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색으로 표시된 속현은 전한의 요동군 속현입니다.
> 위의 고구려는 삼국 고구려가 아니라 현도군의 고구려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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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치僑置의 사전적 정의는 앞서 소개한 《중한사전(中漢辭典)》에 "육조시대에 다른 나라에 빼앗긴 땅 이름을 자국 수중에 있는 땅에다 옮겨 놓음으로써 그 땅이 빼앗기기 않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이라고 하였다.(고대민족문화연구소, 《중한사전(中漢辭典)》, 2006년 전면개정판, 155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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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호아상 교수는 《한서(漢書) · 고제기(高帝紀)》에 나와 있는 고조 12년(B.C 195)의 기록에, "풍(豊) 사람들을 관중으로 옮기게 하여 평생토록 세금을 내지 않도록 하였다는 기록에서 소급하여 그 원류를 찾고 있다. 그에 대한 한나라 응소(應邵)의 주에 이르기를, "태상왕(한 고조 유방의 아버지)이 고향인 풍(豊)으로 돌아가실 생각만 하므로, 고조는 이에 사시리(寺市里)에 풍현(豊縣)과 같이 성을 쌓고 신풍(新豊)으로 불렀으며 풍(豊)의 백성들을 옮겨다 이곳으로 채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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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에서 원류라고 소개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요, 더더구나 실토기우(失土寄寓: 자기가 살던 땅을 잃어버리고 한 때 다른 곳에 몸을 붙이고 사는 것을 말한다)는 아니다라고 하면서 논자는 교치(僑置)의 전형인 실토기우(失土寄寓)의 예로서 동한 때 설치했던 현도군과 그 관할 고구려(高句麗) · 상은대(上殷台) · 서개마(西盖馬) 삼현을 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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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전한-후한의 요서요동 속현의 변화를 보여 드렸는데,
중국의 호아상 교수는 교치의 사례로 후한 현도군을 제시했다고 하네요.
현도군이 잡아먹혔는데, 아닌척... 요동군으로 교치 시켰다는 의견입니다.
어쨋거나 속현의 이동을 본다면 현도군이 밀리면서 요동군의 속현을 흡수하여
현도군의 외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보입니다.
정상적으로는 현도군이 요동군에 흡수되어야 하지만,
요동군의 속현을 관할로 흡수하여 현도군의 거품외형을 유지하려는 허세가 보이는 것을 숨길수는 없네요.
호아상 교수의 현도군 교치설은 다소 잔머리 굴린 모양새입니다.
전한-후한-서진의 현도군 속현 이동만 보아도 현도군이 외세에 밀리는게 보이는데...
이왕 이렇게 된거 교치라는 수저를 밥상에 얻는 모양새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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