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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5-12 17:21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의 위치는 어디일까? ( 섬서성 지형사진 첨가)
 글쓴이 : 구르뫼
조회 : 628  

사마천의 사기 소진열전에 전국시대 燕나라의 북쪽에 林胡(임호)와 樓煩(루번)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연나라는 임호와 루번의 동쪽에 있다.


과연 안동상도호부 위치를 감안하여 연나라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참조링크] 1265년 輿地圖에 나타난 안동상도호부(安東上都護府) 


아래 지도는 1980년 대만판 중국역사지도의 戰國七雄圖에 일부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또한 중국 담기양의 역사지도에는 임호의 위치가 대만판보다 남쪽으로 내려와

유림현에 있는 장성과 북쪽의 동승지역 사이에 표시되고 있습니다. 

원문의 (가로)는 송간본 전국책의 주석을 별도로 이해하기 편하게 추가했습니다.

운중과 구원지역은 각각 루번과 임호지역에 존재하므로 북쪽에 있게 되어 이동된 지명임을 

알 수 있기에 실제 구원으로 추정되는 오원 즉 염지현을 추가하여 표시하였습니다.

산서성 대동시 주변에 마읍산이 존재하며 지도의 이민채 남쪽에 운중산이 존재합니다.

또한 遼東(요동) 주석에 并州郡(병주군)으로 기록되는데 현재 이 지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명에서 유추되는 병주 지역임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사마천 사기에 나타난 燕나라 기록

원문] 東有朝鮮(樂浪)‧遼東(并州郡),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屬五原), 南有呼沱‧易水(出涿故安)  地方二千餘里 


0战国七雄图_中国历史地图(台湾版)_1980.jpg






참조] 중국지명대사전의 오원은 섬서성과 감숙성에 존재합니다.

五原陝西境。〔長安志〕長安萬年二縣之外

有畢原、白鹿原、少陵原、高陽原、細柳原。謂之五原。

⦿在甘肅鹽池縣境内。〔元和志〕故五原郡。以其地有五原所。故名。

五原。謂龍游原、乞地千原、青嶺原、可嵐貞原、橫槽原。


섬서성 특수지형] 다른 곳의 사진은 올라온 것이 없어 하류쪽인 金水沟사진이며 

사진의 정상이 일반 평지임.


01.jpeg

02.jpg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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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시윤 24-05-12 17:38
   
구르뫼님 전제가 틀리섰어요
왜 후대를 기준으로 선대를 잡으십니까
선대부터 차근히 내려오시죠

님글 하나하나 옹호와 반박을 해드릴개요
     
구르뫼 24-05-12 18:28
   
이 지도는 대만의 역사학자 錢穆의 주장이 반영된 지도입니다.
전국시대 약 200년정도 전체적인 7웅의 위치를 나타난 것이기에
전국시대 중간인 BC333년경의 소진유세시의 지도가 아니라 후대라는 말인데
여기 그 정도 실력 이상으로 충분히 소화할 분들 있다고 보이며
궁극적 임호와 루번의 남쪽에 연나라가 왜 없나....
이게 핵심입니다...이 점에 대한 반박을 하시기 바랍니다.

저 위치는 중국과 대만의 석학들이 만든 것이니 제에게 위치는 따지지 마세요.
문헌적으로 사기의 기록이 잘못되었다는 토론은 환영합니다.
     
구르뫼 24-05-12 20:08
   
살수 글에 끝 댓글에 쓰려다 여기에 씁니다.
황하의 물길을 잘 아신다고 하여 궁금한 것이 있어 몰어볼께요,
서긍의 고려도경 해도에
황수양을 지날때 황하가 나온다고 했습니다.(卽黃河入海之處)
그런데 황하가 남하한 것은 황하변천사를 보면 1194년 금나라 때인데
1123년에 이미 회안부를 걸쳐 동해로 나오고 있다는 당시의 기록입니다.
이 부분 왜 이런 상황이 생겼는지 문헌적으로  해답을 찾지 못했네요....
심증적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혹시 아시는 부분 있나요?
          
하이시윤 24-05-13 10:41
   
감방친구님 글ㅡ위구르님 글에 나와있습니다
               
구르뫼 24-05-13 12:44
   
한번 찾아보죠.
혹시 링크를 걸어주시면 좋을듯 합니다.
위구르 24-05-12 19:29
   
또 논점을 이탈해서 전국시대를 붙잡으십니까

본문에 '또한 遼東(요동) 주석에 并州郡(병주군)으로 기록되는데 현재 이 지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요동이 병주에 있다고 한 주석이 있는 사서와 그 한자 원문은 무엇입니까
     
구르뫼 24-05-12 19:40
   
송간본  전국책입니다. (鮑本)
원본은 위 원문과 동일합니다.
          
