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제가 십수 년 전 태권도사를 연구하면서 맥락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탐구했던 내용인데 그 사이 정리하고 모아놓은 자료를 모두 잃어버려서 어제 다시 기억을 더듬어서 관련 내용을 구글링하여 가볍게 정리하였습니다.
오키나와의 역사는 11세기부터 출현한, 여러 족장(아지)의 다툼이 있던 열국시대를 거쳐, 크게 3개의 세력이 경쟁한 삼산시대에까지 이르는, 다른 말로 아지시대(按司時代)라고 불리는 구스쿠(城) 시대를 거쳐
1429년 삼산이 통일되면서 본격적으로 성립한 류쿠왕국(琉球王國)으로 비로소 동아시아 역사에 등장하였습니다.
1609년 사츠마 번의 침입을 받아 사츠마 번의 속국이 된 후에도 명나라와 청나라, 조선 등에는 대외적으로 독립왕국인 것으로 행세하였는데
1872년 번으로 강등된 후, 1879년 소위 류구처분이라는 합병절차를 거쳐서 일본에 완전히 병합됩니다. 말하자면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된 최초의 사례에 해당합니다.
더 자세히 적자면 이야기가 길어지고 이 글의 초점을 흐리게 되니 여기서 끊고 그림자료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오키나와의 전통복식을 살펴보면 아주 놀라운 면이 있습니다.
1. 황청직공도(皇淸職貢圖, 18세기, 청, 건륭제)에 묘사된 류구국 사대부와 평민의 복식
<류구국 사대부>
<류구국 평민>
특히 평민의 복식과 머리모양을 잘 보세요
일본보다 남방임에도 당시 일본의 복식과는 확연히 다르고 뭔가 조선의 향기가 나지 않습니까?
고려시대에 고려양이 원나라에서 대유행을 했고, 그것이 명나라 초기까지 대유행을 하였는데요 이것이 다시 류구를 비롯한 주변국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렇다 하여도 당시 우리 문화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더 남쪽 나라인 베트남의 경우도 명나라 복식의 영향이 특히사대부 복식에 그대로 나타나며 평민의 복식에서는 고려와 원나라의 영향이 나타납니다
<비엣남 사대부>
<비엣남 평민>
이것은 황청직공도에 수록, 묘사된 조선의 사대부와 평민의 모습입니다
위의 두 나라, 특히 가장 앞에 게시한 류구국의 복식과 비교해 보십시오
<조선 사대부>
<조선 평민>
2. 오키나와 여인의 전통복식
19세기 말 오키나와 사대부 여인의 모습인데요 일본 기모노와는 뭔가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의 속옷을 표현한 그림에서 왼쪽은 여성 기본 복식, 오른쪽은 남성 기본 복식인데요 조선시대 전기를 기준한 우리의 기본 복식과 매우 유사합니다
류구국의 전통복식의 경우는 남자들이 우리식의 바지(길이가 짧은 잠방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19세기 오키나와의 혼례를 앞둔 새각시(신부)의 모습입니다. 복식부터 쓰개치마까지 너무 조선과 유사합니다
류규국 혼례풍속도에 묘사된 일반 평민 남자들의 복장을 보세요
3. 오키나와 남자들의 상투머리
사실 동아시아 전통에서 남자의 상투머리는 일본의 촌마게(도 본래는 대가기를 미는 게 아니었음)를 제하고는 명나라와 조선이 동일하였으므로 이것이 꼭 조선, 또는 그 이전인 고려와 연관이 있다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찌됐든 한번 보세요.
복식이 점차 일본화 하였음에도 두발모양에 있어서는 확연히 일본과는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에도시대에 일본을 방문한 류구국 사절단을 묘사한 그림에서도 확인이 됩니다
4. 류구를 방문한 청나라 책봉사를 묘사한 그림과 이를 행사로 복원한 모습에 나타난 시위대 복식
아래의 모습은 오키나와에서 축제로 복원한 모습인데 제대로 복식을 복원했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