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군현을 담로라고 부른다. 백제에는 22개의 담로가 있어 왕의 자제와 종족에게 나누어 웅거하게 하였다.(...)서기450년 백제 비유왕이 방물을 바치며 사사로이 대사풍야부를 서하태수로 삼을것을 요구하고 역림,서림(기문둔갑)등점술서와 쇠뇌 등 병기도 요구하였다.(...) 황제는 이를 모두 들어주었다."
-남사 <백제전>
"백제가 망한후 그 땅은 신라,발해,말갈에 의해 나눠어졌다."
-구당서 <백제전>
"금주, 의주, 애춘을 포함한 지역이 다 백제의 강역이다."
-만주원류고
"백제의 옛 땅은 전부 돌려주라 하니 황하가 아직 띠와 같이 되지 않고 태산이 아직 숫돌과 같이 되지 아니하여"
-삼국사기
“백제는 수도에서 동쪽으로 6천리 영, 빈, 해의 남쪽에 위치하며 서쪽 경계는 월주이고 남쪽으로 왜가 있다.
-신당서 <백제전>
"백제는 변진(弁辰)의 나라로 진대(晉代)에 일어나 번작(蕃爵)을 받았다. 스스로 백제군을 고려 동북(요서)에 두었다."
-남제서 <백제전>
"그 나라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천 여리 밖에 있었는데, 서진때에 구려가
이미 요동을 다스리자, 백제 역시 요서진평 2군의 땅을 점령하여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남제서 <백제전>
"백제 동성왕이 광양태수를 고달로,대방 태수로 조선태수를 양무로,광릉태수를 회매로, 청하태수를 모견으로, 조선태수 양무를 광릉태수로, 낙랑태수를 왕무로 임명하여 중국 남조에 승인을 요구하였다. 황제는 모두 들어주었다."
-남제서
"이 해에(490년) 위나라가 또 기마병 수십만명을 징발하여 백제 국경선에 침공했으나,
모대가(동성왕)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 장군에게 군사를보내 위나라 군사를 습격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남제서 <동남이전 백제편>
"10년(488)에 위(魏)나라가 군사를 보내 침공해 왔으나 우리(백제)에게 패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동성왕편>
"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병이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삼국사기 <최치원전>
"백제국이 진 대로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양자강 좌우를 차지하고 있었다."
-북사 <백제전>
진(晉)대에 구려(句麗)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遼西)와 진평(晉平)의 두 군(郡)의 땅을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百濟郡)을 다스렸다."
-양서 <백제전>
"백제의 영토는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중국 남방 월주에 닿고 북쪽으로 바다를 건너 고구려 국경까지
남쪽은 왜국에 이른다. 백제는 동,서 두곳에 서울을 두고있다."
-구당서 <백제전>
"처음 백가(百家)로서 바다를 건넜다하여 백제라 한다. 진대에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니 백제 역시 요서와 진평의 두 군을 차지했다"
-통전 <제도사>
"백제국이 양자강 어구를 좌안을 진대로부터 시작하여 송, 제, 양대에 이르기 까지 점령하고 있었고, 후위 때에는 중원을 차지하였다."
-주서 <백제전>
"백제국은 본래 고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천여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후 고려가 요동을 침략하여 차지하게 되었고 백제는 요서를 공략하여 소유하게 되었다. 백제가 다스리는 곳은 진평군, 진평현이라 하였다."
-송서<백제전>
"송서에서는 백제가 다스리던 곳으로 진평군을 거론하고 그 도성을 거발성이다 라고 하였다. 거발성은 진평성이다. 그 곳은 지금 금주,영원,광녕의 경내에 있다. 백제의 또 다른 도성인 고마성은 조선국에 있다.
-흠정만주원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