 에스파냐와 충돌이 생겼었고 결국 1578년 브루나이 왕국의 수도는 에스파냐에 의해 점령당했다. 17세기 중반에서야 포르투갈과 동맹하여 에스파냐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때부터 외세의 간섭이 계속되어왔고 영국,네덜란드 등 식민세력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나라의 힘은 약해지고 술탄은 무력했으며, 왕실 내부에서는 서로 패가 갈려 싸움을 일삼으니 지방 족장들의 세력이 커져 술탄의 권위를 무시하고 맞서곤 하였다.

결국 18398, 사라왁에서 이반족이 반란을 일으킨다. 술탄은 이를 진압하지 못했고 반란은 사바 주 지역까지 뻗어나가게된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영국인 제임스 브룩이다. 제임스 브룩은 원래 동인도회사의 군인이였는데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으로 배를 구입, 그리고 반란군과 힘겹게 싸우고 있던 브루나이로 가서 반란군 진압에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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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란군을 진압하는 브룩 


그 사례로 당시 브루나이 왕국의 술탄이였던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2세가 그를 사라왁의 라자로 봉하였고 이것이 바로 전체 역사에서도 해괴한 아시아의 백인왕조가 건국하게된 계기이다.

이 백인왕조를 세운, 제임스 브룩은 1803년 영국령 인도 캘커타에서 가까운 반델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12살에 영국으로 돌아가 몇 년간 학교에 다녔지만 중퇴하고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다.


2) 사라와크 브룩 왕가의 창시자 제임스 브룩

 1819년 인도로 돌아가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벵골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그의 군 생활은 불행했다. 영국-미얀마 전쟁에 종군해 아샘 지방에서 공을 세웠지만, 1825년에 심각한 부상을 당해 요양을 위해 영국에 돌아갔다. 1930년 치료를 마치고 인도 마드라스로 갔지만, 동인도 군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는 전역을 하게 된다. 전역후 제임스는 극동아시아 지역에서 무역업을 해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탐험을 하고 싶었다. 1833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3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상속받았다. 그는 그 돈으로 범선 로얄리스트(Royalist)호를 구입했다.

이 범선은 142톤으로, 30년전 영국 해군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 해군을 물리칠 때 투입한 전함과 동등한 급수였다. 왕립요트협회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이 배는 영국 해군기(White Ensign)를 게양하고 영국 해군으로서의 권리도 부여받고 있었다. 로얄리스트호는 대포를 비롯해 중화기를 장착한 개인 전함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이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 섬들을 탐험한 후에 지중해를 여행할 생각이었다.18388, 제임스는 이 배에 올라타 보르네오섬의 쿠충(Kuching)이란 곳으로 갔다. 쿠충은 사라와크주 서쪽에 있는 항구도시였다(나중에 사라와크의 수도가 된다.) 보르네오섬은 토착 브루나이 왕조가 14세기 후반부터 다스리고 있었다.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이 왕조는 왕을 술탄(sultan)이라 불렀다. 제임스가 쿠충에 도착할 무렵엔 23대 오마 알리 사이푸딘 2(Omar Ali Saifuddin II)가 재위에 올라 있었다.


3)제임스 브룩의 함대와 반란군과의 전투

당시 사라와크에선 브루나이 왕가에 저항하는 반란이 일어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제임스가 쿠충에 입항했다는 소식을 듣고 브루나이 술탄의 삼촌이자, 섭정이었던 무다 하심( Muda Hashim)이 만나자고 제의를 해왔다.

무다는 제임스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제임스는 적극 돕겠다고 약속하고 로얄리스트호를 반군 토벌에 투입했다.

말레이 해협에서 해적질을 하던 반란세력들은, 로얄리스트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제임스의 도움으로 해적들이 소탕되자, 브루나이 술탄은 기뻐했다. 하지만 브루나이 귀족 중에는 제임스의 승리를 질투하는 세력이 있었다. 그들은 무다 하심과 그의 세력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고 반란을 일으켰다. 제임스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제압하지 못하고 중국에 주둔하던 영국 해군에 지원을 요청했다. 덕분에 술탄은 다시 왕권을 회복하게 되었다.

1841년 브루나이 술탄은 고마움의 표시로 사라와크의 통치권을 제임스에게 이양했다. 제임스는 자신의 무력을 바탕으로 사라와크 영지를 넓혀 갔다. 제임스는 1841년에 북()보르네오의 라부안(Labuan) 섬을 점령해 영국에 상납했다.

