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주장을 하는 학자가 있어서 관련 기사를 발췌ㆍ링크합니다.
와당 연구자인데 와당으로 보면 낙랑군이 요서에서 평양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하는군요.
이 학자는 "중국인들이 와당을 평양에 가져다 몰래 묻어두었을 리 없다" 하는데
조선총독부와 그 어용학자들이 북경에서 낙랑유물을 대량으로 사들인 사실을 모르거나 간과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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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로 일하던 1978년부터 와당(막새)을 수집해 '기와 검사'로 불렸던 유창종 유금와당박물관장은 신간 '와당으로 본 한국 고대사의 쟁점들'에서 낙랑군 이동설을 제시한다.
즉 낙랑군이 요동이나 요서 지방에서 평양 쪽으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와당은 기와집의 지붕에 사용된 건축 부속품으로 왕권을 상징하는 귀중한 유물이다. 시대와 지역의 특성이 투영돼 있고, 도자기나 목간처럼 이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역사적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로 평가된다.
유 관장은 우선 와당을 바탕으로 재야 사학계의 낙랑군 요서·요동설을 논박한다. 평양 토성리에서 출토된 '낙랑예관'(樂浪禮官), '낙랑부귀'(樂浪富貴), '대진원강'(大晉元康) 명문 와당이 그 근거다.
그는 "낙랑이라는 글자가 있는 와당은 이곳(평양)에 낙랑과 관련이 있는 관서가 존재했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대진원강 와당은 중국 서진의 혜제가 '원강'이라는 연호를 쓰던 기간인 291∼299년에도 관서가 계속 설치돼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나온 낙랑군 와당을 다량으로 대동강 주변에 옮겨 놓았다거나 와당을 위조했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와당을 통해 낙랑군이 평양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밝힌 저자는 문헌 자료를 살핀다. 그중 중국의 초기 사서인 '후한서'에는 "낙랑군은 옛 조선국인데 요동에 있다"고 기록돼 있다. 또 '한서'에는 "동으로 갈석을 넘어 현도, 낙랑을 세웠다"는 문장이 있어 허베이성 갈석산 인근에 낙랑군이 위치했음을 추정하게 한다.
저자는 문헌과 와당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요서·요동에서 평양으로의 '낙랑군 이동설'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결론짓는다.
유창종 유금와당박물관장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8878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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