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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24 11:55
[한국사] 백제 요서경략설(百濟 遼西經略說)
 글쓴이 : 봉대리
조회 : 1,469  

백제요서경략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송서(宋書)』 백제전(百濟傳)에 실려 있다. 즉 “고구려가 요동(遼東)을 점령하니, 백제는 요서(遼西)를 점령하고 진평군(晉平郡) 진평현에 이 지역의 통치기관을 설치하였다.”라고 하였다. 『송서』는 심약(沈約, 441∼513)이 편찬한 사서이다. 그는 송과 남제(南齊)에 걸쳐 관직에 있었으며, 남제에서는 상서령(尙書令)을 역임하였다.

『양서(梁書)』 백제전에서도 “진(晉)나라 때 백제가 고구려의 요동지배에 대응해 요서·진평 두 군을 점령하고 그 땅에 백제군을 설치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양 직공도(職貢圖양나라에 조공해 온 외국사절들의 용모를 그린 그림과 함께 그 나라에 관한 설명을 곁들인 화첩)의 백제국기(百濟國記)에 “백제는 옛날의 내이(萊夷)이며, 마한(馬韓) 족속이다. 진나라 말기에 고구려가 요동과 낙랑을 차지하니, 백제는 요서·진평현을 경략하였다.”고 하여 점령시기가 진나라 말기였음을 기술하고 있다.

『남사(南史)』 백제전 및 『통전(通典)』 변방문(邊防門) 백제조에서도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통전』에서는 요서·진평 두 군의 지역에 대해 “오늘날(7세기 말)의 유성(柳城)과 북평(北坪) 사이”라고 주석을 붙였다.

이 밖에도 『진서(晉書)』 모용황재기(慕容皝載記)에 의하면, 345년 모용황의 기실참군(記室參軍)인 봉유(封裕)가 상소를 올려, 전연(前燕)의 팽창에 따라 포로로 잡아온 고구려인·백제인 및 선비족(鮮卑族)의 우문부(宇文部)와 단부(段部) 사람들이 전연의 수도인 용성(龍城)에 너무 많이 집중되어 있어 우려가 된다고 하였다.

또 『자치통감(資治通鑑)』 효종목황제(孝宗穆皇帝) 영화(永和) 2년조에는, 346년 모용황이 부여를 공략할 때 당시 부여의 상황에 대해 “전에 부여가 백제의 침입을 받아 쇠약해져 서쪽으로 연(燕)에 가까운 지역으로 이동해왔는데 방어가 미비하였다.”고 하였다.

『진서』와 『자치통감』의 기록에서 요서지방의 백제세력에 관한 단편적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즉, 모용씨의 전연은 유목민인 선비족 출신으로서, 당시 세력 중심지와 지배지역은 만주 서부지방과 북중국이었다. 따라서 바다를 건너 백제지역에 세력을 미칠 수 없었다.

또한 백제도 북만주의 부여를 반도 서남부지역에서 바다를 건너 곧바로 공략하기는 불가능하였다. 결국 두 기사의 사실은 당시 백제가 요서지방에 세력근거지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위서(魏書)』 물길전(勿吉傳)에 물길이 해로를 통해 백제와 연결, 고구려를 칠 계획을 북위에 통보하고 북위의 의사를 묻는 기록이 보인다. 이 역시 동북부 만주에 있던 물길이 해로로 백제와의 연결을 모색한 것은, 비록 이미 6세기 초 당시에는 소멸되었더라도 요서지역까지 진출한 바 있는 백제의 세력에 대한 기대에서일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제 요서경략에 대한 기록이 한곳도 아니고 여러곳에서 나오는것 같은데 이정도면 백제의 요서경략설이 아니라 백제가 확실히 요서땅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해도 되는거 아닌가요? 
저는 역사에 대해 그리 깊은 지식이 있는 편이 아니라 여기다른 분들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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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나 21-01-24 13:36
   
개인적으로 , 고대 한국사와  관련된  언어 역사기록을 관심갖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북방민족과  남방 민족의 혼혈이라고 알려졌지요.
  역사적 , 언어 시대상황 정확히 알수 없어  예단하기 힘들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미얀마도  관심 지역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과 동일한 언어 어순, 문자체계 유사성을 갖고 있지요.

https://blog.naver.com/nobopark/221684136311
 
- 일부 인용 -
*, 중국의 정통사서 [북사 北史]에 백제는 원래 마한의 속국인데,이사람들이 쓰는말이 " 색리국(사키야국 Sakiya족=석가족=범어족)의 언어이다. " 

  범어 =  아리안계 인도 제어의 조어. 산스크리트어.      미얀마(버마족) -  범어  ..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0811&docId=123058097&qb=7KeE64KY65287J2YIOyWuOyWtA==&enc=utf8§ion=kin.ext&rank=2&search_sort=0&spq=0         

삼국지 위서  동이전  -  부여 계통인 백제의 왕족과 백성의 언어가 달랐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신서로77 21-01-24 23:38
   
본문하곤 상관도없는 소리를 붙여넣기 하지마라 짜증난다...넌 매너도없냐?..
          
