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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2-18 23:06
[기타] 고구려의 華夷觀 : 광개토왕비문과 중원 고려비를 중심으로
 글쓴이 : 두부국
조회 : 3,699  



목 차


Ⅰ. 序論

Ⅱ. 중국의 화이(華夷) 사상

Ⅲ. 고구려의 천하관과 화이(華夷) 사상

…ⅰ. 고구려의 천하관과 중화 사상

…ⅱ.「광개토왕비문」에 나타난 고구려 중화, 화이사상

…ⅲ.「중원 고려비」에 보이는 東夷와 고구려 화이사상

Ⅳ. 결

Ⅴ. 참고자료


Ⅰ. 序論

고구려는 자신들을 천하의 중심으로 규정하는 천하관으로 주변의 열국들을 복속시키며 자신들만의 소세계(小世界) 를 구축하였다. 물론, 고구려가 중국의 중화 세계에 참여하여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한 건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형식적인 외교 관례였으며 조선과 같은 '제후국' 과 동일선상에 놓고 보면 안 되며, 책봉은 고구려의 독자적인 세력을 인정받는 도구였다.1


고구려의 후기 국호인 고려(高麗) 만 봐도 중화(中華) 와 같은 뜻으로, 고구려의 천하관과 연결된다. 그런데, 필자는「중원 고려비」와 권오엽 교수의『廣土王碑開文의 世界』를 읽던 중, 고구려는 신라를 '동이' 라고 규정함으로서, 고구려만의 화이 사상을 구축했음을 알게 되었다. 고구려의 화이 사상은 어떠했을까?


Ⅱ. 중국의 화이(華夷) 사상


중국은 중화사상에서 알 수 있듯, 자신들의 천하의 중심으로 규정하고 주변국들을 동이(東夷), 남만(南蠻) 등으로 규정하여 '화'는 중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문화 민족임을 뜻하며, '이'는 문화 수준이 낮은 주변의 여러 민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중국인의 민족적 자존을 나타낸 사상이다. 춘추 시대 이민족의 침입이 심해 그들을 한()민족 공동의 적으로 삼고, 중화의 문물, 제도를 지키기 위하여 양이()를 부르짖었다. 아울러 당대에는 한유가 이단 배척 사상과 결합하였다. 송나라 때에 금나라와 대립하면서 중국의 민족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중화 의식이 높아졌고, 금나라 때문에 남쪽으로 쫓겨간 남송 때의 주희는 자신의 사상 체계에 화이 사상을 철저하게 반영하였다.2


이는 중국인들의 천하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으며, 중국의 천자가 세상의 모든 이민족들을 교화시켜 세상을 유지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주변 이민족들을 '동이', '남만', '북적' 등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런 중화 사상에 따라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주름잡았으며, 조공과 책봉을 받음으로서 주변국들의 존재를 인정하기도 하였다.


Ⅲ. 고구려의 천하관과 화이(華夷) 사상


고구려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음으로서, 중국의 국제 질서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는 독자적 천하관을 구축하고 이런 천하관을 바탕으로 주위의 열국들을 복속시킴으로서, 자신들만의 소세계를 구축하였다. 고구려의 화이 사상이 탄생하게 된 이유는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의 화이 사상은, 중국의 중화사상에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중국의 천하에 참여한 경험을 통하여 흭득한 질서개념이었다.3


…ⅱ.「광개토왕비문」에 나타난 고구려 중화, 화이사상


광개토왕비문에 보면, 모든 주변국을 고구려의 속민으로 기록하고 있다.


 백잔(百殘) 과 신라(新羅) 는 우리의 속민으로 조공해왔다.4


20년(永樂 二十年/410), 동부여는 추모왕의 속민이었으나, 중간에 배반하여 조공하지 않았다. 왕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토벌에 나섰다.5


​위의 구절들을 통해 고구려는 주변국들을 '속민' 으로 규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지 허구로만 보아야 하는 것일까. 권오엽 교수는 자신의 저서『廣開土王碑文의 世界』에서 이는 단순한 허구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고구려를 천하의 중심에 위치시키기 위한 방법이라 보았다. 즉, 고구려 이외의 나라들을 주변국으로 위치시키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광개토왕릉비문에 기록된 바를 보면, 조공이라는 것이 있다.


