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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1 10:15
[기타] 고구려 초기 주변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472  

송양왕

비류국을 다물국() 또는 다물도()라 표기함에 따라 송양은 다물후()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그는 주몽()이 찾아오자, 그가 여러 해 동안 그곳에서 왕노릇을 해온 점과 땅이 비좁아 두 임금을 용납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주몽더러 부용()하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주몽은 이에 불응하고 활쏘기로 겨루어 승리함으로써 송양은 이듬해에 고구려에 항복하였다 한다. 이 사실은 송양이 고구려에 앞서 동가강 유역의 지배자로 군림하였으나, 고구려 주몽에게 그 지배권을 상실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또 ‘양’의 음이 고구려 5부의 하나인 소노()와 유사함을 근거로 하여 고구려의 왕실 교체가 소노부에서 계루부()로 전이()됨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의 딸은 유리왕의 비가 되었다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송양 [松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갈사국

부여왕 대소()의 아우가 남하하여 갈사수() 가에 세운 작은 나라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갈사국왕은 부여 금와왕의 막내아들로서 형 대소가 피살되자 장차 나라가 망할 것으로 생각하고, 종자 100여명과 함께 압록곡()에 이르러 마침 사냥나온 해두국왕()을 죽이고 그 백성을 취하여 갈사수 가에 도읍을 정하고 즉위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 뒤 갈사국왕의 손녀가 대무신왕()의 둘째 비가 되고, 왕자 호동()을 낳는 등 갈사국은 고구려와 관계를 맺으면서 독립 세력으로 성장하였으나 서기 68년 손자 도두() 때에 이르러 고구려에 병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갈사국 [葛思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소

금와왕()의 맏아들이다. 대소가 태자로 있을 때 이복동생인 주몽()의 위인됨을 꺼려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주몽은 달아나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금와왕이 죽고 왕이 되어 서기전 6년(유리왕 14)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어 인질교환을 제의하였다.


유리왕은 태자 도절()을 볼모로 보내려 하였으나 태자가 두려워 가지 않으니 대소왕이 노하여 5만의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그러나 마침 큰 눈이 내려 얼어죽는 자가 속출하여 부여군은 후퇴하였다.


서기 9년 대소왕이 고구려에게 부여를 예로써 섬기기를 강요하자 유리왕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르고자 하였다. 그러나 태자 무휼()의 지략으로 대소왕의 강요를 거절하였다. 20년(대무신왕 3) 대소왕은 머리는 하나이고 몸뚱이는 2개인 붉은 까마귀를 부여가 고구려를 병합할 징조라 하여 고구려에 보냈다.


그러나 대무신왕은 이 까마귀가 고구려가 부여를 아우를 징표라 하니 대소왕이 크게 놀라고 후회하였다고 한다. 22년 대무신왕이 부여의 남쪽을 공격하니 대소왕은 전국의 병력을 동원하여 맞섰다. 이때 고구려의 장군 괴유()가 대소왕을 죽였다.


대소왕이 죽자 그의 아우가 도망하여 갈사수() 근처에 새로운 나라를 세웠고, 그의 종제()는 부여를 다시 일으킬 수 없다고 생각하여 부여의 백성 1만여명과 함께 고구려에 투항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소 [帶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서노

백제의 건국설화로는 온조왕을 시조로 한 것과 비류를 시조로 한 것 등이 있는데, 그는 비류를 시조로 전하는 건국설화에만 등장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그녀는 졸본인() 연타발()의 딸로서 처음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 우태()와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우태가 죽은 뒤 한동안 졸본에서 과부로 살다가, 부여에서 이곳으로 도망해와서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과 재혼하였고, 고구려의 창업을 위하여 많은 내조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혼인한 예씨()의 소생 유류(, 일명 )가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됨에, 왕위계승권을 잃어버린 비류와 온조가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위하여 남하하여 미추홀()에 정착할 때, 아들들과 동행하였다.


『삼국사기()』백제본기에 온조왕 13년(서기전 6) 온조왕의 어머니가 61세로 죽었다고 하는데, 만약 이것이 소서노를 가리킨 것이라면 그녀의 생몰년은 서기전 66∼서기전 6년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서노 [召西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해명

제2대 유리왕의 태자이다. 본래 태자였던 도절()이 죽음으로써 서기 4년(유리왕 23)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이 해에 고구려가 국내성()으로 천도할 때 부왕을 따라가지 않고 졸본()에 남아 있었다. 힘이 세고 용감하였는데, 서기 8년 이웃의 황룡국() 왕이 이를 듣고 힘을 시험하여 보려고 강한 활을 보내자, 고구려를 가볍게 보지 못하도록 활을 쉽게 꺾어 황룡국 왕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런 것들이 원인이 되어 유리왕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유리왕은 황룡국으로 하여금 그를 유인, 살해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서기 8년 황룡국에 초빙되어 갔으나 오히려 황룡국이 그의 위엄에 눌려 그대로 돌려보냈다.


서기 9년 유리왕이 칼을 내려 자결할 것을 명령하자,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원동원()으로 가서 달리는 말에서 몸을 날려 미리 땅에 꽂아 둔 창에 찔려 죽었다. 조정에서는 태자의 예로 장례하고 이 곳에 묘()를 세우고 창원()이라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명 [解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여진

2대 유리명왕()의 아들. 동 37년(19년) 물에 빠져 죽었는데 뒤에 비류인() 제수()가 발견하여 왕에게 알려 왕이 상을 주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72856&cid=42953&categoryId=4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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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내고환 18-01-02 19:15
   
황룡국은 도대체 어디있던 나라일까요
     
관심병자 18-01-05 19:48
   
5호 16국 시대때 강남(송)에서 북연을 황룡국이라 불렀다고 하며,
화랑세기에 의하면 금관가야와도 관련이 있는 나라입니다.
대략 위치는 후의 북연 부근이나 대충 생각하기에 고구려의 서쪽인것으로 추정되며,
유리왕이 해명을 자결하도록 한것은 황룡국이 고구려보다 힘이 강해서라기 보다
부여와 대립 경쟁하고있던 상황에서 인접국과의 분쟁을 억제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되며,

이웃나라에서 활을 선물해줬더니 보는 앞에서 부러뜨렸다는건 선물한자에게 모욕적인 일이며,
어떻게 보면 전쟁선포랑 다름이 없습니다.

혹은 태자 무휼(대무신왕)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제거했다고 보여집니다.

금관가야와 황룡국과의 연관은,
신라기록의 마한왕과 신라사신의 대화에서 보여지는,
한반도 남부의 변한, 진한은 마한왕의 허락, 승인하에 자리잡게 된것으로 보여지는것으로 볼때
즉, 이주민 이란 뜻입니다.
이 변한, 진한에서 가야연맹과 신라가 나오게 되니,
이들이 이동하기전 원래 있던 위치는,
정황상 한나라와 고조선과의 전쟁지역 혹은 흉노와 고조선의 전쟁지역으로 추정할수 있습니다.
금관가야와 황룡국과의 혼인 관련해서 볼때
한반도 남부에 자리잡은 변한
전란이 일어나기전 원래 가야연맹국가들의 구성원들이 있던곳이 요동 혹은 요서 지역으로 추정해 볼수 있습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28061&cid=50826&categoryId=50826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04431&cid=40942&categoryId=33392
          
6시내고환 18-01-14 23:24
   
친절한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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