봉대리 21-01-25 00:20
   
저분 글은 그냥 알아서 거르고 있음 ㅋㅋㅋㅋ
삼바 21-01-24 14:03
   
백제 요서경략설은 사실입니다.
다만 여러 사서들에서 시기의 오류가 있습니다.
봉유의 상소문에 백제 의 포로들이 나오고 모용외는 319년 요동을 점령 하는데, 313년경 통전에 요동 장통이 낙랑 대방을 1000여 가구와 귀부했다고 나오는데,
진서에는 이 부분이 없고, 이 부분이 있어야할 시기 자리에 모용외가 요동의 소련 목진의 우문부의 별부를 처부시고 요동을 다시 세웠다고 나옵니다
. 이유는 침공이라고 하는데 모용외 자신이 319년에 요동을 침공하여 점령 해버립니다. 위 두 사례는 중국식 사서의기록이 얼마나 조작이 심한지 알수 있습니다.
 백제와 모용선비가 전투하고 포로가 생겼으며 그 포로는 수경주 고평천수에 사민 되엿습니다.고평천수는 수경주 백랑수 중상류 북쪽 지류로 왜성과 유루성이 있어 백제 사민 지역의 위치를 알수있습니다,
게다가 진서가 우문부 별부라고 위작한 소련 목진은 역사상 딱 한번 언급이 되며 없는 반면 백제/왜는 수경주 고평천수에 있으며 모용선비는 포로 발생시 발생지역의 반대편 적을 상대하는데 사용합니다.
그러니 백제/왜 포로는 고평천수의 반대편 대릉하 하루와 소릉하에서 발생한 포로입니다.
이 지역은 수경주와 지형지를 대조해 보면 북연시 낙랑 대방 영구군이 있던 자리입니다.
게다가 고평천수는 그 이전 이력을 살펴보면 북위가 북연을 점령하고 낙랑군의 수현 영락현을 교치했다가 후에 영락현을 고평으로 바꾼것입니다. 그러니 고평천수의 왜성 유루성의 포로가 낙랑 대방에서 발생한 사실을 확실히 알수있습니다.
백제 요서 경락은 부여가 낙랑을 공격한 111년 부터 모용외가 요동을 접수한 319년 사이에 부여와 백제의 친연 관계에서 일어난 사실입니다.
     
봉대리 21-01-25 00:17
   
그렇군요. 공부가 됐네요.
솔루나 21-01-24 14:10
   
신기하게 다른 사실들은 중국 사서에 있는 게 사실인거 마냥 다 잘만 받아들이면서
백제의 요서 경략과 같은 우리나라 영토 늘리는 것은 '설'로 받아들여서 사실이 아닌 것 마냥 받아들임.
참 신기한 취사선택이 아닐 수 없음.
영토란게 획득했다가도 잃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데 주변 나라들은 세력권마저 자신들 영토인것 마냥 기술하는데 우리는 여러 복수의 사서에 경략 햇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마저 교과서에 표시를 안함 ㅋㅋㅋ
특히나 중국의 춘추필법으로 수치는 줄이고 공은 과대해서 적는게 필수 패시브로 되어 있는데 이런 춘추필법이 만연해있는 중국 정사에서 요서를 백제가 취했다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사실이 아닌 것 마냥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의문임.
     
조지아나 21-01-24 14:31
   
공감 합니다.
위구르 21-01-25 12:39
   
백제가 중원 동부를 차지했다는 수많은 증거 중에 있는 북위와 싸운 기록에 대해서 굳이 백제 용병설을 들면서 부정하는 경우가 있어서 어이가 없는데 백제가 동진으로부터 얼마나 거대한 보상을 받아낼 수 있었길래 북위의 막강한 수십만 기병과 사활을 걸고 싸웠느냐가 의문이고 만약 그에 합당한 보상이 있다면 그건 딱 하나 중원의 동부 령토를 할양받아서 경영할 권리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동진이 실제로 백제의 도움을 받아 북위를 이이제이로 격퇴했다면 분명 저 중화주의자들은 자국 력사서에 백제의 도움은 빼버리고 자신들이 직접 물리쳤다고 왜곡되게 서술했거나 자국이 직접 북위와 싸워서 몰아낸게 아니라는 점이 걸렸다면 역시 '아국이 신의를 베풀자 위노가 스스로 물러났다'라는 식으로 소설을 썼을게 뻔합니다. 또한 동진이 백제에 도움을 요청하고 말고 하는 기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백제가 북위와 대결전을, 그것도 두번이나 벌인 것은 자국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임이 분명하고 그 전장은 대륙이었음이 명백합니다.

이 글을 보고 생각나서 한번 적어봤습니다.
          
위구르 21-01-25 14:19
   
2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리 쓰지 않았는데 두음법칙이 얼마나 황당한지 느끼고서 이렇게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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