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2-05 20:30
조회 : 6,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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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의 만한동화 주장의 허구성. 현 중공의 주장에 만한동화를 통해 만주족은 한족에 흡수되었다는 논
리를 아무렇지 않게 폅니다. 사실 내막을 들어다보면 이게 얼마나
웃긴 말인지 특히 고대 왕조에서 더욱 그러한지 분명히 알수 있는 내
용입니다.
이런 논리는 중공이 우리 고조선 고구려에도 동북공정의 일반적 덕
목??마냥 전혀 달라지지 않는 논리이죠-그래도 우리 남북한이 있으
니 이정도 까지는 말못하고 지방정권이니 고구려는 우리와 상관없이
헛소리를 합니다.-역사적 고증이나 사서 기록등은 무시한 그들만의
편리한 대표적 논리입니다.
그럼 우선 볼까요?
<정복왕조 만주족 청은 왜 한만동화가 아니고 만한동화일까요?>
왜 일제 35년 동안 일제가 조선 합병으로 내세운 논리의 큰 테두리가
선내일체가 아니고 내선일체이죠?
당연한 것 아닙니까!
주도자, 칼을 쥐고 흔드는 자가 누군인지 분명히 아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그 칼 자루를 미쳤다고 피정복자에게 내어 줍니까????
결국 그것을 내어 줄때는 그 왕조나 일제가 망한 이후에나 가능했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문제입니다.
청의 만한동화역시 즉 유교적 국가 통치이념으로 이루어진 한족 명
나라의 유교나 과거제 심지어 한자 역시 만주족의 정치적 통치의 전술
적 개념에 불과했던 것이지 친절한 피지배계급인 한족과의 동화를 위
하거나 한족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책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히 고대에는 전제 왕권 중심의 사회인데 그기에 무슨 피정복민들에
로얄층이 동화 흡수???
정말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고 중공의 막장 드립이죠.
만주족 청은 초기 자신의 숫자 열세에 빠른 평정을 위해 엄청난 도륙
을 합니다. 난징 대학살보다 두배의 규모에 10여일 동안의 짧은 시기
에 양주성에서 한족 80만을 도륙한
무자비한 강경책은 대표적인 사례로 그 기록은 더 이상 금서 목록도 아닙니다.
그리고 유교의 대표적 통치 수단인 과거제 역시
청조는 지옥과 같은 多단계의 과거준비에 얽매이게 유도함으로써 한
족 지식인들이 체제에 불만을 가질 겨를이 없도록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청대의 과거합격자 110만명 중 관료가 되었던 사람은 2
만7000명에 불과할 정도였고 이것이 말하는 바는 극명하죠.
피정복 한족들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청나라 시절 300여년간
관직에 임명되는 것은 거의 하늘의 별따기 . 만주족에 뒤구멍 빠는 수
준의 교양?까지 겸하지 않고는 자리하나 얻기 힘들었다는 명확한 사
실입니다.
그리고 도리어 전족등 한족들 약화시키는 악습이란 악습은 더욱 권장
잘 유지 시켰죠. 만주족은 비웃으면 한족들 열심히 하라고 했고.
물론 이런걸 미쳤다고 만주족이 따라했겠슴.
그리고 청는 다중수도체제로 다스렸습니다.
이건 이미 고구려 시대 우리가 삼경 체재로
발해시대는 고구려 5부에 영향 받아 5경체재로 다스리듯
한족들 처럼 한곳에 쳐 눌러 앉아
다스리는 통치 형태가 아니였죠.
북경, 만주인-몽골인의 칸의 거처인 만주의 성징(盛京, 지금의 선양),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 신도들이 숭배하는 문수보살이 강림한 내몽골
의 청더(承德)까지 총 세 개의 수도를 운용했고 1762년 건륭제가
일 년 중 자금성에서 머문 시간은 1/3에 불과했습니다.
한마디로 북경만 올인하고 만주를 등한시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것
이죠.
