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도 미개한 애들이 살고 있었는데 고대에 우리 조상님들이 넘어가 글도 가르쳐주고 농사짓는 방법, 그릇만는 방법, 법 밥먹는 방법 등까지도 가르쳐 줬었는데 얘들이 시간지나니 오만방자해져서 혼자 큰 것처럼(불효자처럼) 오기부리고 다니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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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역사:
위키-
삼국시대 초에는 쓰시마를 ‘진도(津島)’라고 불렀다. 고려 말부터 고려에 조공을 하고 쌀 등의 답례를 받아갔다.
6세기전반 아스카 시대에는 쓰시마 국주(對馬島主)가 일본왕부의 임명장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평화 시에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의 교역을 독점하였으며, 전쟁 시에는 두 나라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이 한때 왜구의 소굴이 되자, 1389년(고려 창왕 2년)에는 박위가 쓰시마를 토벌하였다.
본래 쓰시마는 아비루 가문이 지배하였으나, 12세기 고레무네노 시게히사(惟宗重尙)가 아비루가에서 일어난 반란을 평정한 이후, 시게히사의 후손인 소가가 지배하게 되었다.
그 뒤로도 고려와 조선으로부터 관작을 받았으며.....
"대마도(對馬島)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친 우리 땅이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그 땅을 무력 강점했지만 결사 항전한 (대마도) 의병들이 이를 격퇴했고 의병 전적비(戰蹟碑)가 대마도 도처에 있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줘야 한다."
1949년 1월 7일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이 첫 연두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이날 이승만은 한일국교재개를 언급하면서 대마도 문제를 꺼냈다.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라는 미국 요구에 맞서기 위한 지렛대로 대마도 카드를 뽑아든 것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다. 그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 지 사흘 뒤인 8월 18일 성명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니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고 했다. 일본이 항의하자 이승만은 외무부를 시켜 그해 9월 '대마도 속령(屬領)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왕(실성 마립간)은 왜인이 대마도에 병영을 설치하고 무기와 군량을 쌓음으로서 우리를 습격하려꼬 한다는 말을 듣고 그들이 일을 일으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정예군사를 뽑아가꼬 적의 진영을 격파하고자 하였다능" 이렇게 해석이 되네요 실성 마립간 조의 구절은 남당 박창화의 필사본말고요
생각해보니깐 한국사람이면 이렇게 자료를 보여주면 대마도가 신라땅이겠네요.
하면서 뭐라고 안할텐데 너는 왜 자꾸 물고 늘어지냐?? 애도 좀 이상한 사람인가보네
필사본이 책에 있는거 필사한건데 왜 자꾸 물고늘어지려고 하지?? 제대로 링크해준것도
안읽고 계속 물고 늘어지네요???
대마도(對馬島 쓰시마)가 한국 땅으로 표기된 옛 지도 2점이 처음으로 공개돼, 경남 마산시가 조례로 제정해 5년째 기념하고 있는 '대마도의 날' 정당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부산외국어대 일본어학부 김문길 교수는 28일 오후 경남 마산문화원에서 열린 '대마도 고지도 전시회'에서 대마도가 한국 땅으로 표기된 '대마여지도(對馬與地道)'와 '청구도' 동래부 기장현 사본을 전시했다.
김 교수가 처음으로 공개한 이 대마여지도에는 '본예신라수로470리재동래부지동남해중지실성왕7년무신왜치영어차도(本隸新羅水路四百七十里在東萊府之東南海中至實聖王7年戊申倭置營於此島)- 대마도는 원래 신라땅에 예속되어 있고 실성왕 7년까지 동래부에 속한 섬으로 470리 거리 동남쪽 바다에 있다. 무신년에 왜(일본인)가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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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년 6월 일본 지리학자인 모리고안(森幸安)이 에도(江戶) 시대 막부의 명을 받아 제작한 뒤 공인을 받은 이 지도는 원본이 교토 기타노덴만쿠(北野天滿宮)에 소장돼 있는데 '부시준조선국지지례칙부향군령지470리(釜示准朝鮮國地之例則府鄕郡令之470里)'라고 적혀 있다. 이는 '대마도의 부ㆍ향ㆍ군 모든 법칙은 조선국 부산에 준한 것이다. 거리는 470리다'로 해석돼, 대마도가 우리 영토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원래 일본땅은 없어요. 그냥 대마도도 큰 섬이기에 독자적인 소국이 들어서서 주변 강국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왔다갔다 하다가 갈수록 중앙집권으로 개별정권으로는 살아남을수 없는 조선보단 번체제로 정권을 지킬수 있는 일본에 붙은거죠. 물론 거기엔 초기엔 신라 및 고려계등이 주류였다가 갈수록 해외를 등한시해서 일본계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말이 될수도 있고..
관리라고 할것도 없죠. 조선은 해금을 따라한 유일한 한반도의 나라이니까요. 그나마 오히려 거리가 좀더 멀리있는 제주도는 탐라국 박살내고 완전 흡수합병 했는데.. 대마도는 워낙 가난해서 별신경 안쓰다보니..
대마도가 지금까지 한국에 속해있으려면 그 당시 탐라처럼 섬정권을 작살내고 완전합병했어야하죠.
조선시대 북방의 압록강~두만강 라인 이북과 대마도는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공세종말점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서 Marauder님 언급처럼 임란 이전에는 상징적인 측면에 가깝기는 하지만
조선 또한 대마도에 일정정도의 지분은 지니고 있었다 할 것입니다.
조선과 대마도 관계는 마치 중국과 주변국가간에 이루어지는 조공-책봉관계의
축소판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임란 직전의 히데요시가 집권한 아쯔지-모모야마시대부터는 급속도로 일본에 기울어졌고...
에도시기를 거쳐....메이지유신 이후에는 그나마 이전까지 형식적으로나마 남아있던 조선과의
어정쩡한 관계를 완전 청산하고, 실질적인 일본의 내지로 편입됩니다.
대마도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기 오키나와(유구), 북해도, 쿠릴열도, 오가사와라제도 등이
일본령으로 완전히 편입됩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연말에도 2박3일 일정으로 대마도를 다녀오기는 했는데...
갈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대마도의 옛 건축물들을 비롯한 유물-유적들을 보면
뭐랄까 일본본토와는 다르게 한국과 일본의 양식이 절묘하게 혼재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대마도가 오늘날 비록 일본땅이기는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서는 한국의 영향력하에 있는 섬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마도 중심지인 이즈하라(하대마), 히타카츠(상대마)를 비롯한 대마도 곳곳의
알짜배기 건물과 부동산의 상당부분이 한국인-한국자본 소유이며....
(마치 오늘날 중국인-중국자본이 서울 도심의 빌딩들과 제주도땅들을 사들이고 있듯이....)
또한 대마도전체인구 고작 3~4만 인구의 섬을 1년에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30만에 달할 정도로 대마도관광객의 99%는 한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일본본토인들 상당수는 대마도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도 잘 모르며,
심지어 섬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들도 상당할 정도입니다.
또한 대마도로의 접근성 또한 일본본토보다 한국 부산에서의 접근성이 훨씬 용이하며,
섬과 육지를 오가는 배편 또한 부산-대마도 편수가 대마도-후쿠오카 또는
대마도-나가사키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과 일본의 틈바구니 속에서... 또한 적어도 경제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한국에의 의존도가 높은 대마도의 기본 속성은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시기조차 대마도는 행정구역상 상위인 나가사키 또는 후쿠오카보다는
식민지인 부산경제권에 보다 가깝게 의존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