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보면 무슨 고구려 관련 씹는 엉뚱한 내용부터
제대로된 지리나 당시 사료 하나 한번이라도 훑어 보고
고구려 인구나 농업에 대해 이야기 하는지??(광개토 태왕에 대한 자기식
소설도 그렇고 ㅋ)
실제 이관련 알맹이 내용은 없고 엉뚱한 썰만 푸는.(고구려를 무슨 서토의
수천만 단위 어쩌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현재도 엄연히 북한 지역만 해도
2400만에 만주 일대가 1억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대표적 곡창지대인 황해도나 평안도 ,요동반도, 만주평원이고
고구려 인구 500만명 부속 북방 인구 전체로 천만명 어쩌고가 현실 불가??
환타지??? 참나)
“두막루국은 물길 북쪽 천여리에 있다. 옛날의 북부여이다. 실위의 동쪽에
있고, 동쪽은 바다와 닿아있고, 사방 이천리이다. 그 사람들은 토착하며 살
고, 집에 거주하며 창고가 있다. 산과 능, 넓은 연못이 많고, 동이의 지역에
서 가장 평평하다. 땅은 오곡에 마땅하고, 오과는 나오지 않는다. 그 사람들
은 크고 성품이 강직하고 용맹하고, 경계할 줄 알고, 후하여, 노략질 하지 않
는다. 그 군장은 모두 여섯 가축의 이름으로 하고, 읍락에는 호걸과 장수가
있다. 읍식은 역시 조두를 사용한다. 삼과 베가 있고, 옷은 고려와 비슷하고
모자는 크다. 그 나라의 대인은 금과 은으로 장식한다. 형벌은 혹독하고 급
하여 살인자는 죽이고, 그 집안사람은 노비로 삼는다. 풍속이 음란하거나 투
기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여, 죽이고 시체를 나라의 남쪽 산 위에 놓고, 썩힌
다. 여자집에서 이를 얻을려면, 소나 말을 주어야 한다. 혹 말하길, 예맥의
땅이라 한다.”
-<위서>두막루조
두막루국은 5세기에서 8세기에 존재했던 국가임. 백제를 남부여 어쩌고 하
듯 윗글에 보면 북부여 어쩌고 하고 오곡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죠.
고구려는 천년 사직이라는 말처럼 상당힌 시간을 이어 온 나라이고 그동안
기후라는 것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합니다.(삼국시대 초기와 후기는 기온
이 상승함)
그리고 우리가 가진 고정 관점처럼 만주일대나 북방 영토가 마냥 춥고
모진 곳이기에 사람이 살기에 마냥 적합하지 않다는 식은 일종의 편견임.농
업 생산에 있어서도.
고구려 오회분 4,5 호묘에는 소머리를 한 농사의 신이 나오는데(그만큼 농
사를 중시함) 이미 고구려는 2,3세기경에 소를 이용한 농사법을 시행한 나
라이며 평양시 상원2호 무덤에서 출토된 길이 35 cm의 대형 쇠보습 등이 발
견되는 등 이미 4세기에 가면 전국적으로 발달한 농법력을 보인 나라임.
그외 광개토대왕은 395년 거란을 정복하면서 엄청난 양의 소와 말을 끌고
오는 등 농사뿐 아니라 수레등에도 소는 활발히 사용됩니다. 이런 농업 생산
력을 바탕으로 실제 645년 고당 전쟁시 요동성에도 50만 석의 군량이 있었
다고 하니 고구려의 농업 생산력이 결코 부족한 나라가 아니였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고구려의 대표적 곡창지대는 현재 북한의 최대 곡창지대인 황해도뿐 아니라
(이곳은 고구려의 대표적 중심 대도시인 3경중 한성이 있던 곳임), 평안도
외 요동 반도 일대와 만주평원이고 나름 나쁘지 않는 농토들임.
그외 고구려는 수레의 나라였을 만큼 각 지역 각 나라간에 유통이 활발했고
뿐만 아니라 해상무역과 해군도 강했던 나라임. 이를 통해 단순히 농업 생산
력에 거치지 않고 여러나라와 해상 육상으로 통해 대규모의 상업 거래도 활
발했던 나라였음.
이런 나라의 인구가 500만 어쩌고 하는걸 무슨 환타지 어쩌고 현실 불가능
어쩌고 주장만 한다면 만주일대 1억 5천만이나 북한 2400만은 무슨 환타지
소설임?? 에도시대까지도 농업이 캐후져 조선보다 쌀 수확량이 부족해도 인
구는 급증했던 왜국는 뭐이며 그 부족쌀을 조선에서 수입하는
무역거래를 했던 건 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