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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2-22 11:49
[기타] 고조선시대 건축 질문 - 기와지붕이 있었을까?
 글쓴이 : shrekandy
조회 : 5,713  

생각해보건데, 고조선 유적에서 기와가 발견된적이 있나요? 고조선에도 기와 건물이 있었을까요? 분명 고조선의 철기문화가 오히려 중국 철기문화보다도 먼저 나타나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고 있었단건 발굴되서 알고있는데 (이건 엔타님 글보면 잘나왔어요) 건축에 대한건 잘 모르겠네요

일단 제가 얼추 아는건 고조선때 이미 고구려식 석(돌) 성과 치같은 돌출부가 발저은 하고있긴했단건데, 어쨋든 건물들 지붕은 고대 일본처럼 초가나 7세기 일본처럼 나무 판자로 만들었을수도 있지 않을까요? 분명 왕검성이라는 수도도 있었고 고조선이 한나라랑 싸울때 동원한 군사들의 질이나 수를 보면 고대 일본 수준의 낙후국가는 아닌게 당연하겠지만요...

밑에 은나라 궁궐 복원한걸 보니 초가지붕으로 만들었더군요.

http://www.essential-architecture.com/IMAGES2/anyang.jpg



 고조선이 철기가 발전했든 엄청난 청동기 문화가 발전했는데 궁궐에도 초가를 썻듯 고조선이 기와가 있었는지 궁금해지네요. 부여도 기와지붕이 있었을까요?

훗날 낙랑군 (이 있었다고 강단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평양에서 나온 무슨 도시모양 토기?인가 보면 그래도 다 기와건물이던데 중국인들이 낙랑군 세우고 대거 한반도로 왔다한들 몇십만씩 온것도 아닐테니 당시 평양에 이미 고조선인들이 기와를 만드는 기술과 기반이 없었다면 그 토기처럼 기와건물이 갑자기 있었을까 의문도 들고...

제 추측으론 왕검성은 대략 밑에 사진의 주나라 궁궐처럼 생기진 않았을련지? 아직 삼국시대 처럼 지붕을 부드럽게 올라가게하는 기술까진 없고 살짝 원시적인 맛으로?

http://www.essential-architecture.com/IMAGES2/zhshwlfytfin.jpg

http://www.essential-architecture.com/STYLE/STY-119.htm
주나라 궁궐

하여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시 고조선의 건축 수준은 어느정도 였을까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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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4-12-22 14:20
   
이곳에서 발견된 유적은 국가가 성립됐다는 실증적인 증거로 제시되는데

하가점하층 문화는 중화 5천년의 배경이 되는 홍산문화를 계승하는 문화로 인식하며

고조선과 연계돼 매우 중요시하게 생각한다.

또한 이곳에서 출토된 제련된 청동 덩어리의 C¹⁴측정연대는

기원전 1900년쯤으로 측정돼 단군조선과 엇물려 있다.

 

1981년부터 1988년까지 8년 동안 홍산문화의 중심지인 오한기 지역을 집중적으로 답사했다.

10여 개의 작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청쯔산의 전체 유적 규모는 6.6㎢다.

이들 중에 가장 중요한 해발 800미터에 있는 아(亞)자 형태의 성자산산성(城子城山城)은

1987년에 발견됐다.

답사단은 곧바로 사회과학원에 보고했고

2000년 유국상 박사 등 현지 실무단이 도착해 조사한 결과는 그들을 놀라게 했다.

 

성자산산성은 살력파향(薩力巴鄕)과 마니한향(瑪尼罕鄕)과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다.

북쪽으로 합라구촌(哈拉溝村)에서 약 4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시야가 열려져 있어 초원(草原) 사막지대를 볼 수 있는 장관을 연출한다.

더욱이 성자산산성의 유지군(遺址群)은 6.6㎢나 되며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성자산 주봉(主峰)의 정상부의 평면은

‘아(亞)’자형으로 불규칙하지만 남북 440m, 동서 폭은 340m다.

총면적은 약 15만㎡나 되는데 주위에 계단식 성벽이 있다.

내성과 외성으로 나뉜 이중 성벽은 주로 맥반석으로 축조됐는데

기초 폭은 약 15m, 현재 남아 있는 높이는 약 2m이며 외성과 내성 각각에 5개의 문이 설치됐다.