위구르 24-05-12 20:04
   
그럼 사기에는 없는 모양이군요
               
구르뫼 24-05-12 20:13
   
원래 사기에는 주석이 없는 걸로 알고 있네요.
전국책에는 각 나라별로 중요내용에  주석을 단 것으로 사기는 당연히 인용되겠죠.
                    
위구르 24-05-12 20:16
   
'당연히 인용되겠죠'가 아니라 사기에 실제 기록이 있으면 사기 몇권에 나오는지와 정확한 원문을 기재하셔야죠
                    
위구르 24-05-12 20:24
   
그리고 전국책 29권에는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西有雲中·九原'라고만 나오죠
위구르 24-05-12 20:15
   
사기 69권에 燕東有朝鮮、遼東,北有林胡이라 나오는데 왜 본문에서는 '東有朝鮮(樂浪)‧遼東(并州郡), 北有林胡‧樓煩, '라고 임의로 원문을 조작하셨습니까?
위구르 24-05-12 20:42
   
또 중국고금지명사전에 북안주에 대해

'北安州

遼置。在今熱河承德縣南

북안주

요나라가 설치했다. 지금의 열하 승덕현 남쪽에 있(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구르뫼 24-05-12 20:46
   
사마천 사기 원본은
燕東有朝鮮、遼東,北有林胡、樓煩,西有雲中、九原,南有嘑沱、易水,地方二千餘里
루번이 들었갔으며
상기 본문글에도 썼지만 鮑本 전국책의 주석인용한다고 했지요.
전국책도 주석을 쓴 분이 몇 분 되니 한 번 찾아보시고 말하세요.

소진열전은 유명한데 이걸 혹시 내가 잘못알았나 찾아보았는데
위구르님 반박도 기본 예의는 지키고 토론합시다.
          
위구르 24-05-12 21:30
   
왜 鮑本 전국책에 집착해서 그러시는지 의문입니다

그나저나 애초에 다루던 주제는 고려의 국경과 '북안주가 지금의 섬서성에 있었는가'라는 주제입니다

반박은 제대로 못하는데 주장은 하고 싶어서 이렇게 논점을 흐리는 전술을 활용한다는 점을 파악했습니다
          
위구르 24-05-12 22:50
   
'사마천 사기 원본은
燕東有朝鮮、遼東,北有林胡、樓煩,西有雲中、九原,南有嘑沱、易水,地方二千餘里
루번이 들었갔으며' <- 루번이 들어갔다는 점은 저도 알고 그게 중요한 상황이 아니잖습니까

위 본문에서 '사마천 사기에 나타난 燕나라 기록

원문] 東有朝鮮(樂浪)‧遼東(并州郡),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屬五原), 南有呼沱‧易水(出涿故安)  地方二千餘里 ' 라고 했으면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오늘은 또 요동이 병주라고 주장하고 싶어서 저렇게 요동 옆에 은글슬쩍 병주를 집어넣어서 원문에 그리 쓰인 듯이 쓰셨잖습니까
포표가 쓴 주석서 9권을 보면 나오는 대목이

'碣石鴈門之饒〈并州郡〉北有棗栗之利'

전국책 원문의 기록은

'碣石鴈門之饒 北有棗粟之利'

포표가 쓴 주석서 9권에

雲中〈并州郡〉 운중: 병주군
遼東〈并州郡〉 요동: 병주군
碣石鴈門之饒〈并州郡〉 盂县  안문: 병주군
并州有仇猶  병주에 구유가 있다(구유는 지금의 산서성 盂县)
上郡絶〈并州〉  상군은 병주에 막혔다
上黨〈漢并州郡 상당: 한나라의 병주군


병주는 여러 지역에 주석으로 달리고 여기의 병주는 한나라의 병주입니다

그래서 삭방군의 동부에 있던 상군이 병주에 막혔다고 나옵니다

여기의 병주는 산서성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죠

고구려의 모본태왕이 한나라를 침공해서 태원까지 함락했을 때 한나라의 협상 책임자로

요동태수 제융이 나섰습니다

전국책에서 소진이 한 발언을 보면 '동쪽으로 조선과 요동, 북쪽으로 임호와 누번, 서쪽으로 운중과 구원, 남쪽으로 호저와 역수(易水)가 있다'입니다

지금의 산서성에 요동이 있으면 소진이 '(연나라의)동쪽으로'가 아니라 '서쪽으로 요동'이라고 하지 왜 저렇게 말합니까?

그리고 포표가 살던 시기는 송나라 대로 이미 전국시대에 2개였던 요동은 자취가 없어지고

지금의 요하 동쪽으로 요동이 고정된 시기인데 뭐하러 요동을 병주에 있다고 써줍니까?