 

 백잔(百殘) 과 신라(新羅) 는 우리의 속민으로 조공해왔다.6


 8년(永樂 八年/398), 무술년에 일부 군대를 백신(숙신)의 토곡에 보내 순찰하도록 했다. 그 결과 막사라성, 가태라곡의 남녀 3백여 명을 잡아왔으며, 이로부터 조공하고 정사를 보고하였다.7


 20년(永樂 二十年/410), 동부여는 추모왕의 속민이었으나, 중간에 배반하여 조공하지 않았다. 왕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토벌에 나섰다.8


고구려의 천하관을 보면, 고구려를 중심국으로 설정하고 나머지 주변국들은 고구려의 천하에 속한 국가들로서, 고구려에 조공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였다. 하지만, 조공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정토당한다. 위에 인용한 광개토왕비 영락 20년 조의 동부여 정벌 기사가 대표적이다. 이는, 고구려에 조공하는 나라만을 고구려 천하의 구성에 참여하는 주변국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비문에 보면 고구려 천하는 고구려에 조공하는 백제9, 신라, 동부여, 숙신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왜는 천하를 구성하는 주변국에 속하지 않는다. 왜는 고구려에 조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영락 10년의 왜 교전에서도 확인된다. 신라는 고구려 천하에 속한 국가로서, 왜가 신라를 침입한다는 것은 고구려 천하를 어지럽히던 행위였던 것이다. 고구려 천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왜를 격퇴해야 했던 것이다.


본래, 조공이란 화이사상의 실현이었다. 즉, 고구려의 화이사상은 고구려를 중화로 설정하고, 주변국을 이적(夷狄) 으로 구분하였다. 고구려를 중화로 설정한 것은, 고구려의 高麗국호 제정에서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비문에서 중화의 자리에 위차한 고구려는 주변국들을 고구려의 은덕으로 왕화시켜, 이 나라들을 고구려 천하 속에 포섭시키려 한다. 이것이 고구려의 화이사상인 것이다.


즉, 고구려 천하에 포섭된 주변국은 조공을 기본 조건으로 하여 그 조건을 충족시키는 주변국과 고구려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조공과 무관한 왜국이나 가야 등은 주변국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이를 고구려 천하관과 연결시켜 보자면, 고구려를 천하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나머지 주변국들은 '이' 로 인식하여 복속하여 고구려 천하에 포섭시켰다. 이 주변국들은 조공을 기본 조건으로 하였다. 이러한 것이 고구려 천하의 구성이자, 고구려의 화이 사상이다.


…ⅲ.「중원 고려비」에 보이는 東夷와 고구려 화이사상


「중원 고(구)려비」에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있다.


 동이(東夷) 매금(寐錦)이 늦게 돌아와 매금(寐錦) 토내(土內)의 제중인(諸衆人)에게 절교사를 내렸다. (태자 공이) 고구려 국토 내의 대위(大位) 제위(諸位) 상하에게 의복과 수교(受敎)를 궤영에게 내렸다.10


 12월 23일 갑인동이(東夷) 매금(寐錦)의 상하가 우벌성(于伐城)에 와서 교(敎)를 내렸다.11


동이 매금(東夷 寐錦) 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인다. 그렇다면, 비문에서 말하는 동이란 무슨 나라이며, 동이 매금은 무엇을 뜻하는가? 비문 첫머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5월에 고려 태왕의 상왕은 신라의 매금(이사금) 과 세세토록 형제로 지내며 상국과 하국이 서로 화합해 천하를 수호하기를 원하여 동쪽 땅에 왔다.12


위 구절에는 '신라 매금' 이라고 하여 동이 매금이 곧 신라 매금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신라 매금' 이라는 칭호는 중원 고려비에만 보이는 것이 아닌, 광개토왕릉비문에도 보인다.


지금껏에 신라매금이 친히 와서 조공논사하지 않더니, 광개토경호태왕에 이르러 신라 매금은 명령을 청하고 조공하였다.13


이를 통해 동이 매금 = 신라 매금임을 확실히 할 수 있다. 즉, 고구려 입장에서 동이란 신라였던 것이다. 동이(東夷) 란 중국이 그들의 동방에 있는 이민족을 일컫던 칭호로, 그렇게 사용되는 동이는 단순히 중국의 동쪽에 존재하는 이민족(오랑캐) 의 의미 뿐 아니라, 아직 문명화되지 않은 민족이라고 천시하는 의미까지도 포함된다. 즉, 문명화되지 않은 민족으로서의 동이이기 때문에, 문명화된 중국의 왕은을 입어서 왕화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에서는 중국의 천하관에 복속되어야 한다는 복속의 당위성까지 포함하고 있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 사고를 바탕으로 주변국에 군림하려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고구려도 중국 입장에서 동이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14


