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1 箕山在縣東三十里,逓高二里,盤踞三里,相傳箕子始封地。唐箕州治山下有箕城址。
①-1 기산재현동삼십리,체고이리,반거삼리,상전기자시봉지。당기주치산하유기성지。
①-2 晉敗狄于箕者,杜預謂:太原陽邑有箕城是陽邑。隋之太谷,後為骨打。
①-2 진패적우기자,두예위:태원양읍유기성시양읍。수지태곡,후위골타。
①-3 都今遼之榆社東南三十里。古箕城在遼山與琅琊、益都、襄邑異。
①-3 도금요지유사동남삼십리。고기성재요산여낭야、익도、양읍이。
▲ 산서통지(山西通志) 25권(卷) - 유사현(榆社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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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1 기산(箕山)은 유사현(榆社縣)의 동쪽 30리(里)에 있고, 갈마들고 높은데에 2리(里)이고, 반거(盤踞)하였으니 3리(里)이고, 대대로 이어 서로 전하는 바 기자(箕子)의 첫 봉토 지역입니다. 당나라(唐) 시대에 기주(箕州)는 기산(箕山) 아래에 두었고, 기성(箕城)의 터가 있습니다.
▶ ①-2 진(晉)이 적(狄)을 격패시켰기에 기(箕)는 그 곳이기에, 두예(杜預)가 이르길 : 태원(太原)의 양읍(陽邑)에 기성(箕城)이 있으니, 양읍(陽邑)이라고 하는게 옳습니다. 수나라(隋) 당시의 태곡(太谷)이고, 이후 골타(骨打)로 하였습니다.
▶ ①-3 도읍은 지금 요주(遼州)의 유사(榆社)에서 동남쪽 30리(里)입니다. 옛 기성(箕城)은 요산(遼山)에 있고, 통들어 낭야(琅琊) ' 익도(益都) ' 양읍(襄邑)이니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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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거(盤踞)
1. 넓고 굳게 뿌리를 박고 자리잡음.
2. 어떤 집단이 한 지역을 차지하여 세력을 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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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경주(水經注)에 의하면, " 광아왈:대노,태원야。(廣雅曰:大鹵,太原也。) " 즉, " 광아(廣雅)가 말히길 : 대노(大鹵)는, 태원(太原)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대로(大鹵)는 춘추(春秋) 시대 노나라(魯) 소공(魯昭公) 1년에 진나라(晉)의 순오(荀吳)가 적(狄)을 격패시켰던 땅 이름인데, 난리를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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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1 王險城即平壤城,應劭曰箕子故都也,薛瓉曰王險在樂浪郡浿水之東。
②-1 왕험성즉평양성,응소왈기자고도야,설찬왈왕험재낙랑군패수지동。
②-2 古蹟箕子故都即平壤今王險城是也,漢書地理志樂浪郡朝鮮,應劭曰武王封箕子於朝鮮。
②-2 고적기자고도즉평양금왕험성시야,한서지리지낙랑군조선,응소왈무왕봉기자어조선。
▲ 흠정대청일통지(欽定大清一統志) 421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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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1 왕험성(王險城)은 즉 평양성(平壤城)이고, 응소(應劭)가 말하길 기자(箕子)의 옛 도읍이요, 설찬(薛瓉)이 말하길 왕험(王險)은 낙랑군(樂浪郡) 패수(浿水)의 동쪽입니다.