성립이 불가능한 주석이고 이는 오기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주석서 중에 표포가 쓴 것에만 요동에 병주가 붙은 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위구르 24-05-12 22:55
   
전국시대에는 요동이 두 곳이 있었다는걸 알고 계셨습니까?

하나는 태원을 비롯한 태행산맥 중남부고 하나는 북동쪽에 있는 영정하 혹은 조백하의 동쪽입니다

소진이 문후한테 말한 연나라 동쪽의 요동은 저 둘 중 어디에 해당합니까?

해당하는 곳을 못 찾으실 것입니다

병주는 아예 동떨어진 서쪽에 있으니까요

결국 위에 쓴

'雲中〈并州郡〉 운중: 병주군
遼東〈并州郡〉 요동: 병주군
碣石鴈門之饒〈并州郡〉 盂县  안문: 병주군
并州有仇猶  병주에 구유가 있다(구유는 지금의 산서성 盂县)
上郡絶〈并州〉  상군은 병주에 막혔다
上黨〈漢并州郡 상당: 한나라의 병주군'대로

요동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모두 산서성에 분포했던 지명이기 때문에 오기로 봐야한다 이 말입니다

거기를 요동으로 인정해서 고대 동이족의 범위를 넓혀주는 자폭행위를 송나라놈이 사서 했을 리가 있겠습니까
               
구르뫼 24-05-13 05:40
   
저 역시 上黨〈漢并州郡  이 부분은 보았습니다.
먼저 사마천 사기의 다른 기록 역시 위와 같이 동서남북이 오늘날 지명과 비정에 차이가 나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 예로
지현의 서쪽에 상당이 있다고 하는데 북쪽에 있습니다.
진나라 서쪽에 한중이 있다고 하는데 남쪽에 있습니다.
또한 춘추전국시대 진양은 산서성 임분시와 익성시 사이입니다.
그런데 북위와 수나라 시대에 현 태원시로 모든 연혁이 이동합니다.
이는 당연히 당나라 시대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래서 송나라때 진양을 익성 또는 태원으로 보는  문헌이 상존합니다.
그럼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연구를 하려하니
당대의 기록이 중요한데 당나라 간행본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송나라 간행본을 통해 당시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찾아보는 것입니다.
언급하신 전국책은 그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뭐 사기정의 등 주석서를 보아도 혼란만 가중되는 경우도 있더군요.

그럼 말씀하신 고려국경 역시 일부 송나라 간행본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고려시대의 연경을 보정시로 보고 있기에
상기 요동이 병주지역이 되면 서쪽이 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오늘날의 인식이며
이게 송나라시대일 경우
보정시나 석가장시가 연경일 경우에도 요동을 병주지역으로 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위구르님이 말한 전국시대 산서성을 요동으로 인식하여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압록강을 준화현 근처의 강물로 비정한다함은
삼국유사와 여지도는 비슷한 13세기 중반이후 작품입니다.
삼국유사에서 요수는 압록강이라 불리웠고 지금은 안민강이라 하니
준화현 동쪽이 난하입니다. 그리고 여지도의 물길 역시 그 지역이며
준화현 남쪽에 黎河가 난하쪽으로 연결될 듯 안되고 있어 비정하지 못했지만
준화현 근처에  위구르님이 주장하시는 난하가 있어 압록이 있을 수 있다함입니다.

그리고  위에 위구르님이 언급한
"전국시대에는 요동이 두 곳이 있었다는걸 알고 계셨습니까?"의 자료나 기록의
원전을 가르쳐주시면 검토해 보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ps. 진개의 동호격파에 의한 연나라 영역확대에 의해 전국시대 요동이 두군데라고 언급한 것이라면  의미 없는 내용입니다.
                    
위구르 24-05-13 09:45
   
수많은 반박에 이런 식으로 밖에 못 떠들고 늘어지는 꼴이 불쌍함
                    
위구르 24-05-13 09:50
   
'먼저 사마천 사기의 다른 기록 역시 위와 같이 동서남북이 오늘날 지명과 비정에 차이가 나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 예로
지현의 서쪽에 상당이 있다고 하는데 북쪽에 있습니다.
진나라 서쪽에 한중이 있다고 하는데 남쪽에 있습니다.
또한 춘추전국시대 진양은 산서성 임분시와 익성시 사이입니다.
그런데 북위와 수나라 시대에 현 태원시로 모든 연혁이 이동합니다.
이는 당연히 당나라 시대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래서 송나라때 진양을 익성 또는 태원으로 보는  문헌이 상존합니다.
그럼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연구를 하려하니
당대의 기록이 중요한데 당나라 간행본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송나라 간행본을 통해 당시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찾아보는 것입니다.
언급하신 전국책은 그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뭐 사기정의 등 주석서를 보아도 혼란만 가중되는 경우도 있더군요' <-