제임스는 형식적으로는 브루나이 술탄의 속국을 자처하며 왕의 칭호로 술탄(sultan)보다 한 등급 낮은 라자(Rajah)를 사용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브루나이 왕국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사라와크를 지배했다.

영국 정부는 1846년에 제임스에게 라부안 섬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다음해에 기사(Knighthood) 작위를 내렸다. 제임스는 사라와크 왕이자 라부안 총독이 되었고, 영국으로선 자국 시민이 통치하는 사라와크를 보호령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제임스는 어려서부터 탐험을 좋아 했다. 1852년에 생물학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를 만나 8년에 걸쳐 동남이 알대 섬들을 탐험하며 식생 조사를 했다.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왕위를 조카 찰스 브룩에게 위임하고 영국에 돌아가 1868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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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대 제임스, 2대 찰스. 3대 바이너 브툭

4) 백인 부룩왕조와 영국정부

제임스 브룩이 사라왁에서 왕으로 봉해지자, 영국 내에선 굉장히 핫이슈로 다루어 졌고 이를 이용하여 동남아시아에서의 세력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다. 영국은 동남아시아 진출에 대해 18~19세기동안 네 차례의 과감한 작전을 진행 하였다.

1)영국 프랜시스 라이트가 1786년 페낭에 도착해 영국 국기를 게양한 것이고

2)자국의 이익에 철저했던 제국주의자 래플스 선장이 주도하였는데, 래플스는 조그만 어촌에 지나지 않았던 싱가포르의 중요성을 간파했고, 1819년 이 섬을 일방적으로 점령한 후 영국의 지배를 선언하였다.

3)네덜란드가 차지하고 있던 말라카를 빼앗는 작전이였는데, 1800년 초는 나폴레옹 전성시대로 네덜란드 역시 프랑스가 점령하고 있던 상태였으므로 말라카 또한 자동으로 프랑스 영토에 편입될 처지였다. 이에 대해 극렬히 반감을 가지고 있던 영국으로서는 반드시 막아야할 숙제로 작용되었다. 결국 영국은 프랑스가 말라카를 차지하기 이전에 일방적으로 점령한다.

4)그리고 바로 이 제임스 브룩이 보르네오 북부 사라왁의 왕이 된것인데, 사실 이 작전에 대해서는 앞서 서술한 바대로, 영국이 직접적으로 계획한게 아니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작전들을 통하여 영국은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내에 자신들의 세력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다. 고로 영국계 왕조인 사라왁 왕국과는 당연히 협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백인왕조의 초대 국왕 제임스 브룩은 싱가포르와 홍콩에 주둔하는 영국 해군을 이용하여 30여 년간 계속해서 브루나이 왕국의 영토를 잠식하기 시작했고, 결국 사바 주까지 집어 삼키는데 성공하여 위의 지도에 보이는 영역을 만들었다. 또한 1846년 사라왁 왕국의 종신지배권까지 인정받아 백인왕조의 기틀을 확실히 다졌다. 결국 사라왁 왕국은 영국 식민지령에 편입이 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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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룩왕국의 화폐, 국기, 국장 


5) 2대 찰스부룩과 그 아들 바이너 부룩의 치세

제임스가 백인 왕조(White Rajahs)를 창시하고 영토를 확장했다면, 그를 이은 찰스는 사라와크를 질적으로 발전시켰다. 찰스는 병원을 지어 원주민의 복지를 확대하는 한편 요새를 지어 국경 수비를 강화했다. 1917년 찰스가 죽고 그의 아들 바이너 브룩(Charles Vyner Brooke)3대 왕(라자)에 즉위했다. 바인은 기독교 선교를 금지하고 이슬람등 현지인들의 종교를 육성했다. 백인 왕조의 현지화인 셈이다.


6)브룩 왕조의 종언

하지만 브룩 왕조는 3대에서 종언을 고한다. 19411225일 일본군이 사라와크에 진입하면서 3대 왕 바이너는 호주 시드니로 피신했다. 바이너는 2차 대전이 끝날때까지 시드니에 머물렀다. 일본군은 사라와크를 점령한 후 브룩 왕조의 행정 조직을 형식적으로 유지하면서 중요한 자리는 일본인을 배치했다. 이 괴뢰 정부는 1945년 연합군 일원으로 참전한 호주군이 진주하면서 붕괴된다.

