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실록> 세종 25년(1443 계해) 12월 30일(경술) 2번째기사 "훈민정음을 창제하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古篆字)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이 "옛전자 논란"에 대해서
외국에서는 비교적 (한국보다 더) 알려진 "파스파 문자 영향설"에 대해서
국내에서는 많이 잊혀진 경향이 있어, 한번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엇그제 "감방친구"님과 댓글로 논쟁한게 저도 좀 인상적이어서
다시 한번 찾아보고 공유해볼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1. 파스파 문자 참고설을 최초로 퍼뜨린건, 이익의 성호사설 (약 1720년 때 첫 기록)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파스파문자 기원설을 주장. "세종께서 한글을 처음 만드실 때 명나라의 학사 황찬이 귀양살이를 하는 지라 성삼문 등을 보내 질문하게 했다. 이 때가 원이 망한지 겨우 79년이 지난 때로, 황찬이 우리에게 전한 것은 다름 아닌 몽고 글자에 대한 지식이었다"
유희의 "언문지" (19세기) 에서도 "파스파는 이미 잘 알려진 문자라는 점, 자형이 정사각형, 특히 ㄱ, ㄷ, ㅂ, ㅅ 등의 글자가 비슷한 점, 문자의 구성원리와 운용이 유사하다는 점 때문"에 파스파 문자 참고 가능성을 제기했다.
2. 신숙주가 만주에 간 것은 의미가 없는 행동?
이익이 이렇게 기록한 것과 연관이 있는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세종 107권, 27년(1445) 1월 7일 5번째 기사
"집현전 부수사 신숙주 등에게 요동에 가서 운서를 질문해 오게 하다"과 비슷한 맥락.
그러나 황찬이라는 인물이, 실제 음운학에 조예가 깊은 학자인지, 파스파를 알고 있었는지는 미지수
또 신숙주의 방문 시기는 사실상 훈민정음 창제과정이 끝난 이른 상태이기 때문에
영향을 줬기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 있음.
다만, 1946년에 집현전 고위관료가 직접 만주를 갔다면, 그 이전에 갔을 여지는 있음
3. 1966년 프린스턴 레드야드 교수의 "고(古) 전자" 해석
이 얘기는 일찌감치 널리 알려진 얘기로,
영문 위키피디아 등에서는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임
훈민정음의 파스파 문자 참조설을 공식으로 처음 퍼뜨린 학자는 미국의 개리 레드야드(1932~ ) 교수. 이분은 냉전초기 미군에서 한글배워서 군대에 복무하다가, 다시 학계로 복귀해 훈민정음 해례본을 영문으로 번역한 학자. 그가 불과 34세에 내놓은 이론이 "파스파 참조설", 물론 그도 훈민정음의 독창성, 아름다움, 과학성 극찬했습니다.
그가 주목한 대목이 바로 이, 고전자(古篆字) 대목인데요. 당연히 한국학계는 이 篆字를 = "전서체"로 해석해왔습니다. 물론 의아함도 내부적으론 있었죠. 전서체와 한글이 일부 형태상의 유사성이야 있지만, 딱 떨어지는 공통점은 사실 전혀 없거든요. 한자와 한글은 완전 다른 체계이기도 하고요.
레드야드는, 이 고를 몽고(蒙古)의 '고'로 봤습니다.
말 그대로 혁신적인 관점이죠.
실제로 몽골은, 북송이후에 지속적으로 "몽고"로 표기가 되어왔고, 이는 한국에도 영향을 끼쳐
몽고로 표기됐고 이게 아주 오래 영향을 미쳤습니다.
레드야드의 해석을 따르면,
그러니까, 훈민정음에 나온 고전자는, 몽고전자 (蒙古篆字)가 되는 겁니다.
실제로 파스파 문자는, 전자체로 밖에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파스파 문자의 다른 이름이 "사각형 글자"인데, 한문의 8대 문체 가운데 사각형 글자를 쉽게 드러내는 글자체가 전서체였습니다.
게다가 파스파문자는 관인(Seal Script)에도 사용됐기 때문에 "전자"라고 불릴 수 밖에 없는 처지
실제로 파스파 문자로 만든 전각문을 보면, 한글전각과 유사점이 많습니다.
사각형 글자체를 따라했음을 알 수 있음.
4. 파스파 문자의 창제 목적
파스파 문자의 창제목적은 원사(元史) 석로전(釋老傳)에 잘 드러나 있는데,
요약하면 ‘한자의 해서(楷書)나 위구르 문자로 말(몽골어)을 표기하는 것을 대체하여 언어가 순조롭게 통하고 각지의 사물이 바르게 전달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표음문자의 보편적인 목적이기도 한데, 훈민정음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음
++++
또 여러 관련된 얘기가 있겠지만,
레드야드 교수 역시 마찬가지로 한글의 독창성과 아름다움은 결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기적으로 역사적으로 발음적으로
ㄱㄷㅂㅈㄹ
이라는 기본자음의 형태가 "파스파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요.
이 파스파 참고설이라는게
꽤나 국문학자들의 자존심을 갉아먹었는지,
어느순간 한글 자료들에서는 많이 빠졌습니다.
또 모음과 관련된 대목도 있는데, 이는 다음에 한번 공유해 보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