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가 나타나기 전까진 진짜 유목민족들 전투력은 무적이었던 것 같아요;; 특성상 항상 말을 타고 다니니, 타 민족들과는 넘사벽 수준으로 말을 타고 다녔겠죠. 굿잡스님 말대로, 말에서 슝슝 쏴버리고, 또 불리하면 기동력을 발휘해서 도망가면서 슝슝하는 거. 몽골 애들이 이걸로 동유럽 박살냈잖아요 ㅋ
역사에서 VS놀이만큼 의미 없는 것도 없지만. 서로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동로마와 발해가 싸울 일도 없었겠지만. 원글에도 나와있듯이 만약 동로마와 발해 두 나라가 맞붙었으면 누가 이겼겠냐 이거겠죠? 발해인들이 말은 잘 타고 다녔겠지만, 과연 이걸로 동로마를 이길 수 있었을지는;;뭐 이건 알 길이 없겠지만요...ㅋㅋㅋ
정치적 혼란, 각계각층의 부정부패와 암살, 봉기 등이 빈번해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4분 통치할정도로 혼란스러웠던데다가
정복을 통해 제국을 유지 확장해온 로마가 이미 정복할 곳이 없어 경제적으로도 힘들어하던 시절이었는데 그 당시에 로마가 훈족한테 발렸다고 규모면에서 더 작을 수 밖에 없는 발해한테 비잔티움이 일방적으로 발린다고 하기는 힘들거 같은데요
게다가 훈족이 막강했던건 사실이지만 국가의 힘이 단순히 군사적인 능력에만 결정됬다면 역사는 퍽이나 쉬어졌겠지요. 국가의 힘은 문화, 정치체제, 사회, 경제, 외교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님이 예로 드셨던 훈족도 막강한 군대를 보유했지만 외교적으로 문외한이었던 훈족은 아틸라 사후 점점더 패권을 잃어버리게 되죠
그리고 전근대 시절의 군대는 지금과 같은 상비군이 아니죠 군대는 곧 돈인데 제대로 전쟁을 치룬다면 경제적으로 열세인 발해가 쉽게 이기리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
주변국들과 적대국, 지형, 경제상황 등에 따라서 무기나 갑주부터 시작해서
편제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이런 비교는 애초에 할 수도 없죠.
실제로 보여준 역량이나 경제력으로 봤을땐 비잔티움이 유리할 듯 하지만요.
그리고 훈족은 기병만 있는게 아니라 보병 편제도 제법 많았습니다.
물 다빠진 수준이었던 망국의 운명을 타고난 서로마 제국군 (서로마 정규군, 서고트족, 알란족)과 훈족이 상파뉴 회전에서 격돌하는데요. 아틸라가 이끌던 최전성기라고 볼 수 있던 훈족이 여기서 대패하고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었습니다.. 물론 당시 열악한 동유럽 수준 밀라노까지 턴건 사실이지만 망국 수준이었던 서로마에게 제대로 된 회전 당시에는 훈족도 패한 걸 보면 그보다 훨씬 강대했던 동로마에게는 장기전으로 갈 수록 안됐을 것 같군요.
기록이나 수치상 비교를 하면 동로마가 우세하다고 볼 수 있고
현실적인 생각을 하자면 어떤 장수와 전략을 보유하고 구사하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 아닌가요. 전략적 요충지도 그렇고..고로 무의미한 비교.
발해랑 동로마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고
그나마 해볼만한 비교는 당대의 훈족과 동로마 비교인데
동로마는 계산기 두들겨서 이득인만큼 돈 주고 훈족을 대충 넘겨버렸죠.
훈족의 영향력과 공포는 어마어마 했다고 보지만
재정상태는 최악에 안팎으로 망국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서로마랑 붙었는데도
훈족이 치명타를 입고 장기전으로 갈수록 한계를 드러낸 것을 보면
어마어마한 경제력과 희대의 명장도 있었던 동로마에는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자료가 좀 더 많이 남은 몽골같은 경우에도 대단하긴 했지만
너무 신화격으로 추앙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동양사에는 해박하신 분들이
서양사에는 너무 중고등학교 세계사 책 정도로 대충대충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학구적인게 아닌 특정 목적에 의한 역사공부 하신 분들은 편견이나 한계가 있더군요.