하늘신과 조상신에 제사를 지냈다는 돌로 쌓은 제단터와 사람들이 살았거나 공무를 보았을

대형 건물터도 발견됐다.

 

놀라운 것은 외성에 반원형(半圓形)의 ‘마면식(馬面式·치)’ 석축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치는 고구려 성벽의 고유물처럼 알려져 있는 것으로 성벽을 방어하는 데 유리한 형태를 갖고 있다.

적석총과 석관묘, 제단터는 물론이고, 성벽의 축조 방법을 보면 고구려·백제와 비슷하다.

할석으로 한 면만 다듬어 삼각형으로 쌓고, 다음 것은 역삼각형으로 쌓는 형식을 말한다.

 

내성은 중심구(中心區)/동/서/남/북/동남 등 6구역으로 분할됐다.

구역과 구역 사이는 서로 돌담으로 격리했지만 돌문으로 연결된다.

중심 구역은 다른 구역보다 높은 지역에 있으며 ‘회(回)’자형의 오르내리는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외벽 돌담 변의 길이는 88~93m이고, 현재 약 1미터 높이의 담이 남아 있다.

내측 돌담의 변의 길이는 30m이며 돌담 내에서 10여 개의 건축지(建築址)가 발견되는데

이곳에서 최고위층들이 살았다고 추정한다.

 

중심구 외의 5구역 내에는 균등한 원형돌담이 몇 개 단위로 분포돼 있다.

각 구역 안에 건축지가 10여 개씩 발견되는데 그 중 동남 구역에서 발견되는 건축지는 73곳이나 되며

총 6구역의 건축지는 232곳이나 된다.

원형 건축지의 직경은 주로 5~6m이며 최장 13m에 달한다.

교미하고 있는 쌍돼지 대형 돌도 있는데

길이 9.3m, 주둥이의 폭은 2,1m이며 이마높이는 7.5m이다.

눈 부분은 거칠지만 모서리의 선이 분명할 정도로 인공적인 흔적이 있으며

등에는 대형 성혈이 발견됐다.

 

특히 동쪽 성벽 바깥에 대형 제단 3개가 있는데

이들 제단 위는 매끄럽게 연마돼 있고 별자리로 추정되는 성혈도 있다.

중국 측은 성자산산성을 20세기 말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 중에 하나로 평가하며

성자산산성을 곧바로 전국중점문화보호단위(全國重點文物保護單位)로 지정했다.

이런 제사 공간, 주거지는 물론 거대한 적석총·석관묘 등은

사실상 치밀한 행정 조직과 공장을 갖춘 왕권이 존재하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능하다.

특히 해발 800미터나 되는 산 위에 이런 큰 규모의 돌들을 운반해서 성을 쌓고

건축물과 돌무덤을 조성할 정도면 전제권력을 갖춘 국가라야 가능한 일이다.

 

중국은 내몽고 동부 구역(區域)에서 하가점하층문화와 유사한 산성이 계속 발견되며

오한기(敖漢旗)에만 천 여 곳에 이르는 등 밀집된 대소 원형 건축지가 발견되자

이 지역에서 국가가 성립됐다고 단정적으로 설명한다.

성자산산성 표지석에는 이곳 하가점하층문화에서 국가가 성립했음이 분명하다고 적혀 있다.

 

하가점하층문화는 하가점상층문화

(기원전 1500~기원전 400년, 이형구 박사는 남산근문화(南山根文化)라고 칭함)로 이어진다.

하가점상층문화는 하가점하층문화의 요소를 내포하면서도

은말 주초의 청동기 문화가 강하게 배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청동기 문화야말로 요동지역이나 한반도지역의 청동기 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시기에 이른바 비파형청동단검이

석곽묘나 석관묘 그리고 고인돌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7)

비파형동검을 포함해 이들 유물들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한국인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해 더 이상 상술하지 않는다.

http://kosskosa.blog.me/40043743367


사진.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2983
굿잡스 14-12-22 14:36
   
울나라 고조선 중심지역으로 거론되는 요하일대에는 이미 신선기 후기에 지금까지 천여개 이상의 유적이

밀집 발견되어 있고 규모도 상당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통칭해서 요하 혹은 발해문명등으로 거론되는데

거석문화등이 바탕해서 석성이나 지상 석성구조물들이 발견되고 있고 북한 평양일대에도 팽이형토기

즉 고조선 전기 비파형 동검시대에 막쌓기 공법의 토성들이 확인되는 상황입니다.


