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재 박사님 페북에서 퍼 왔습니다. 자료사진도 같이 첨부합니다. 갱단 학자들이 무식한 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사료 독해가 안되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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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단 학자들이 얼마나 사료를 오독-오역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 (정답&설명)
1.
방금 백준우 선생님께서 정답을 맞추셨습니다.
그렇지요. 저 밑줄 부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백성 1,000여 가를 거느리고 모용외에게 귀순한” 주체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정답은모 여대 교수 어르신이 자신만만하게 적어 놓은 “유력가” 왕준이 아니라 요동 군벌 장통입니다. 일단 원문을 한번 보실까요?
乐浪王遵【说】统帅其民千馀家归廆,廆为【之】置乐浪郡,以统为太守,遵参军事。
이렇게 나와 있지요? 이 부분을 오삐리리 교수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중요한 부분만 보도록 하지요.
낙랑 왕준은 백성 천여 가를 거느리고 모용외에 귀속하니, 모용외가 그곳에 낙랑군을 설치하고 장통을 태수로, 왕준을 참군사로 임명하였다.
번역문만 놓고 얼핏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건 원문을 배배 꼬아서 전후 관계를 왜곡해 놓은 오역의 본보기입니다. 가장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 부분입니다.
(1) “說”은 “백성 천여 가를 거느리고 모용외에 귀속”한 주체가 왕준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2) “之”는 모용외가 새로 설치한 낙랑군의 위치가 아니라 대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이 부분을 제대로 번역하면 "최소한" 아래와 같이 해야 합니다.
낙랑의 왕준의 【설득으로】 (요동의 장통이) 그 백성 1,000여 가를 이끌고 모용외에게 귀순하니 모용외가 【그를 위하여】 낙랑군을 설치해 주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장통을】 태수로 삼고 왕준에게는 군사 관련 참모를 맡게 하였다.
오삐리리 교수는 이 관계를 애매모호하게 번역해서 이 역사사건의 사실관계와 인과관계를 오독하는 바람에 급기야 위의 어이없는 오역을 저질러서 전후 관계를 왜곡해 버린 거지요.
그 관계들이 잘못 번역되는 바람에 이 부분을 읽는 독자들은 “1,000가를 이끌고 모용외에게 귀순한 건 왕준인데 태수 벼슬은 왜 장통이 받았을까” 하는 반문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원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삐리리 교수는 그래서 왕준이 1,000여가를 이끌고 귀순한 주체인 것으로 착각(오독)해서 급기야 왕준을 원문 어디에도 없는 “유력가”로 초고속 신분상승을 시켜 주는 실수에 또 실수를 거듭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제 첫 글의 댓글에서 정길선 샘이 지적하신 것처럼 <자치통감> 어디에도 왕준이 "지방 토호(유력자)"라는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입으로는 실증주의 떠들면서 그냥 상상의 나래를 펴고 소설을 쓴 겁니다.
원문에서는 단순히 장통의 참모일 뿐입니다. 참모라면 연대장 부관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부관을 어떤 바보들이 "유력자"라고 한답니까. 부관이 "유력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어디 손 한번만 들어보십시요.
몇 줄 되지도 않는 이 짧은 단원에서도 이렇게 오독, 오역이 넘쳐나니 이 사건의 전후 관계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밑줄 부분처럼 완전히 공상과학소설을 쓰게 되는 겁니다.
갱단에서는 뻑 하면 “1차 사료, 1차 사료” 노래를 부르던데.... 입으로만 1차 사료 백날 떠들면 뭐 합니까? 맨날 이딴 식으로 원문을 멋대로 오독, 오역해 놓고 소설을 쓰는데요 ㅉㅉㅉ
3.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번역, 정확한 이해, 정확한 해석이 왜 중요한지는 페친 여러분 모두 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갱단에서 주야장창 떠들어대는 낙랑군 “교치설”을 뒷받침해 주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역시 명백한 사기죠)
그래서 다른 대목에서는 오독이든 오역이든 얼마든지 저질러도 좋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절대로 주체와 대상, 전후 인과관계 등등에서 한 구석도 오독이나 오역이 발생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낙랑군이 정말 평양에서 교치됐느냐 아니면 원래부터 그 자리(중국)에 있었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부분인데 이런 결정적인 대목에서 오독, 오역을 한다는 건 우리 골문에 xx골 넣는 것과 똑같은 짓 아닙니까?
제가 조선시대 패수 논쟁 정리하면서 송호정 논문을 봤습니다. 명색이 대학교수라는 자가 조선시대 패수 논쟁에서 평양설파와 요동설파가 팽팽하게 대립한 거 잘 알텐데 평양설파만 소개하고 요동설파는 구색 맞추기로 1-2명 세워 놓고 또 그걸 비과학적 공상적이라고 까 놨더군요. 자신들이 식민사학의 사생아들이라는 출신을 은폐하기 위해서 조선학자들 평양설을 미화하려는 속셈으로 그딴 논문을 썼더라구요.
저는 이전에도 고대사에 관심이 있다 보니 고대사 관련 책을 사 보면 이덕일 소장님이나 황순종 이주한 선생님 등 여러 분들이 송호정을 거론하시길래 설마 그 정도인가 싶어서 논문과 단행본을 대충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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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내용은 소설을 쓰든 어쩌든 학자 고유의 해석에 관련된 부분이니까 누구도 간섭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정사 인용문을 이해하거나 번역하는 작업만 놓고 본다면 완전히 수준 이하더군요.
위의 글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주어, 서술어, 목적어 군데군데 다 잘라먹고 의역을 해서 저 책의 밑줄 부분처럼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지도 불분명하게 만들어 놨어요.
아시겠지만 인용문 번역은 직역이 원칙입니다. 특히 역사 논증과정에서는 “아” 다르고 “어” 다른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지들도 지들 약점을 아는지 갱단 패거리들 논문 보면 대부분이 인용문을 한자로만 인용해 놓고 번역해 놓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원문을 번역하다 보면 송삐리리나 오삐리리처럼 한문 실력 개판인거 다 들통나거든요.
1차 사료 제대로 이해도 못 하고 번역도 제대로 못 하고 해석도 제대로 못 하는 수준 낮은 자들이 대학마다 교수랍시고 한 자리씩 다 차지하고 앉아 있으면서 수십 수백이나 되는 후배 교수, 강사, 박사생, 석사생들 가르친답시고 거들먹거리고 갑질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인문학 특히 동양학 분야 문학, 사학, 철학이 자멸하기 일보 직전인 거지요.
그래 놓고서 재야에서 누가 지적이라도 해 주고 한 수 가르쳐라도 주기라도 할라치면 뭐? 유사사학자? 에라이!!! 국제 학회에서 개망신 당하지 않도록 지적해 주는 재야 학자들한테 고맙다고는 하지 못할망정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어디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