▶ ②-2 고적(古蹟 : 남아 있는 옛날의 건물이나 터) 기자(箕子)의 옛 도읍은 즉 평양(平壤)이고, 지금 왕험성(王險城)이니 옳고,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의 낙랑군(樂浪郡) 조선(朝鮮)이요, 응소(應劭)가 말하길 무왕(武王)이 기자(箕子)에게 조선(朝鮮)을 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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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箕子)의 옛 도읍은 요주(遼州)의 유사(榆社) 동남쪽 30리(里)에 위치하는 기성(箕城)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산서성(山西省) 중부의 태원(太原)에서 남쪽 인근으로 위치하는 요주(遼州) ' 유사(榆社) ' 요산(遼山) ' 기산(箕山) 등지에 왕험성(王險城)이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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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1 杜預曰:梁國蒙縣北有薄伐城,城中有成湯冢,其西有箕子冢。
③-1 두예왈:양국몽현북유박벌성,성중유성탕총,기서유기자총。
▲ 수경주(水經注) 23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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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1 두예(杜預)가 말하길 : 양국(梁國)의 몽현(蒙縣) 북쪽에 박벌성(薄伐城)이 있고, 성 가운데에 성탕(成湯 : 은나라의 왕)의 무덤이 있고, 그 성의 서쪽에 기자(箕子)의 무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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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1 梁國蒙縣亳:梁國蒙縣西北有亳,城中有成湯,其西有箕子。
④-1 양국몽현박:양국몽현서북유박,성중유성탕,기서유기자。
▲ 춘추석례(春秋釋例) 05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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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1 양국(梁國)의 몽현(蒙縣) - 박(亳 : 은나라의 서울):양국(梁國)의 몽현(蒙縣) 서북쪽에 박(亳 : 은나라의 서울)이 있고, 성 가운데에 성탕(成湯 : 은나라의 임금)이 있고, 그 성 서쪽에 기자(箕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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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1 杜預雲:梁國蒙縣有箕子冢。
⑤-1 두예운:양국몽현유기자총。
⑤-2 集解,杜預曰:梁國蒙縣有箕子冢。
⑤-2 집혜,두예왈:양국몽현유기자총。
⑤-3 杜預曰:梁國䝉縣有箕子。
⑤-3 두예왈:양국몽현유기자。
▲ 사기(史記) 38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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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1 두예(杜預)가 이르길 : 양국(梁國)의 몽현(蒙縣)에 기자(箕子)의 무덤이 있습니다.
⑤-2 집해(集解)에 따르면, 두예(杜預)가 말하길 : 양국(梁國)의 몽현(蒙縣)에 기자(箕子)의 무덤이 있습니다.
⑤-3 두예(杜預)가 말하길 : 양국(梁國)의 몽현(䝉縣)에 기자(箕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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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1 蒙縣在商丘北五十里。
⑥-1 몽현재상구북오십리。
▲ 상서비전(尚書埤傳) 07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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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1 몽현(蒙縣)은 상구(商丘)의 북쪽 50리에 위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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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1 蒙澤,杜注宋地:梁國有蒙縣,今河南歸徳府商丘縣。北有蒙澤縣,南二十五里有蒙縣古城。
⑦-1 몽택,두주송지:양국유몽현,금하남귀덕부상구현。북유몽택현,남이십오리유몽현고성。
▲ 흠정춘추전설휘찬(欽定春秋傳說彚纂) 08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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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⑦-1 몽택(蒙澤), 두주(杜注)와 송지(宋地)에 따르면:양국(梁國)에 몽현(蒙縣)이 있고, 지금 하남(河南)의 귀덕부(歸徳府) 상구현(商丘縣) 입니다. (상구현의) 북쪽에 몽택현(蒙澤縣)이 있ㄱ고, 남쪽 25리(里)에 몽현(蒙縣)의 옛 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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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산서성(山西省) 남부의 요산(遼山)의 낙평(樂平)에 대하여, 여러 기록이 밝히는바 요산(遼山)은 원래 기자(箕子)의 봉토 지역(조선 영역)이고, 낙평(樂平)은 후에 낙랑(樂浪)과 평주(平州 : 유주)를 나눠 두기 이전의 지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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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하게 찾아야 한다면, 현재 하남성(河南省)의 낙양(洛陽)에서 북쪽으로 나아가야 하고..
현 산서성(山西省)의 태원(太原)에서 남쪽으로 나아가야 하는 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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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고지도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로주(潞州 : 潞安)의 북쪽 주위에 기자(箕子)의 봉토 기산(箕山)과 관련되는 요산(遼山) ' 유사(榆社) ' 평성(平城) ' 화순(和順)등이 실존합니다.
그 곳은 요서(遼西)와 요동(遼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요산(遼山)이 있는데, 현재 산서성(山西省)의 요주(遼州 : 左權)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대 기록들에 따라서 현재 요녕성(遼寧省)에 결코 고대의 요주(遼州) ' 요양산(遼陽山)' 요산(遼山) 등이 위치할 수 없고, 원래 현재 산서성(山西省)의 좌권(左權)에 속하는 지명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현재 산서성(山西省)의 동남쪽과 산동성(山東省)의 서쪽 사이에 위치하는 태행산맥(太行山脈)의 한 지류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