'무슨 경우가 있다더라', '일 수도 있다'이러면서 있지도 않은 가능성을 자랑하며 끝까지 선동하고 속임수를 쓸려고 하는 모양새가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의 수장입니다

'진개의 동호격파에 의한 연나라 영역확대에 의해 전국시대 요동이 두군데라고 언급한 것이라면  의미 없는 내용입니다'

진개가 아니라 그 이전에 두 군데라고요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6066&sca=&sfl=wr_subject&stx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88105&sca=&sfl=wr_subject&stx=%EA%B0%9C%EB%85%90+%EC%9A%94%EB%8F%99&sop=and
                    
위구르 24-05-13 09:52
   
'또한 압록강을 준화현 근처의 강물로 비정한다함은
삼국유사와 여지도는 비슷한 13세기 중반이후 작품입니다.
삼국유사에서 요수는 압록강이라 불리웠고 지금은 안민강이라 하니
준화현 동쪽이 난하입니다. 그리고 여지도의 물길 역시 그 지역이며
준화현 남쪽에 黎河가 난하쪽으로 연결될 듯 안되고 있어 비정하지 못했지만
준화현 근처에  위구르님이 주장하시는 난하가 있어 압록이 있을 수 있다함입니다.'

여지도는 삼국유사와 동시기 작품이다 -> 삼국유사에서 압록강이 안민강이라 나온다 -> 준화현 동쪽이 난하다 -> 여지도의 물길이 거기다 -> 준화현 근처에 난하가 있기 때문에 압록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쓰레기같은 논리를 지금 반박이라고 내놓았습니까?
                         
구르뫼 24-05-13 11:20
   
글을 읽고 알만한 사람은 알 수 있으니 뭐~~~

내가 정확한 문헌 공개할 필요도 없고
사마천 사기 원문도 다시 찾게 만들고 ~~~

위구르님 링크글을 보니 전에 감방친구라 분 열정적인 모습도 생각나고~~
잠시 글 읽어보니 潦水가 나오는데 하남성에 지금도 흐르고 있지~~~
하북성에는 두 군데의 호수로 나타나는데 일본과 중국이 다르니
나중에 찾아보려고 표시만 해놓았던 기억도 나고~~~
내용중 "則遼東本為青州矣" 중 청주가 어디인데 말이죠...웃음이 나네

여지도는 1190년 추리도의 지명을 충분히 보완하는 지도이기에 거의 동일한 지도라 보아도 되고
단지 안동상도호부를 왜 썼을까? 그게 의문이지......
일부 역사지도에 그곳에 신성이 표시되니 요서라고 해도 충분히 고려영토는 재조명되어야지...
요수=난하를 주장하면서 일연스님의 
요수=압록강이라는 말을 무시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개탄스럽군...

우연이 많으면 필연이라는 말처럼
중국 대륙에 우리나라 지명이 고증되면 다 쓸데없는 토론이니
요수=난하설 신봉하세요......
                         
구르뫼 24-05-13 11:52
   
생각나는게 있어 하나 적어보네요...
진서 청주 기록에 "正東曰青州"라고 했는데
전에 태평환우기 와 원화군현지 하북성 주현의 거리를 지도로 만들었는데
옛 선인들 동서남북에 있어 정확했네요.
즉 낙양기준 제시된 글은 동북이지 정동이 아니지요...
약간의 오차가 있으면 微 자를 추가했으며
이동된 지명이거나 찜찜한 지명일 경우 東으로 폭넓게 쓰는 기록이 있어 눈여겨 보았지요.
海를 넘어 정동이 되는 청주는 어디일까 생각하니 이 역시 웃음이 나네요.
                         
위구르 24-05-14 09:45
   
'글을 읽고 알만한 사람은 알 수 있으니 뭐~~~

내가 정확한 문헌 공개할 필요도 없고
사마천 사기 원문도 다시 찾게 만들고 ~~~

위구르님 링크글을 보니 전에 감방친구라 분 열정적인 모습도 생각나고~~
잠시 글 읽어보니 潦水가 나오는데 하남성에 지금도 흐르고 있지~~~
하북성에는 두 군데의 호수로 나타나는데 일본과 중국이 다르니
나중에 찾아보려고 표시만 해놓았던 기억도 나고~~~'

머리가 안 돌아가는 늙은 사람들이 빠져나갈 궁리를 마련할 때 잘 쓰는 어투죠. 항복 선언 잘 봤습니다
                         
위구르 24-05-14 09:47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202242&sca=&sfl=&stx=&spt=0&page=0

여기에서 달하목진에 있는 리민보란 지명하고 리민진이란 지명이 모두 명나라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설명했더니 반박도 못하고 여기서 이리 떠들어대며 연명하니 진짜 안쓰러울 뿐임. 반박할 수가 없어서 그런다는걸 이미 알고 있음
                         
위구르 24-05-14 09:55
   
또 뭔가 해서 찾아봤더니 진서 15권에 '案《禹貢》為海岱之地,舜置十二牧,則其一也。舜以青州越海,又分為營州,則遼東本為青州矣。《周禮》:「正東曰青州。」'라고 나와있는데 이걸 가져온거임?

