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 우리 보다 쌀생산량이 많았다 또는 쌀생산량이 높은 이유로 기후 등의 얘기를 하던데...다른 측면에서 볼 필요도 있을 듯
1. 우리가 먹는 쌀을 자포니카라고 하는 것은 왜가 우리 나라보다 좀더 일찍 그리고 더 잘 알려졌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입니다. 롱그레인의 인디카와 숏그레인인 자포니카 명칭과 수확량 및 원산지랑은 상관이 없습니다. 자포니카를 먹는 곳은 우리랑 왜, 그리고 만주지역 뿐입니다.
2. 쌀 생산량은 기후의 영향도 있지만 파종법에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왜가 우리 보다 이양법을 조금 먼저 도입하여 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이 높았던 적도 있지만...왜의 경우 절대 농지가 부족해서 수확량은 우리 나라에 못 미쳤습니다.
3. 우리 나라는 여말선초 때 이양법이 확산되기 시작하지만 본격적인 이양법 도입은 왜보다 쪼금 늦었습니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 탓도 있습니다. 왜와 달리 모내기 하는 싯점에 추위가 찾아오는 온대기후였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이양법에 따른 모내기 리스크가 커서 좀 늦게 확산되었는데 이양법을 몰라서 확산이 늦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이양법과 직파법에 의한 수확량 차이는 기후 차이에 의한 수확량 보다도 더 크지요.
4. 왜가 우리 보다 쌀 생산량이 떨어지는 이유는 일본지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혼슈우 지방에 논농사 지울 땅이 별로 없습니다. 왜의 고속철(신깐센) 같은 것 타고 가다 보면 알 수 있지요...그냥 바다 옆에 약간의 농지가 있고 그냥 다 산입니다. 왜의 땅이 우리보다 넓어도 농지가 넓지는 않지습니다.
그리고 왜의 도시들은 평지에 있는데, 우리 나라 같으면 농사지을 땅에 도시를 만들어서 야들의 절대농지는 우리보다 많이 부족합니다. 간토지방(동경)은 임란 전까지만 해도 농사를 짓지 못하는 습지였고, 이에야스가 하바마쓰에서 영지교환으로 간토지역에 가면서 개간이 이루어지면 에도시대 들어 논농사 지을 땅이 늘어났던 것입니다.
5. 왜가 우리보다 쬐끔 먼저 이양법을 도입하여 단위당 생산량을 높이는 장점이 있었던 반면 왜는 농기구가 목제였습니다. 반면 우리는 쇠이고요...왜의 경우 무기 외에는 철을 별로 사용하지 않고 다 목기인데...목제 농기구로 논갈이 하다보니 한계가 있었다는 설도 있습니다만(이건 근거를 확인 못해서^^)
6. 왜의 인구수와 우리의 인구수를 기준으로 소비량을 기반으로 생산량을 추정하여 비교하기도 하는데...여기에는 식사량을 고려하지 않은 추정이라는 점에서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경우 왜인보다 쌀 소비량이 세 배 이상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쌀 소비량은 현재 한국인의 쌀 소비량의 두 세배가 넘습니다. 제 경우 어렸을 때 밥공기가 확산되었는데...그 전의 밥 그릇은 현재 공기그릇의 세 배 이상됩니다. 왜인들이 키가 작은 이유는 한마디로 못 먹어서 유전이 된 이유도 있지요. 그런 점에서 쌀 소비량에 많은 인구수를 곱하여 왜의 쌀 수확량을 계산하는 것은 틀릴 수 밖에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왜가 우리 보다 쌀생산량이 높았다는 것은 낭설입니다. 최소한 간토지방이 개간되기 전 즉, 임란 전에 우리보다 쌀 생산량은 높을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