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에 청동기 시대를 연 주체는 동이족인 상(은)나라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상나라를 열고 지배/통치한 주체가 동이족이고
그 나라(와 그 나라가 지배/통치한 질서)가 주에 의해 망했을 때에 기자로 대표되는 상나라 왕족 및 귀족들이 고조선으로 망명한 것 역시 역사서에 분명히 기록돼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원전 15세기를 준하여 출현하는 상나라에 의한 중원의 청동 문화는 그 형태, 대상, 미감, 성분 등에 있어서
기원전 20 세기를 준하여 현 적봉 지역을 중심으로 출현하는 고조선 청동 문화와 이질성을 띠고 대척한다
중원 청동 문화는 제기(제사 용구), 병기 등을 중심으로 하면서 크기가 대형이고 그 모양이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여 제국적 성격을 확연하게 띤다
반면에
연산산맥과 적봉지역을 준하여 그 동쪽인 만주와 한반도에 나타나는 청동 문화는
중원(상)의 그것에 비하여 그 크기가 작고, 소박하여 압도하지 않고 제례와 전투용에 한정하지 않아서 그 초기부터 단추, 농기구, 생활용구 등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된 것이 관찰된다
이러한 유물의 외양만 보자면
상나라 청동유물은 확연히 제국적 성격을 띠고 있으나
고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상징하는 고대 한국)의 그것은 결코 상나라의 중원에 준하는 수준이 아니어서 국가/정치 발전단계에 있어서 중원보다 후진성을 띠고 있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양자 문화 사이의 이질성은 청동기의 합금 성분에서 더욱 뚜렷한데
중원의 청동기는 구리, 주석, 납의 3가지 성분만 사용하여서 그밖의 불순물이 거의 없는 합금성분율을 보인다
반면에
한국 청동기는 구리, 주석, 납 외에 아연을 사용한 4가지 합금성분을 표준으로 하고 있으며
이 아연의 첨가 비율을 청동제품에 따라, 즉 용도에 따라 달리하고 있어서
중원과는 확연히 다른 독자적이면서 고유한 청동기술문화를 창달해 왔음을 보여준다
(아연은 420℃의 저온에서 녹고 900℃에서 끓어 증기로 달아나기 때문에 1,000℃ 이상으로 가열해야 하는 청동의 주조과정에서 아연을 넣어 합금을 만드는 일은 매우 정교한 고도의 기술을 보유해야 가능)
또한
동이족인 상나라가 연 중원의 청동문화는
상나라 동이족이 상나라를 세우면서 뚝딱 하고 나타난 것으로
상나라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청동기술의 발전상이 나타나지 않고 갑자기 뚝딱 고도의 물질문화가 나타난다
이는 이들 중원의 청동문화 개시집단이 다른 지역에서 청동기술을 가지고 중원으로 이주해 왔음을 나타내는데
이들의 원적지는 홍산문화의 적봉지역이다
같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중원과 한국의 청동문화가
거의 동시적으로 서로 다른 합금성분과 표현 양상을 띠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