이건 우공이 천하를 나눌 때 동쪽을 청주라 했다는 기록이고 거기는 지금의 산동성으로 비정됨

그런데 여기 어디에 '즉 낙양기준 제시된 글은 동북이지 정동이 아니지요...'라고 말 할 근거가 있습니까

낙양 기준이 아니라 그냥 중원 땅 내에서 동쪽을 청주라 했다는 기록인데

아주 조작과 날조가 습관이 되었네
                         
위구르 24-05-14 09:58
   
'중국 대륙에 우리나라 지명이 고증되면 다 쓸데없는 토론이니
요수=난하설 신봉하세요......'

댁이야말로 이미 논파되고 갈려나간 그 짝의 설을 혼자 조용히 추종하고 사시죠

내 반박에는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계속 다른 주제를 끌고 와서 버티려고 들고 있으니

다시 질문하죠

추리도에 삭주와 북안주가 다르게 나온다는 점을 인정합니까?

달하목진의 이민보와 이민진이 모두 명나라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안정합니까?

이에 아무 답도 못한다면 댁은 더 이상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상황입니다
                         
구르뫼 24-05-14 15:27
   
이민진에 대해선 당신 글에 댓글을 썼으니 읽어보고
지금 고려시대를 논함이니 명나라시대가 아닌
요나라 금나라 시대 이민보지역에 이민이 아닌 다른 지명임을 밝히시고
주장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 금사와 내 글에 利民이라고 썼지 이민보가 아니요.
이민보란 요새를 1481년 세운거지(始建)
이민 이라는 지명을 설치한게 아니라는 이야기이며(始置)
그 어디에도 처음으로 利民이라는 마을을 설치했다는 기록은 없소.

청주에 대해
우선 낙양이 아니라 순임금의 수도 포판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야 하는데
착각을 하여 그 부분 인정하오.
상서에 이르길
海岱에 惟靑州라, 海岱及淮에 惟徐州라, 淮海에 惟揚州라
 
靑州가 넓어진다 함은 해수면이 낮아져 육지가 생기기 시작하여
지금의 창주지역이 넓어짐을 말하며 여기에 營州를 설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대청광여도에 천진부근에 유성을 그린 것이오.
(우공의 치수는 13년이오...그 기간에 가능한 영역을 생각해 보십시요.)

상서의 舜爲十二州, 分靑州爲營州, 營州卽遼東也기록과
위구르님이 쓴 글에 舜以青州越海,又分為營州,則遼東本為青州矣를 보면
영주 역시 요동이며 越海는 황하를 넘어 북쪽지역이기에
청주를 창주지역에 그린 것은 폭넓은 의미의 청주이기에 이치에 맞는 이야기요.
 (六經圖 기록 참조)

그런데 왜 웃었나 하면 황하의 흐름을 이해했기 때문이요.

1.1194년 황하는 남하를 하오.
그런데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1123년 이미 남하하고 있다.

2.명나라 초기 위하는 제령으로 흘려 운하와 합해져야 하는데 오늘날 지명으로는 불가능하다.(지금은 임청으로 간다.)
이것이 왜 그런지 이해하면 고려강역이 보인다.

끝으로 나 역시 요수가 난하임을 알고 있으며
단지 그 난하가 지금의 난하가 아니라 서쪽에 있다는 것이고
지명이 서쪽으로 이동되어야 함이니
위구르님과 토론에 다소 불미스러운 언행이 보이니 상대방의 말꼬리보다
위구르님이 보유한 자료를 인용해 반박하심이 더욱 발전적 모습이라 보입니다.
                         
위구르 24-05-14 18:40
   
야 꺼져라 그냥

너가 상대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란 점을 이제야 깨달았다

늙어 망가진 두뇌에서 나온 헛소리를 부서진 입으로 내뱉는데 내가 어떻게 감당하겠냐
                         
구르뫼 24-05-14 18:48
   
자기 감정도 조절 못하고 비속어를 남발하고
왜 임호와 루번 지역의 고증은 반박하지 못하나?
전묵이나 담기양한테 안되겠지...그래서 당신같은 매국사학에게 중국자료로 얘기하는거지.
당신글에도 썼지만 고려강역 복원은 자료가 넘치지...
근간 중국자료로 다시 보자고....그 때도 많은 조언 부탁하고....
          