뭐, 당대에도 공포와 실제로 보여준 힘들이 '악마설' '무적설'을 돌게 할 정도였으니
지금에와서도 조금 과장이 있을 법도 하지만요.
물 다빠진 수준이었던 망국의 운명을 타고난 서로마 제국군 (서로마 정규군, 서고트족, 알란족)과 훈족이 상파뉴 회전에서 격돌하는데요. 아틸라가 이끌던 최전성기라고 볼 수 있던 훈족이 여기서 대패하고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었습니다.. 물론 당시 열악한 동유럽 수준 밀라노까지 턴건 사실이지만 망국 수준이었던 서로마에게 제대로 된 회전 당시에는 훈족도 패한 걸 보면 그보다 훨씬 강대했던 동로마에게는 장기전으로 갈 수록 안됐을 것 같군요. >??
이건 뭔가 잘 모르고 있는 듯 하군요.
님이 말하는 서로마군에 훈족이 대패??
어쩌고는 19세기까지 유럽 사가들의 그냥 자기 미화적 왜곡 묘사군요.
그기에 재기불능??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
<그러나 또 다른 연구는,
전쟁 당일 밤 로마군의 지휘 계통이 붕괴되어 아에티우스 자신이 훈 진영에 고립되었다가 겨우 탈출한 사실을 밝혀 내었고, 로마군에 소속되었던 프랑크군과 테오도리크 왕이 전사한 서고트군도 극심한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아틸라의 서로마 침공으로 로마 제국의 병참 기지 역할을 했던 갈리아가 폐허화되어 로마의 후방 보급로가 차단되었다.
이 전쟁 후 명장 아에티우스의 입지가 약화되는 것도 전쟁의 승패와 관련해서 매우 시사적이다. 아틸라의 훈 본대는 갈리아를 떠나 20여 일의 행군 끝에 수도로 귀환했다. 그리고 채 1년도 못 되어 아틸라가 또다시 이탈리아 원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교황 레오 1세의 시종관(侍從官)이었던 프로스페르티로(Prosper tiro)의 기록에 의하면, 무저항의 진격을 계속한 아틸라의 공세에 방어력을 상실한 아에티우스는 황제 발렌티니아누스에게 이탈리아를 떠나 피신할 것을 권고하였다.
452년 봄, 아틸라는 100,000의 정예 기병을 이끌고 줄리아 알프스를 넘어 오늘날의 베네치아 평야에 도착했다. 유명한 아퀼레이아(Aquileia) 성을 차지한 후, 또 평원으로 진입했다. 다시 아에밀리아(Aemilia) 지역을 정복하여 당시 서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라벤나(Ravenna)를 압박하였다.>
우선 이해하기 쉽고 충분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굿잡스님이 다루는 폭이 워낙 넓고 깊은것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네요. 언제나 흥미롭게 관련 코멘트나 게시글을 보고있습니다. 설명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말씀이십니다. 더불어 저의 이 게시글에 대한 견해는 굿잡스님이 밑에 따로 코멘트하신 부분과 일치하는 의도에서 작성하였습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훈족쪽으로 적어서 그렇다뿐이지 결코 훈족의 당시 위용이나 실질적인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틸라 시기가 전성기를 맞이한 2세대 훈족이라면 1세대인 선왕시대때에 그러한 기틀을 마련하였고 의외로 정예기병+보병편제도 기반을 다져주었다는 점과 한 풀 꺾인 기세도 있었다는 부분을 어필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서 훈족이 별거 아니었다는 느낌으로 전달되었다면 사과를 드리고 '신의 징벌'이라고 불리었다는 점과 당시 유럽을 제대로 유린한 몇 안되는 외부세력, 수많은 전장의 활약상과 동서로마에게 삥을 뜯은(..)국가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강력한 국가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단지 이 비교가 조금 터무니 없었다는 점에서 쓰게 된 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자르족의 후예인 헝가리가 훈족드립을 주로 하는거 같은데 제 생각에는 흉노족인 아시아에 정체성을 둔 유목민 계통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유골이라던가 아틸라, 훈족에 대한 생김새 묘사는 전형적인 몽골리안 계통인 것으로 저는 파악하고 있기에..몽골의 침입이나 쓰던 무구(화살촉) 전술이나 마상전투에 대한 묘사를 보면 아시아계 유목민으로 생각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