곧이어 영국군이 진주해 사라와크에 군정을 실시한다. 호주로 피신갔던 브룩 왕조의 마지막 왕 바이너가 귀국하지만 더 이상 사라와크를 통치할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주권을 영국에 이양하기로 하고, 사라와크 의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했다. 1946년 법안이 의회에서 근소한 차이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사라와크 주권을 영국에 넘겨주는 법안에 항의해 수백명의 공무원들이 집단사표를 냈고, 드디어 영국 정부가 파견한 사라와크 총독 던컨 스튜어트(Duncan Stewart) 경이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19467월 사라와크를 직할령으로 만들었다. 브룩 왕가의 왕세자 격인 앤서니 브룩은 주권 이양에 반대하다가 추방되었다.


7)말레이시아에 편입되는 사라와크

한편 말레이시아에서는 현지인들에 의해 독립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독립운동가들은 사라와크를 연방에 편입시키기로 했다. 1961527일 말레이시아 연방은 사라와크를 하나의 주로 편입시켰다브루나이와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탈퇴, 독립했다. 브룩 왕조에게 주권을 양도한 사라와크주는 현재 브루나이 왕국의 영토보다 넓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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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8-03-29 12:47
   
아직도 말레이사아부터의 분리독립 운동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요.
history2 18-03-29 14:07
   
2011년 8월 9일 사라왁, 사바의 독립단체인 '사바와 사라왁이 말레이시아를 떠나다(Sabah Sarawak Keluar Malaysia; SSKM)'이 페이스북을 통해 결성되었으며, 10000명 이상의 지지를 얻어 독립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2012년 이 단체 페이지가 해킹을 당하기도 했다.최근 이들은 북보르네오 공화국(사바) 및 사라왁 공화국(사라왁)의건국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독립이 실현될 지는 의문이다. 현재 정부의 통제가 매우 심한데다, 말레이시아 지배의 영향으로 현재 많은 사라왁, 사바인들이 이에 대해 반대하거나 무관심한 상황이다. 또한 2014년 새로 개정 및 강화된 선동처벌법에 따라, 두 나라의 독립 추진은 더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만약에' 독립하더라도, 그 후에 어떤 후폭풍이 불지는 알 수 없다.
촐라롱콘 18-03-29 16:02
   
흥미롭고 유익한 양질의 주제였습니다.

그동안 세계지도에서 보르네오섬을 볼때마다 섬의 중남부는 인도네시아,

북부는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로 다소 복잡하게 구분되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내막이 있었군요!

개인적으로는 3~4년 전에 처가 식구들과 코타키나발루 3박5일 다녀온 것이

보르네오 땅을 유일하게 밟아봤던 경험이었습니다. ^^

여행지의 성격상 휴양의 개념이 크다고는 하지만... 10명 이상의 대가족에.. 그러다보니

패키지여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점이 당시 제 입장에서는 정말 피곤한 여행이었다는 기억밖에

없네요~~ ^^::
.
.
그리고 history2님의 시라와크 백인왕국에 관한 주제글을 통해서도 새삼 느끼는 부분이지만...

해가 지지 않은 대영제국의 위상이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위의 경우에서처럼 현지의 수많은 토호들과 소국 왕들의 기존 지위를 어느정도 인정해주고

상당한 자치를 허용해 주었던 측면도 큰 요인이 되지않았나 생각합니다.

영국령 인도제국만 하더라도... 얼핏 영국여왕을 원수로, 총독을 부왕이자 대리인으로 하는

단일체제인 것 같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자면 인도 각지(네팔, 부탄, 시킴, 파키스탄,

스리랑카, 미얀마....까지 포함된)에 산재한 여러 소왕국들과 토후국들을 그대로 인정해준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서로 대립하는 지역과 왕국들의 갈등을(종교-민족 갈등을 포함하여) 조장하여

식민지통치에 유리하게 이용하는 교묘한 통치술의 측면이기는 하지만....

만약에 인도를 포함하여 전 세계에 산재한 그 넓은 영국의 식민지들을 죄다 직접통치하려

들었다가는 당시 아무리 잘 나가던 영국으로서도 감당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Korisent 18-03-29 17:46
   
역시 차이니스들 이왕국에서도 노예민족이였군요. 사라왁 왕국돈에 한문이 ㅋㅋㅋ
6시내고환 18-03-29 19:02
   
좋은 글 감사합니다 흥미롭게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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