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된 인적,물적 규모로 본다면 고수전쟁은 19세기 이전까지 일어난 전쟁중에서 인류 최대 규모의 전쟁이였습니다. 수나라 때 건설된 대운하만 봐도 고구려 침공이 주된 이유였죠..운하 전체길이 1800km.. 서울에서 부산 거리의 4배가 넘어요. 고구려 침공을 위해 운하를 짓고 113만명의 대군을 동원해서 공격했지만 실패..(보급병같은거 합치면 대략 300만면 정도 됐을 것이라 추정) - 출정을 준비하는 데 걸린 시간 5년, 출정준비를 마친 후 모든 병사를 출정하는 데 걸린 시간 40일, 군대의 길이 1천리(400km)(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
착각하시는게.. 수나라가 고구려를 쳐들어온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쳐들어간겁니다. 오랫동안 동아시아에서 강대국으로 군림해 왔던 고구려와 새로 등장한 신흥강국 수나라와의 전쟁.. 딱히 다른 거 없어요. 중원을 통일한 수,당나라는 자민족을 중심으로 세계체제를 개편하러 했습니다. 여기에 당연히 오랫동안 강대국으로 군림했던 고구려가 거슬릴 수 밖에 없죠..( 당시 고구려인들의 자긍심은.. 자신들을 하늘의 후손이라 여겼음.. 시조 주몽의 설화만 봐도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은 북부여에서 나와 고구려를 건국할 때 “나는 황천의 아들이다”라면서 “나를 위해서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은 떠오르라”고 명령하고 그랬더니 “말씀에 응하여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이 떠올랐다.”라고 광개토대왕릉비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기록에도 일찍이 인용했던 이야기..) 고수전쟁은 서로가 천자임을 자부했던 두나라의 전쟁이였습니다.. 서로 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다퉜어요 하늘 아래 천자가 둘일 수 없다는 거죠..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는 고구려에게 자기나라를 섬기라는 굴욕적인 요구를 하는데.. 이 요구를 받은 고구려는 바로 수나라를 선제공격했죠.. (당시 고구려인들의 인식에서 보면.. 북부여를 포함하여 1000년동안 강대국으로 군림한 나라에게 이제 막 건국된 수나라의 요구는 굉장히 우스웠을거임)(아마.. 수나라가 일부러 고구려 간 볼려고 굴욕적인 요구를 했던 듯 함..)
뭐.. 결국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겨 평화를 찾은 고구려는.. 나태해져 당나라한테 멸망당하여 중국을 중심으로 한 조공, 책봉 체제로 인식되는 억압적 평화체제가 확립되는 것으로 귀결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