그런데, 이런 표현을 신라에게 사용했다는 것은, 고구려도 자신의 주변국에 해당하는 신라의 종주국을 자임하고 신라에 대해서 군림하려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고구려의 화이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를 중심국으로 설정하고, 신라를 동이(東夷) 로 일컫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화이 사상은 중국의 중화 사상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즉, 이는 광개토왕비문에서 확인되었던 고구려 화이사상을 한번 더 확인시켜 준다. 고구려 천하에 포섭된 신라를 동이로 규정하였다는 사실은, 곧 신라 이외의 주변국들도 남만(南蠻), 북적(北狄), 서융(西戎) 등으로 규정하였음을 추측케 한다.


중국의 중화 사상에서 유래한 화이 사상인 만큼, 중국과 유사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조공을 기본 조건으로 하는 것과, 주변국들을 동이(東夷), 북적(北狄), 남만(南蠻), 서융(西戎) 등으로 규정하는 것, 조공하지 않는 주변국들은 정토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15


이러한 사실들은, 고구려의 천하관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아래는「광개토왕릉비문」의 기록이다.

 '옛날 시조 추모왕께서 창업하신 터다. 왕은 북부여에서 오셨으며 천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셨는데, 태어나면서부터 성스런 덕이 있었다. 길을 떠나 남으로 수레를 타시고 내려오시는 도중에 부여의 엄리대수를 거쳐 가게 되셨다. 왕이 물가에 임해 말씀하시기를 "나는 황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신 추모왕이다. 나를 위해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은 떠올라라"하셨다. 이 말씀에 감응해서 곧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이 떠올랐다. 그런 연후에 강물을 건너가셔서 비류곡 홀본 서쪽 산 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우셨다. 그러나 추모왕은 세상 왕의 지위를 즐기지 않아 하늘에서 황룡을 내려보내 왕을 맞게 하니, 추모왕은 홀본 동쪽에서 용의 머리를 밟고 승천하셨다'16


​여러 번 인용한 기록이지만, 국가의 시조를 천제의 아들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추모왕은 스스로 자신을 황천의 아들이라고 자처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들을 하늘(天) 과 연결시키며, 천하의 중심을 자처한 것이다.


 

 그래서 주몽은 오이(), 마리(), 협보() 등 세 사람과 벗이 되어 엄시수()[개사수()라고도 한다. 지금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강을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어 그들은 따라오는 병사들에게 잡힐까 두려워하였다.

주몽이 강을 향해 말하였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가는데 뒤쫓는 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해야 하는가?”
이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주어 주몽은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져버려서 뒤쫓던 기병들은 건널 수 없었다.

주몽은 모둔곡()에 이르러[『위서()』에는 ‘보술수()에 이르렀다.’고 이른다.] 세 사람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삼베옷을 입었고, 한 사람은 중옷을 입었으며, 한 사람은 마름옷을 입고 있었다.17


이는『삼국사기』의 기록인데, 광개토왕비의 기록과 유사하지만 다르다. 이 사료에서도 마찬가지로, 주몽이 자신을 천제의 아들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고구려인의 천하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주몽이 자신을 천제의 아들로 자처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백의 손자이며 일월의 아들이신 추모성왕은 북부여에서 오셨으니, 천하 사방은 이 나라 이 고을이 가장 성스러운 곳임을 알 수 있다.'18


'천하 사방은 이 나라 이 고을이 가장 성스러운 곳임을 알 수 있다' 는 구절은 당시의 고구려인이 천하의 중심을 자처하였음을 의미한다. 고구려인들은 이런 사상에 따라 고구려를 중심으로 열국들을 고구려에 복속시켰다. 그리고 그 열국들은 조공을 기본 조건으로 하여 고구려 천하에 포섭되었다.


고구려의 화이 사상은 권오엽 교수가 말했듯, 고구려가 중국의 천하에 참여하면서 이를 통해 흭득한 경험을 고구려 천하에 적용했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의 高麗 국호 제정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이는 中華를 자처한 표현이다. 충분히 고구려의 천하관과 연결시킬 수 있다. 화이 사상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중화를 자처한 고구려인의 천하관을 볼 때, 이는 중국의 천하 질서에 참여함으로서 얻은 경험과 고구려의 독자적인 천하관이 결합된 사상임을 알 수 있다.


①. 고구려는 高麗 국호를 사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자신들을 중화라 자처하였다. 이 高麗 국호는, 고구려의 천하관과 연결지어 볼 때, 고구려의 천하관을 내포하고 있는 국호이다.


