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굿잡스님과 시각차이를 확인했읍니다...보는 관점이 다 다르죠
원래 왜 한일은 엇비슷한 시기에 하나는 근대화를 성공시키고 ..우린 피해자가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것인데 ...식민사관이랑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제가 누구 주장이나 자료전체를 그냥 인용하는 스타일도 아니구요.....
조선 일본이 각자 서양문물을 보는 관점이나 받아들이는 태도에 의해서 격차가
점점 벌어진게 된걸로 봅니다...
청나라도 마찬가지로 오랜 중화사상으로 서양오랑캐로 무시햇는데 ..
서양을 능가할수가 없었던 것이고 역시 위기의식이나 다른대책도 없었음..
청은 서양을 알려고 하지 않았고...조선은 서양자체에 무지하였고
일본은 사찰단을 유럽에 보내서 영혼까지 복제하고 온거죠.
그래서...한일이 다 동양의 외진곳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고 치고...
일본은 1854년 처음 미국의 페리제독의 개항요구를 받고 그이후 ...
국가위기감을 느껴 서양을 모방하여 서양을 추월하자는 모토로 개화파가 집권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로
되어 명치유신을 일으키고 ...1871-1873년 50인이 세계문명사찰후 프랑스 독일 영국등에서 근대화재료
를 가져와서 1876년 조선을 강제개항 시킬때까지 ..대략 20여년간 근대화 초석을 마련했고...
이미 조선은 1880년대 후반 청이라던가 외세에 점령당한 상태에서 위 아래에서 개혁이나 봉기가
아무런 탄력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당연히 1897년 선포된 대한제국이후도 그렇구요...이미 늦었음.
그래서 조선은 1866제네랄 셔먼호의 통상요구가 있던때부터 대략 ....1890년까지
대략 24년간이 근대화 가능시기로 봅니다....개인마다 다르지만 저는 이렇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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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일본 1856----------1876년간 22년정도...위기인식후 근대화 모토정립및 초석확립시기
조선 1866----------1890년간 24년 사이...미국 일본의 통상요구이후에도 별다른 변화없음.
덧붙이자면 우리나라 근대화는 ....
1960년초부터 박통에 의한 새마을 운동 잘살아보세 반공방첩 조국근대화등의 모토를 내걸고
추진되었고...이 탄력으로 90년 초까지 피치를 올리다가
전쟁후 53년경 세계5대빈국에서 94년경 세계12위 무역국까지...
다소 주춤하다가 다시 신한국건설외치면서 지금까지 왓죠..
그 과정에서 연이은 독재와 친일청산등이 안되어 결국 여러가지 문제점을 일으킵니다.
둘다 관치위주의 근대화라는 비슷한 공통점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