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漢)나라가 막 천하를 평정하고 한왕(韓王) 한신(韓信)을 대(代) 땅으로 파견하여 마읍(馬邑)에 도읍을 정하게 하였다. 흉노가 대거 기습하여 마읍이 포위되자 한왕 한신은 흉노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흉노는 한신을 손에 넣자 그 기세를 타서 군사를 이끌고 남하해 구주산句注을 넘어 태원(太原)까지 공격했고 진양성(晉陽城) 아래까지 진격했다.
이에 고제(高帝)는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출전하여 흉노를 공격했다. 때마침 겨울이라 추위가 심하고 눈이 내렸기 때문에 병사들 중에 동상자가 10분의 2,3이나 되었다.
그러자 묵돌은 도망치는 것처럼 가장해 한나라 군대를 유인했다. 한나라 군대가 묵돌을 추격하기 시작하자 묵돌은 그들의 정예 부대를 숨겨두고 노약자로 가장한 군대를 보여주게 하니 한나라는 대부분 보병인 전군 32만 명이 달아나는 적을 추격했다.
고제가 먼저 평성(平城)에 도착했을 때 한나라의 보병이 도착하기 전이었으며 묵돌의 정예 부대 40만 기병을 지휘하여 고제를 백등산(白登山)으로 몰아넣고 포위하여 한나라 군대는 7일 동안이나 본진과 단절되어 군량을 보급 받지 못했다. 당시 흉노의 기병은 서쪽에는 흰 말, 동쪽에는 청색 말, 북쪽에 흑색 말, 남쪽에는 붉은 말을 탄 기마대를 배치했다..
◯ 高帝先至平城(고제선지평성) : 한 고조(漢 高祖)가 직접 군대를 인솔하고 흉노의 묵돌선우를 공격했다가 평성(平城) 인근의 백등산(白登山)에서 흉노의 40만 대군에게 7일 동안이나 포위를 당하는 곤경에 빠졌던 일을 말한다. 이때 진평(陳平)이 계책을 내어 선우(單于)의 부인 연지(閼氏)에게 후한 뇌물을 써서 겨우 포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사기 권93. 韓信盧綰列傳(한신노관열전)> <사기 권95. 樊酈滕灌列傳(번역등관열전)>
이에 고제는 몰래 사자를 연지에게 보내 후한 선물을 보내자 연지는 묵돌에게 말했다. “두 나라 임금은 서로 곤궁한 처지로 몰아넣으면 안 됩니다. 지금 흉노가 한나라 땅을 얻는다고 해도 선우께서 결국 그곳에 살 수도 없습니다. 또 한왕(漢王)은 하늘의 보호를 받는다고 하니, 선우께서는 부디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묵돌은 한왕(韓王) 신(信)의 장군 왕황(王黃), 조리(趙利)와 만날 약속을 하였으나 그들이 군대가 오지 않자 그들이 혹시 한나라와 몰래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하여 역시 연지의 말을 받아들여 포위망의 한 귀퉁이를 열어주었다. 이에 고제는 군사들에게 모두 활시위를 당겨 흉노 쪽으로 겨누게 하며 포위망이 풀린 쪽으로 빠져 나와 결국 뒤따라오던 대군과 합류하니 묵돌은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한나라 역시 군사를 이끌고 철수했으며, 유경(劉敬)을 사신으로 보내 묵돌과 화친의 조약을 맺도록 했다. [출처]110-4/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4/15)
또한 고조(유방) 본기에는
백등산 전투 후에
마침 겨울이라 병사들 열에 두 셋이 손가락이 얼어서 떨어져 나가자 결국 평성(平城)으로 물러났다. 흉노는 한나라를 평성에서 포위했다가 7일 뒤에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번쾌에게 대(代) 땅에 남아 평정하게 하였다. 형인 유중(劉仲)을 대왕(代王)으로 삼았다. [출처] 08-15[史記(사기) 本紀(본기)] 권08.高祖本紀(고조본기) (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