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이남 한반도의 서기 1~3세기는
삼한과 삼국(백제, 신라, 가야)이 공존하는 이상한 형국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전)은 북쪽 지역에 대해서는 부여, 고구려, 옥저, 예맥, 조선 등 국가의 꼴을 갖추고 비교적 넓고 일정한 영역을 지닌 것으로 기술한 반면
남쪽의 삼한은 군장국가 수준의 백수십여 개의 소국이 난립한 연맹왕국으로서, 문화발전 정도에 있어서도 낙후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학계 주류의 입장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아닌 삼국지 위서 동이전(후한서 동이전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을 바탕한 것이다)의 기록에 더 무게를 두고서 어정쩡하게 국사를 서술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신라와 백제의 실제 수립 시기를 서기 사오 세기로 본다 하는 여러 전언이 있다
그렇다면 주체적 탐구자의 견지에서 이 시대의 실사를 어떻게 접근하여 이해하여야 할까
첫째ㅡ
기술 자체를 명확히 읽고 입체적으로 표로써 정리를 하여야 한다
둘째ㅡ
우리의 사서로는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 저들의 사서로는 한서, 후한서, 삼국지 등을 교차 분석하여
과연 삼국지 위서 동이전 사서 기자가 어디에서 삼한에 대한 정보를 취득했으며 그 정보는 그 당대의 정보인지 전대의 정보인지 따져보고
또한 후한이든 삼국의 조위든 저들의 정세에서 과연 1~3세기 당시 삼한의 상황을 제대로 취재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 따져본다
셋째ㅡ
사서 기록이 불확실할 때에 고고물질문화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과연 한반도 남부의 물질문화상이 위서 동이전의 기술상에 부합하는지 따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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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맹점은
삼한의 영역을 사방 4천 리로 적고 있는 점이다
사방, 또는 방이라 하는 개념은 하ㆍ은ㆍ주 시대를 다룬 여러 사서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으로서
해당 영역의 들고 남을 정사각형(방)의 형태로 채우고서
그 지름의 거리를 일컫는 것이다
이에 보통 사방 4천 리라 함은
동서의 길이 4천 리, 남북의 길이 4천 리를 뜻한다
하여
하나라는 방 5천 리, 상나라 말기는 방 3천 리, 주나라 때에는 방 7천리 하였던 것이다(예기주소)
그런데 임진강 이남을 따지면 방 1천 리도 되지 않으니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방 4천 리 기술이 맹점이 되는 것이다
방 4천 리는
남북
해남에서 북쪽으로 요원시 또는 길림시 근방까지
부산에서 북쪽으로 목단강시 동남 근방까지
동서
대련시에서 동쪽으로 연해주까지
조양시에서 동쪽으로 연해주까지
에
해당한다
이상한 노릇은 이 영역은
비파형동검, 고인돌 등의 분포지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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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3세기에 남만주를 거쳐 서북한 지역에 나타나는
토착민계통의 무덤들
서기 전 2~1세기에 조성돼 서기 4~5세기 경까지 사용된 왕성급 규모의 풍납토성
서기 1~4세기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 나타나는 백제계 산성
ㅡ> 이러한 식으로 위서 동이전의 기술의 진위여부를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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