위구르 24-05-12 23:03
   
포표가 쓴 주석서 9권 연나라조의 처음 문장에 '燕〈東有漁陽右北平遼西遼東 西有上谷代郡鴈門南得涿郡之易容城范陽北有新城故安涿縣良鄉新昌及渤海之西而樂浪
               
하이시윤 24-05-12 23:52
   
ㅇㅋ 다 이해돼었습니다
                    
위구르 24-05-13 00:26
   
이렇게 반박을 하고 종일 토론(?)을 하며 진이 빠지다보니 하이시윤님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종햇살 24-05-14 18:37
   
'끝으로 나 역시 요수가 난하임을 알고 있으며
단지 그 난하가 지금의 난하가 아니라 서쪽에 있다는 것이고
지명이 서쪽으로 이동되어야 함이니'

서쪽이 어딘가요?
     
구르뫼 24-05-15 10:47
   
영종햇살님의 쓰신 글을 보니 일부내용을 공개해도 될듯해 씁니다.
제 글에서도 당나라시대 서악 화산의 이동만큼 요수 역시 이동했습니다.
당연히 지금 요수=난하는 고려시대에 인식하는 요수입니다.
 요수=난하의 근간은 1190년 추리도입니다.
이 지도에 난주에 요수가 써있는데 애석하게도 여지도에는 그 부분이 훼손되었습니다.
제 글에 있으니 보시면 지도에 난주를 흐르는 요수는
오늘날 난하처럼 긴 강이 아닙니다. 굉장히 착각을 했지요.
그럼 난하는 고려시대 어떤 강물이냐?

고려시대 인식하고 있던 중국이 감추려는 연남장성의 동단은 하북 대성현입니다.
이 장성을 관통하는 강물은 계조하, 거마하와 유리하가 있습니다.
이 근처의 강물이 지도에  그려지는 강물입니다.
당시 해발 5m전후로 해안선을 만들면 송나라시대와 비슷해집니다
참조하시면 될듯합니다.

제가 아직 비정을 못한 이유는 고구려를 복원하기 위해
섬서 감숙 산서성 쪽를 조사하다 보니 고려 복원은 생각도 안했습니다.
이제 20여년 모은 자료 정리가 마무리 단계라
상서와 사기부터 천천히 읽으며 고증을 하려 했기 때문이며
이제 잘 잊어버립니다.

전에 저에게  물어보신 海의 의미중 상서가 해답을 줄 것이니 읽어보십시요.
반드시 우공의 강계지도를 참조하세요.
          
하이시윤 24-05-15 15:04
   
문헌고증이 없이 지도로 위치비정을 하는 리스크를 버리지않으시는군요.  문헌고증을 통해 확인된 위치가 중요합니다.
남아있는 고대지도는 모두 송대이후의 것입니다.
한사군만 하더라도 무려 1300년 뒤의 일입니다. 
해당사건 당시의 문헌고증을 통한 위치비정이 우선입니다. 지도는 고대사에서 보조자료일뿐입니다
               
구르뫼 24-05-15 17:37
   
魏書 지형지에
滄州〈熙平二年(517년)分瀛、冀二州置,治饒安城。領郡三 縣十二
      浮陽郡 樂陵郡 安德郡
隋書지리지에
渤海郡開皇六年(586년)置棣州,大業二年(606년)為滄州

중국지명대사전에서 창주의 기록은
⦿後魏置。隋廢。故治在今直隸南皮縣東南八十里。⦿唐置。改曰景城郡。尋復曰滄州。宋曰滄州景城郡。金復爲滄州。治清池。在今直隸滄縣東南四十里。金元因之。明初省清池入州。移州治長蘆故縣。明清時州屬直隸河間府。民國改爲滄縣。

창주 연혁에서 수서의 창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창주는 발해군을 상징하는데 지금의 산동성 빈주 체주가 있는 곳에서 너무도 북상했습니다.
명나라 때 자연스럽게 황하가 천진까지 이어져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송나라 때 그려지는 추리도,여지도 등 고지도는
우공의 우하(황하고도)는 산동과 하북의 경계인 노황하구(갈석산진)로 나가며
창주는 황하고도 남쪽과 당시 황하 북쪽 사이에 그려집니다.(우하(황하고도)는 황하와 다름)

그럼 누가 창주를 북쪽으로 옮겼으며 노황하구 아래에 있는 창주의 연혁을 북쪽으로 수정하였을까?

그래서 오늘날 천진시로 이어지는 고대강역을 남쪽으로 내려 분석해보니 상기 댓글의 위치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부분은 고증이 되어 있으며 황하가 하남성에서 어떻게 조작되었는지 이해했기에 더 자세한 상황은 공개불가하여 여기서 줄입니다.
영종햇살 24-05-15 17:02
   
구르뫼님 수경주는 보셨는지요?
제가 생각하는 중국 지도나 역사책은 대부분 조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수양산은 현재 하북성에 위치한 것으로 나오지만 ,
대청광여도에서는 산서성 서남쪽 끝머리에 표시됩니다.

