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정안국은 여진의 나라였는가? 발해유민의 나라였는가?
2.정안국의 위치는 과연 어디인가? 사학계의 논조대로 현 압록강 유역 북부이었는지 아니면,,,요양-심양 지역 동쪽이었는지?
(다른 대부분의 발해부흥군의 중심지는 요양-심양이다)
3.정안국을 고려는 여직이라 부르고 있는데, 과연 고려는 정안에 대해 동족의식을 가지고 있었는가?
4.정안국은 백두산의 화산폭발 상황에서도 작게는 50년 길게는 90년을 버티었는데, 농경국가 였을까 아니면 반농반목의 수렵국가 였을까?
5.서희와 요나라의 담판에서 볼 때, 분명히 요가 강동6주를 할애함은, 여진에 대한 관리를 하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 여진안에 정안국이 포함이 되는가?
6.정안국의 역사는 50년 인가? 아니면 100년인가?
7.정안국은 우리민족의 역사의 페이지에 있는가, 아니면 여진의 페이지에 있는가?
8.서경압록부의 위치는 어디이며? 그 당시 압록강은 어디인가?
(점차 머리속에서 압록강의 위치가 혼하근처로 옮겨가고 있다)
9.요나라는 왜 만주를 방치해서 밀림을 만들었는가?
(발해 때는 해동성국이었는데)
10.요나라는 왜 발해지역에서 농경을 하지 않고, 연운16주 지역과 요동지역에서만 농경을 했는가?
11.발해와 정안국의 언어는 같았을까? 정안국과 여진의 언어는 같았을까? 정안국과 기타 발해부흥운동 세력과는 언어가 같았을까? 정안국은 기타 발해부흥운동 세력에 동족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12.발해고에는 분명 '정안국 기사'가 있는데, 정안국은 발해유민의 나라가 아닐 가능성이 있을까?
답) 1.발해유민의 나라
2.정안국의 위치도 서경압록부 즉....혼하일대가 맞다
3. 동족의식 보다는 이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분명 언어가 통했을 것이다 (정몽주의 시 참조)
4. 90년이었고, 발해부흥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5.정안국이 포함된다...그래서 강동6주를 혼하선까지 확대하여 할양한 것이다
그래야 서경압록부를 통제할 수 있다
6. 90년이 맞다
7.우리민족의 페이지에 있다
8.서경압록부는 혼하근처에 있으며 강동6주와 인접한다
9.요나라는 연운16주 와 요서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 요는
만주를 경영할 인원과 재원이 부족했다
10.농경을 할 인원은 한족과 발해족인데,,,한족은 연운16주와 요서에서 경작을 했고,
발해족은 지속적으로 거란에 저항했다.
그 과정에서 만주의 농업은 퇴보했고, 백두산의 분화도 영향을 주었다
11. 발해ㅡ정안국-고려의 언어는 같았다(정몽주의 시 참조)
12.정안국은 발해국의 후신이며,,,정안국이 있었던 지역은 끊임없이 거란에 저항했다(혼하 지역)
「발해고성(渤海古城)」 - 정몽주
먼 옛날 발해가 세워졌던 곳
渤海昔爲國
아직도 그 자취가 남아있구나
於焉遺址存
당에선 왕위 계승 허용했는데
唐家許相襲
요나라가 함부로 병탄하였지
遼氏肆幷呑
우리나라 신하와 백성이 되니
附我全臣庶
아직껏 그 자손들 이어져오네
于今有子孫
남은 백성 이 사실 어찌 알리오
遺民那解此
탄식하며 수레를 멈춰보노라
嘆息住歸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