청의 1대 누루하치 이후 2대 홍타이지는 만주족의 아이덴티티 위에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만들기 위해 만주문자를 창제했고
4대 강희제를 넘어 6대 건륭제는 이에 덧붙여 사신들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 몽골어와 티베트어, 위구르어 까지 익힐 정도로 코스모폴리탄
형 군주였습니다. 뭔 한어는 그냥 피지배 짜장들 통치의 한 수단과
교양 과목정도였다는 사실임.
. 특히 청이 러시아와 맺은 네르친스크 조약은 한자로 씌여진 문건을
남기지 않으며. 만주어와 러시아어만으로 기록을 남겼죠.
청의 정복왕조의 주체는 만주족이니 한족이 러시아에 주제없이 끼어
들 사항이 당연히 전혀 아닌게 역사적 상황이었고. 따라서 한자 사료
만 보아서는 청나라 치자의 속내를 읽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만주족은 유교나 한자는 피지배계층 한족을 지배하기 위한 도
구적 수단적 전술적 대상으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 다른 에피소드. 어느날 건륭제는 너무 많은 한어가 만주어 상주문
에 스며들었다고 불평했고 대학사 나친을 우두머리로 팀을 짜서 낡은
한자 차용어를 대체할 새로운 만주어 단어의 목록을 만들어 이로써 한
어에서 파생된 단어들이 만주어에서 대거 사라졌다. 대신 1,700개가
넘는 새로운 만주어 단어가 생겨 난게 정확한 역사의 진실입니다.
얼마전 광동 아시안 게임에서 북경어만으로 방송하도록 하는 도치에
홍콩이고 피켓을 들고 시위한 기사가 떠죠.
이건 정말 요절포통한 배꼽잡은 이야기입니다.
중공 공산당이 지들 논리로 만주족이 한족에 동화 어쩌고 하는데
현 북경어는 도리어 고구려 문명을 이은 금나라의 중도 건설과 직접
고구려인인 설계하여 현재도 남아 있는 황제의 정원인 북해공원등 이런 고대 수도의 밑바탕과 인구 증가에 힘입어
이후 몽골, 그리고 다시 청에 의해 북경어는 만주어, 몽골어, 우리 북
방계 언어가 도리어 더욱 상당히 녹아 내려있어 한족어와는
이미 다른 언어입니다. 도리어 지들 한족어들이 핍박받는 우스운 상황
이 전개된 것이죠.
역사의 무식함이 이정도인 나라가 중공공산당이고 그들의 정치적 역
사관의 극명한 모순이 이런 시대적 아이러니를 불러 일으키면서 정작
본인들이 더 모른다는 무식한 촌극의 연속이죠.
한마디로 현 중공 공산당은
우리로 치면 일제시대 남아 있던 온갖 낡은 일제어를 가지고 도리
어 우리 한글어 탄압하는 우스운 상황극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한심도 이런 한심이 없고 중공의 뻘짓 역사관과 허구성은 역사의 진실
앞에더욱 초라하고 무식함이 드러납니다.
청의 황제가 자신의 역사관 정립을 위해 직접 황제 칙명에
의해 만주원류고까지 친철히 남겨 놓았습니다.
한족의 유교적 통치방법이나 한자는 그냥 만주족이 피지배 한족들을
다스리기 위한 통치 수단이며 전술적 부분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그것은 청 말기 한족 지식인들이 더욱 알고
멸만흥한을 내세우며 탄생한게 현 중공이였슴.
이제 와서 막장드립을 치니 지들 피박한 몽골 만주어가 상당수인
북경어로 도리어 한족들 광동어를 쓰지 말라는 무식한
상무식드립을 치고 있으니.
정작 누가 누구에게 동화되고 영향을 받았다는
말인가? 현 중공 공산당 역사논리나 행동들 보면 정말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는 ㅎㅎ
무식하니 용감??? 뻔뻔할 수 밖에.
『최후의 황제들-청 황실의 사회사』이블린 S. 로스키 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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