청나라 때는 이미 그전의 역사책이나 지도들이 조작된 상태라
그런 지도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조작할 수는 없죠.
현재 바이두 백과 사전에서 '수양산'을 찾아보면
감숙성 정서시 위원현으로 나옵니다.
위원현은 위하가 발원하는 곳이지요.
https://baike.baidu.com/item/%E9%A6%96%E9%98%B3%E5%B1%B1/10443483?fr=ge_ala
영종햇살 24-05-15 17:06
   
https://baike.baidu.com/item/%E9%A6%96%E9%98%B3%E5%B1%B1/10443483?fr=ge_ala

首阳山位于渭源县东南34公里的莲峰镇张家滩村和古迹坪村交汇处,海拔在2186-2509米之间,因其列群山之首,阳光先照而得名,素以奇秀著称,是古丝绸南路上的一颗瑰丽明珠。商末周初孤竹国君二子伯夷、叔齐长眠于莲峰首阳山。

간체를 번체로 바꿨습니다.
甘肅首陽山_百度搜尋 (baidu.com)
首陽山位於渭源縣東南34公里的蓮峰鎮張家灘村和古蹟坪村交匯處,海拔在2186-2509米之間,因其列群山之首,陽光先照而得名,素 以奇秀著稱,是古絲綢南路上的一顆瑰麗明珠。 商末周初孤竹國君二子伯夷、叔齊長眠於蓮峰首陽山。

번역이 약간 미흡할 수있으나 번역해 보았습니다.
"首阳山은 위원현 동남쪽 34킬로미터 떨어진 연봉진 장가탄촌과 평촌 교차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2186미터에서 2509미터 사이에 있습니다.

이 산은 주변의 여러 산들 중 가장 높아 햇빛이 가장 먼저 비치는 곳이라 하여 그 이름이 붙여졌으며, 그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합니다. 이곳은 옛날 비단길 남쪽 경로에 위치한 화려한 보석과도 같은 곳입니다.

상나라 말기 주나라 초기에 고죽국의 두 왕자인 백이와 숙제가 연봉 수양산에서 영면했습니다."
     
영종햇살 24-05-15 17:30
   
수양산 구글 지도입니다.
전체를 복사하여 붙이시기 바랍니다.
https://www.google.co.kr/maps/place/Shouyang+Mountain/@35.8551498,98.3827856,5z/data=!4m6!3m5!1s0x365981a98c224d45:0x2279101c62cd723b!8m2!3d35.0208399!4d104.24138!16s%2Fg%2F11pqwl4_q3?entry=ttu
영종햇살 24-05-15 17:27
   
수경주 얘기를 하려다가 수양산 얘기부터 했네요.

수경주에 보면 '고하'라는 강이 나옵니다.
이 강은 위치 비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하가 산서성에 있는 강이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도에서 꼭 집어서 어떤 강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고하가 중요한 것은 이 강이 어양군을 흐르는 강입니다.
또 상곡에서 발원하는 온여수(습여수의 오기)가 고하로 흘러들기 때문입니다.

고하의 위치가 밝혀지면 상곡과 어양의 위치가 밝혀지고 고구려 모본왕 때(AD48년)
고구려가 태원 상곡 어양 우북평을 침략했을 때 이들이 태원 근처에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질 것입니다.
영종햇살 24-05-15 17:38
   
1.산서지집요(山西志輯要: 靑,1780)에는 고수(고하)는 소산(少山)의 고령(沽嶺)에서 나와서
낙평현(樂平) 북쪽을 지난다고 했다.

또 소산(少山)은 일명 고산(沽山)이라 했고, 청장수(淸漳水)가 고산에서 나온다고 했다.
즉 고하, 낙평 모두 산서성 지역에 있다.

 2.수경주에서 고하는 어이진 서북쪽 90리 떨어진 단화령 아래에서 나와서, 동남쪽으로 흐르는데
대곡수가 고하로 흘러든다.
이 강이 흐르면서 습여수와 포구수등과 합쳐져서 로하가 된다.

이 강의 위치만 파악하면 습여수와 포구수의 위치도 파악할 수있다.
또 고수는 동남 또는 남으로 흐르는 강이다. 즉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강이기 때문에 동서로 흐르는 강은
고하가 아니다.

고수는 맨 마지막에는 동남으로 흘러서 청하와 만난다.
영종햇살 24-05-15 17:41
   
고수는 맨 마지막에는 동남으로 흘러서 청하와 만난다.

