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월 전부터 굳이 두음법칙을 무시하고 글을 써서 잡음을 일으켜(?)왔는데 본인이 두음법칙을 쓰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1. 역사 지명을 살리지 못한다.
고구려 서부 경계의 핵심 지명이 요수였는데 더 오래전에는 열수라 했다. 열과 요가 통하여 그리 되었는데 두 글자 遼(멀 료)와 列(벌일 렬)의 공통점은 실제론 ㄹ발음이라는 점이다. 즉, 고대, 중세에 고구려 서부의 그 강을 우리는 료수, 렬수가 불러왔다. 그런데 그것을 이제와서 제멋대로 바꿔 ㅇ으로 발음한다는 것은 꽤 황당한 일이다.
2. 외래 용어와 외국 명사를 왜곡한다.
불교 용어인 열반(涅槃)은 범어 니르반을 음차한 단어인데 첫 자음인 ㄴ이 어째서 ㅇ이 되었냐 하면 그것 또한 두음법칙 때문이다. 涅(흙 녈)은 원래는 녈로 읽고 따라서 녈반이라 하면 니르반이란 단어를 음차했다는 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데 이것을 ㅇ으로 바꾸어버려 원형을 없애는 비상식적인 상황은 우리나라 외에 없을 것이다.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한 비엣남의 레 왕조의 경우에는 왕조의 명인 레가 건국자의 성씨에서 유래했는데 한자로 쓰면 黎이다. 그런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비엣남어로 레러이(黎利), 레응우옌롱(黎元龍)의 한자 발음을 우리 방식으로 읽으면 여리, 여원룡이 되어 첫 음절의 ㄹ이 ㅇ으로 바뀐다. 이 역시 외국어의 실제 발음을 무시하는 행태이다.
3. 된발음을 양산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본인이 두음법칙을 쓰고 안쓰기를 번갈아 해본 결과 두음법칙을 쓸 때 된발음이 더 자주 발음됨을 깨달았다. 역사(歷史)를 '력사'라고 발음하면 사실 발음하기가 '역사'보다 어려워 저절로 발음이 늘어져서 '력사'와 '리역사'의 중간 즈음으로 발음되는데 이렇게 되면 도리어 여유가 생겨 된발음이 생길 필요가 없이 부드럽게 발음된다. 그러나 역사라고 하면 역과 사 사이에 여유가 없어 급하게 발음하게 되어 사가 '싸'에 가깝게 발음된다.
다만 이것은 본인의 주관적 견해이므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이유 등도 있지만 핵심은 우리말을 얼마나 보전하느냐이다. 두음법칙이 발음을 편하게 해주고 실제로 언어는 편한 방향으로 변화하는게 사실이지만 원형을 무시하고 바꿔가며 편리성을 추구함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러므로 조상을 위해, 후손을 위해 두음법칙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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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음법칙 없이 댓글을 쓰다 보니 비아냥대는 분, 의문을 표하는 분, 걱정해주는 분이 있어서 이 참에 제 생각을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