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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9 17:08
[한국사] 소소한 역사탐방(정동) 1..세우고 빼앗기고 되찾은 나라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1,472  




정동 전망대.jpg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1396년 왕후 강씨가 죽자, 신덕이란 시호를 내린 후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황화방 북쪽 언덕에, 장사를 지내고 능호를 정릉이라 한다. 능 동쪽에는 능사인 흥천사를 짓는다 
태조는 그렇게 흥천사의 재를 올리는 종소리를 듣고서야 아침 수라를 들었다. 
이렇게 조선이 세워지고 정동(정릉이 있는 동)이란 지역이 생겨났다. 

정동은 대한제국 시기 또다시 역사, 그 전면에 등장한다. 못난 임금 고종은 아내(명성왕후)가 죽은 경복궁을 버리고 정동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한다(아관파천) 그리고 정동에 경운궁을 짓고 환궁한다. 그러나 이내 러일전쟁이 일어나 일본이 승리하고, 그렇게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다. 

김구주석은 독립투쟁을 전개하면서 무장을 서두른다. 미국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무찌른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무장해제당한 채 정동 경교장으로 환국한다. 김구는 암살되었지만, 그럼에도 정부는 다시 수립이 되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되찾는다. 

정동은 이렇게 조선에서 대한제국을 거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현장이다. 
그리고 정동은 걷기에 아름다운 장소이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모두 역사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정동을 걸었다. 이성계, 신더왕후 강씨, 선조, 광해군, 인조, 고종, 알렌, 아펜젤러, 스크랜튼, 이완용, 백범, 장준하 그들이 걸엇던 정동 골목길 곳곳에 남아 있는 발자국은 역사가 되어 오늘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배제학당, 정동제일교회, 이화학당, 중명전, 경교장 이제 정동 역사길을 걷는다. 

1.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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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화방 에 속하였던 곳으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침인 정릉(貞陵)이 있었던 곳이라는 데서 정릉동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태조는 신덕왕후의 능지를 직접 골랐으며 자주 찾았다. 또 그 옆에 천흥사를 세워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하지만 1408년(태종8년) 5월 24일 태조의 승하와 더불어 정릉은 반년 사이에 도성 밖 사을한(沙乙閑)의 산기슭으로 옮겨지게 된다. 정릉은 성 밖으로 사라졌으나 그 대신에 원래의 자리에다 '정릉동(貞陵洞)' 혹은 '정동(貞洞)'이라는 지명을 남겨놓았다.

19세기 말부터 각국 공사관들이 정동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순우의 책에는 과거 정동에 있었거나,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는 공사관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미국공사관(1883년 5월 개설, 정동10번지), 영국공사관(1884년 4월 개설, 정동4번지), 독일영사관(1891년 후반, 서소문동 38번지이전), 러시아공사관(1885년 10월 개설, 정동15-1번지), 프랑스공사관(1889년 10월 정동 28번지이전), 벨기에영사관(1901년 10월 개설, 정동 16-1번지), 이탈리아공사관(1902년 11월 이전), 외교관구락부(1894년 정초식(定礎式), 정동 17번지) 등이 있었다.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이 자리한 서소문동 38번지 일대는 육영공원을 거쳐 독일영사관이 있던 자리이다. '구 러시아공사관'은 1977년 사적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과거 프랑스공사관의 자리엔 오늘날 구 창덕여중(昌德女中)이 위치해있다. 

과거 벨기에 영사관 자리(정동16-1번지)는 해방이후 하남호텔을 거쳐 오늘날 캐나다 대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외교관구락부는 1892년 결성되어 프랑스공사관 인접가옥에서 회합을 갖다가, 1894년 정동 17번지에 건물을 신축하였다. 이후 1923년에 이 자리를 서울외국인학교가 매입하여 1957년까지 사용하였다. 현재는 프란치스코교육회관(Francisco Education Center)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미국대사관저(정동 10번지), 영국대사관(정동 4번지), 성공회대성당(정동 3번지), 이화여고 구내(정동 29번지, 30번지, 31, 32번지)가 거의 변동이 없이 남아있다.