 〈沽河又東南逕泉州縣故城東,王莽之泉調也。
沽水又東南合清河,今無水。清、淇、漳、洹、滱、易、淶、濡、沽、滹沱,同歸于海。故《經》曰派河尾也。〉

고수는 동남으로 흘러 천주현 옛성 동쪽을 지나는데  왕망의 천주이다.
(천주현은 어양군 천주현이다)
고수는 동남으로 흘러 청하와 합해지는데 지금은 물이 없다.

 청하, 기수,장수, 원수,구수, 역수,래수,유수,고하,호타하는 모두 모여서 바다로 들어간다.
고로 하천의 갈라진 꼬리라고 했다.
영종햇살 24-05-15 17:44
   
"청하, 기수,장수, 원수,구수, 역수,래수,유수,고하,호타하는 모두 모여서 바다로 들어간다.
고로 하천의 갈라진 꼬리라고 했다."

청하,기수,장수,유수,고하등이 모두 모여서 바다로 들어간다고 했으므로
'난하'가 '유수'가 될 수없습니다. 난하는 홀로 흐르는 강이니까요.
영종햇살 24-05-15 17:53
   
두서 없이 적어봤습니다.

요점은 믿을 수있는 지도나 역사서는 찾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나마 조작할 수없는 강줄기를 찾으면 이 강이 흘러가는 곳의 지명은 수경주에 있으니
이를 바탕으로 지명을 비정할 수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구르뫼 24-05-15 19:21
   
저 역시 많은 문헌이 조작됨을 알고 있으며 조사도 해보았지요...^^
상기 제시한 글은 예전에 다 읽어 보았지요.
고지도 역시 조작된 걸 보았으며 이를 반영하여
사서의 지리지, 경전 등 다양한 문헌과 산과 강의 지형지세 등 지리서를 활용하여 고증을 시도합니다.
특히 황하고도를 명확히 이해하시고 하남성의 물줄기를 반드시 지리지를 통해 확인하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지도를 섭렵하여야 했기에 저는 거의 모든 고지도는 고해상도본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영종햇살님의 호기심 많은 접근방법은 훗날 많은 것을 찾으리라 보이며 건승하십시요.

그럼 대고하는 오늘날 천진으로 합쳐지는 강물이라 합니다.
그러나 일본 역사학자는 일제시대 노황하구(갈석산진)로 나가는 곳을 비정하였으며 일본지도는 그곳을 대고하로 그렸습니다.
이를 역추적하여 명나라가 없애버린 지금의 형수시와 獻州의 황하고도와 합류하는  물결을 복원하면
沽河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영종햇살님도 언급한 수경주가 조작되어 있기에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양산은 여러 개가 있으며 모두 찾아 기록해두었지만
저는  莊子( BC369년?-BC 286)의 견해를 따라 首陽山在岐山西北를 조사해 보았고 실제 수양산이 존재하였습니다.
백이숙제는 고국으로 안갔다는 견해이며 고국으로 갔다면 고사리를 먹는 놀림도 안당했으며
주무왕을 만나고 주나라에 머물렸기에 고사리를 비꼬는 놀림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명을 이동한 자들이 夷齊廟를 산서 포판에 그리게 나두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함입니다.
롱서의 수양산 역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기산이라 여져지는 곳에서 그 쪽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다양한 접근을 통해 자료를 조사하였고
1년정도  틈틈히 제가 앞으로 편하게 고증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정리하였습니다.
천천히 사서와 경전을 읽으면 뭔가 알게 되겠죠...^^

그리고  저는 상고사의 전쟁지역이 관중지역이라 여깁니다.
墨子 (BC 480년(추정) ~BC 390년(추정))의 말을 정리한 墨子閒詁의 주석에
亳은 京兆杜陵亭이니 見說文이라 別有亳王號湯하니 在今陝西三原縣하니 地各不同
(박은 경조 두릉정이니 설문에서 보았다.
별도로 박왕으로 탕왕을 호칭한 것이니 지금 섬서 삼원현에 있고 지명이 같지 않다.)
상(은)나라의 수도 亳이 하남성 쪽이 아니라 장안이라 여기며
이 주변지역의 피라미드 20여기를 중국이 공개안하는 이유가
이곳이 상나라 강토이며 사기에서 말하는 昔三代之君皆在河洛之間이라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마천 사기에 이르길 옛날 하상주 삼대의 모든 왕이 하수와 락수 사이에 있다.)
영종햇살 24-05-15 20:58
   
구르뫼님은. 어양,상곡,우북평의 위치가
어디라 생각하시는지요?
     
구르뫼 24-05-15 23:12
   
전에 원일통지와 대원일통지를 놓고 조사하다
무슨 일인지 지명들이 다양하게 분산되어 있어 혼란이 있었습니다.
원나라 대도는 보정시보다 서남쪽인 듯한 느낌이라 잠시 보류한 상태입니다.
어제 여지도를 다시 받았으니 사진촬영 잘해 검토해 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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