최근의 학계의 어떤 논문은 이런 요하일대의 방어시설을 동물들의 방어을 용이하기 하기 위한 식등으로

논하는 주장도 있지만 어차피 전체적으로 보면 성곽등 방어시설이라는 것이 외부의 사람만 국한된

식으로 딱 구분해서 이야기 하기도 뭐하고 무엇보다 요하일대의 상당한 석성의 발견으로 그동한

이런 석성에 대해서 가지는 국가단계론에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던 형태에서 그 기원이  수천년경을

상회하면서 어느 정도 희석된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나 잽학계에서는 나라 헤이안 즉 우리의 남북국시대에

도 국가의 역량이 되지 못해서 목책형 성곽이 나오는 식이라서 이런 그에 앞선 전기의 우리 선조들이

만든 신롱석 석성, 일명 신이 깃든 돌 어쩌고 이런 돌로 만든 방어시설은 국가역량이고 매우 높게 보고

있었거든요 ㅋ(서토 황하문명의 방어 시설도 보면 이에 비해 조잡하죠. 그래서 서토학자도 이미 신석기

후기에 요하일대는 고국의 초기 단계로 진입했다는 말을 하고)


그리고 기와에 대해서는 대체로 중동에서 기원해서 퍼져 나간게 일반적 시각인데 서토에서는

하시대에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긴 한데 대체로 일반적 사용은 전국시대 특히나 우리 고조선과

밀접한 연나라와 산둥 제나라등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우리나라는 평양일대의 기와등을 한나라의 영향 어쩌고 이야기도 하지만 저는 이미 전국시대 연과 제에

인접한 고조선이 이런 기와가 어떤식으로 교류 나타나고 있었다고 보이군요.


특히나 몇년전 요령성 일대에 억측에 가까운 진시황 행궁지 어쩌고 일방적으로 나온 발해만 일대에

대형 건물터와 기와들이 무더기로 나온 기사를 봐서도 이미 요하일대에서 고조선 권내로 기와가

어느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목책 구역 안에는 정전(正殿)에 비유될 수 있는 대규모 건물터 하나를 지상으로 노출해 놓았다. 지름 30㎝ 가량 됨직한 주춧돌과 타다가 만 나무 기둥이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다. 기둥은 모조품이었다. 지름 20㎝ 가량 됨직했다.

그 한켠에는 평기와를 바닥과 측면 및 덮개로 쓴 배수로를 그대로 노출해 놓았다. 이 기와 배수로는 길이가 10m가 채 되지 않을 성 싶었다. 발굴단이 조사 때만 임시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생각되는 텅 빈 건물터 바로 옆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무수한 기와들을 쌓아놓은 큼지막한 더미가 있다.


<발해만 북쪽 연안 고대도시의 정체> 본문<발해만 북쪽 연안 고대도시의 정체>

http://media.daum.net/culture/art/newsview?newsid=20060303081915818

http://media.daum.net/culture/art/newsview?newsid=20060302183713740
     
shrekandy 14-12-22 14:42
   
와..............정보 정말 감사드립니다. 역시 굿잡스님
     
굿잡스 14-12-22 14:49
   
급히 적다보니 오타가 많으니 알아서 보시길(신선기->신석기)
없습니다 14-12-22 17:34
   
우리나라에 기와가 처음 쓰여진 시기는 중국 한무제(漢武帝)가 한사군을 설치한 기원
전 1세기경으로 추측된다. 당시 낙랑군의 치소(治所)였던 평양의 대동강 부근의 토성리
에서 중국 한식계 와당이 다수 출토되는데 주로 무늬 막새와 문자 막새이다. 이 때를
전후하여 한반도의 북부 지방에 기와를 덮은 목조 기와집〔목조와가(木造瓦家)〕이 처
음 등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재청 기와의 역사와 종류]
     
굿잡스 15-08-26 13:16
   
평소 본인 시각에서 그냥 평양안에서만 박혀 보면 그렇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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