2.70년 대역사, 성공회 서울 주교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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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에 당시 대한성공회 3대 주교인 마크 트롤로프(한국이름 조마가)가 주도하고, 영국인 건축가 아더 딕슨이 설계를 하여 대성당 공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자금 문제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1926년에 부분 완성이 되었다. 미완성인 상태로 70여 년을 사용하다가, 1994년 성당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증축 공사를 시작하여 1996년 현재의 모습으로 완전히 공사를 마쳤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면서도 처마장식, 기와지붕에는 한국의 건축 양식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1978년 12월 18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이 되었고, 1987년 6월 10일에는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인 6월 항쟁이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트롤로프 주교는 한국 성공회가 일본이나 중구 성공회에 편입되지 말고, 독립교회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먼저 일본정부에 개혁을 건의한다. 일본어 교육을 강제하면서 조선어 교육을 금지한 것은 잘못이다. 오히려 일본관리들이 조선어를 배워야한다. 일본인과 조선인간 교육, 임금 등 기회를 평등하게 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음으로 의회(Synod)를 구성한다. 다수가 지배하는 세속적인 국회와는 달리 사제들이 교회의 관리와 운영을 협의했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서울주교좌성당 건축이다. 1922년 9월 24일 정동3번지 부지에 정초를 놓는다.  1926년 5월 2일 드디어 서울주교좌성당 공사를 마감한다. 그러나 예산에 발목이 붙잡혀서 당초 설계대로 십자가 모양으로 짓지는 못했다. 

성공회 서울주교좌 교회는, 로마네스크 양식에 기와지붕, 한옥창, 대리석, 벽돌, 트롤로프 주교는 모든 것이 일본식으로 변해가는 데에 반대하면서, 한국교회건축의 모델이 될 만한 교회당을 짓는다. 

트롤로프 주교는 1930년 11월 6일 일본 고베항구에서 선박충돌 사고로 사망한다. 그리고 서울 주교좌성당 지하성당 크립트에 안장된다. 생명의 공간 한양도성 안에 있는 유일한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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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경운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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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다. 조선 초기 세조가 남편을 잃고 궁궐을 떠나는 맏며느리 수빈 한씨(인수대비)를 가엽게 여겨 개인 사저로 마련해주었고, 이후 한씨의 차남 자산군이 보위에 오르게 되어 궁궐에 들어가자 장남인 월산대군이 물려받았다. 임진왜란 뒤 선조가 월산대군의 집을 임시로 왕의 거처로 쓰면서 궁이 되었다. 1608년 선조가 죽은 뒤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는데, 그해 완성된 창덕궁으로 떠나면서 경운궁이라는 궁호를 붙여주었다. 1623년에는 인조가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또한,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곳이기도 하다. 1897년(고종 34)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 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비로소 궁궐다운 장대한 전각들을 갖추게 되었다. 1904년 큰 화재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1905년 즉조당(卽祚堂)·석어당(昔御堂)·경효전(景孝殿)·함녕전(咸寧殿) 등이 중건되었다. 1906년 대안문(大安門)이 수리된 뒤 대한문(大漢門)으로 개칭하고 정문으로 삼았다. 1907년(순종 1) 순종 즉위 후 궁호가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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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 즉 덕수궁은 좀 이상하다. 중화전으로 들어가자면 오른쪽으로 꺽어서 중화문을 통과해야 한다. 중화전 앞에 서면 왼쪽에는 서양건물인 석조전이 있다. 분수대도 있다. 물은 원래 아래로 흘러야 하는데, 위로 치솟고 있다. 분구대에는 거북이 대신에 물개가 있다. 
거기다 품계석이 있는 중화전 앞 조정은 반듯하지도 않다. 거기다 행각도 월랑도 없이 뻥 뚫렸다. 
이렇게 된 것은 즉, 한국의 궁궐제도에 어긋나게 된 것은 일제의 기획이었다. 
일제는 창경궁에는 동물원과 식물원을 그리고 경운궁에는 미술관을 만든다. 
석조전에 만들려고 하다가, 반대에 부딪히자, 신관을 지어 기어이 미굴관을 만든다. 

그리고 1932년 경운궁을 개방한다면서, 조정의 박석도 걷어내고, 철거한 좌측행각과  우러랑에 벚나무를 심는다. 볼거리로 만들어서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조선왕실의 권위를 손상시키려 한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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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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