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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부터 진한은 융성했다? 요갱에서 나온 최고 수준의 부장품들은 삼한의 존속 시기와 관련해 논란도 예고한다. 지난해 1차 발굴 결과에서 연구원이 밝힌 것처럼 이 무덤의 연대는 애초 기원 전후이거나 기원후 1~2세기까지로 늦춰 보는 게 통설이었다. 연약한 와질토기나 금속유물들의 양상이 다호리에서 나온 청동검과 붓 등의 무기, 생활유물들보다 연대가 떨어진다는 견해였다. 이 설은 한반도 서북부 낙랑군과의 교역에 따른 영향을 받아 빨라도 기원 전후에나 삼한 소국의 기틀이 마련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6호분 요갱에서 나온 오수전과 묘실에서 추가확인된 구름무늬를 새긴 거울(성운경) 등은 모두 기원전 중국 전한시기의 연대를 대표하는 유물들이다. 이에 따라 무덤 연대를 기원전 1세기까지 올리게 되면 삼한 소국들의 등장과 존속 시기도 이른 시점까지 확장된다.
중국 사서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삼한시대 20여개 소국들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만, 기원후 3세기대의 문헌기록이다. 경산·영천 일대의 소국 압독국, 골벌국을 기록한 <삼국사기>의 경우도 3~4세기의 역사적 사실들을 다루는 데 그치고 있다. 반면, 요갱 출토품 연대는 문헌보다 훨씬 이른 기원전 시기 중국과 교역하면서 강력한 경제력과 정치체제를 갖춘 소국이 영남 일대에 번성했을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압독국, 골벌국에 시기적으로 앞선 미지의 진한 소국들이 기원전과 기원 전후 건재했다는 결론에 이르는 셈이다. 앞으로 학계에서 삼한시대의 구체적인 연대 범위와 기존 문헌상의 소국들보다 앞서 융성한 기원전후 시기 소국들의 정체에 대해 좀더 깊은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