②. 이는 고구려의 화이 사상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로 작용을 한다. 스스로 중화라 자처함으로서, 자신들만의 소세계를 구축하며 열국들을 복속시켰고, 이 열국들은 조공을 기본 조건으로 하였다.


③. 이 화이 사상은, 고구려가 중국의 천하에 참여한 데서 얻은 경험과, 고구려인들의 독자적인 천하관이 결합된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Ⅳ. 결


필자는 고구려의 화이 사상을 검토해보았다. 권오엽 교수의『광개토왕비문의 세계』를 주로 참고하여, 고구려인들이 기록한 광개토왕릉비문과 중원 고려비를 중심으로 검토해 보았다. 고구려 화이사상은 중국의 중화 사상과 유사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으며, 이는 곧 고구려가 중국의 천하에 참여하면서 얻은 경험을 고구려 천하에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고구려인들의 독자적인 천하관까지 합쳐 친 사상이 바로 고구려의 화이 사상인 것이다.


고구려를 중화라 규정하고, 이 사상을 통해 주변국들을 동이, 남만, 서융 등으로 불렀음을 추측케 하며 이 사상에 따라 주변국들을 복속하여 고구려 천하에 포섭시켰다. 이러한 화이 사상을 바탕으로 고구려는 자신들만의 천하관을 구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Ⅴ. 참고자료


사료


김부식 외 10여명 저, 네이버 변역,『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금석문


「광개토왕릉비」

「중원 고(구)려비」

「모두루 묘지명」


저서


권오엽,『廣開土王碑文의 世界』, 제이앤씨, 2007.


논문


김종완,「고구려의 조공과 책봉의 성격」, 2004.

이기백,「中原高句麗碑의 몇 가지 문제」,『사학지』13, 1979




  1. 김종완,「고구려의 조공과 책봉의 성격」, 2004.
  2.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42168&cid=47323&categoryId=47323
  3. 권오엽,『廣開土王碑文의 世界』, p. 389.
  4. 원문 : 百殘, 新羅, 舊是屬民, 由來朝貢.
  5. 원문 : 二十年 庚戌, 東夫餘舊是鄒牟王屬民, 中叛不貢. 王躬率往討.
  6. 각주 4와 같음.
  7. 원문 : 八年 戊戌, 敎遣偏師, 觀帛愼土谷, 因便抄莫斯羅城, 加太羅谷, 男女三百餘人. 自此以來, 朝貢論事.
  8. 각주 5와 같음.
  9. 비문에는 백잔(百殘) 으로 기록하고 있다.
  10. 원문 : 東[夷]寐錦遝還來節敎賜寐錦土內諸衆人▨▨▨▨[王]國土
    大位諸位上下衣服[束(來)]受敎跪營之
  11. 원문 : 十二月卄三[日]甲寅東夷寐錦上下至于伐城敎
  12. 원문 : 五月中高麗太王祖王令▨新羅寐錦世世爲願如兄如弟 上下相和守天東來之
  13. 원문 : 昔新羅寐錦未有身來論事, □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寐錦□家僕句. 請□□□朝貢.
  14. 이기백,「中原高句麗碑의 몇 가지 문제」,『사학지』13, 1979.
  15. 중국의 중화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동이란 표현이 있는 것을 보아 이런 표현들도 썼을 것이라 추측된다.
  16. 원문 :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郞. 剖卵降世, 生而有聖德□□□□ □命駕. 巡幸南下, 路由夫餘奄利大水. 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 爲我連葭浮龜." 應聲卽爲連葭浮龜. 然後造渡, 于沸流谷忽本西, 城山上而建都焉. 不樂世位, 因遣黃龍來下迎王. 王于忽本東岡, 履龍首昇天
  17. 『삼국사기』고구려 본기 시조 동명성왕 조. 원문 : 朱蒙乃與烏伊 摩離 陜父等三人爲友 行至淹淲水[一名盖斯水 在今鴨綠東北] 欲渡無梁 恐爲追兵所迫 告水曰 我是天帝子 河伯外孫 今日逃走 追者垂及如何 於是 魚鼈浮出成橋 朱蒙得渡 魚鼈乃解 追騎不得渡 朱蒙行至毛屯谷[魏書云 至普述水] 遇三人 其一人着麻衣 一人着衲衣 一人着水藻衣

「모두루묘지」. 원문 : 河伯之孫日月之子鄒牟聖王元出北夫餘 天下四方知此國郡最聖□□□


http://blog.naver.com/chch8897/220631338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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