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따져봐도 수ㆍ당 시대의 영주는
북경ㅡ적봉ㅡ노룡 일대에서 이리저리 움직인 것 같은데
유성도 처음에는 북경ㅡ노룡 이 라인이었고
북경ㅡ적봉ㅡ노룡 일대에서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옮겨가며 동명다처로 남은 것으로 보이는데
대체 어느 사서부터 현 조양시로 굳어진 것인가?
산융이고 선비고 귀부한 속말말갈이고 해, 거란이 있던 곳이
사서들은 다 북경ㅡ적봉ㅡ노룡 일대라 말하고 있는데
어찌된 게 조양시?
다시 한번 묻겠는데
수 요서군 유성현
수 요서군의 속현은 유성현 하나
수 요서군 인구 751 가구ㅡ많아야 5,000여 명
현 조양이 유성이면 남한만한 땅덩이에 이게 말이 되는가?
돌궐, 거란, 고구려가 호구니?
3연의 룡성도 이게 기록들로 보면 현 조양시라고 확정할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