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얕게 역사를 배우는 사람이라 양해바랍니다
삼국사기의 주필산 전투를 보면 요동,백암,신성 등에서 고구려인 10만 명이 끌려갑니다
평양성 함락 이후에는 고구려인 20만 명이(아무래도 수도에 살았던 이들이니만큼 고구려의 상위계급이 대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 당으로 압송됩니다.
3차에 걸친 고당전쟁으로 수많은 고구려인이 적을때는 수천,많을때는 수만이 당으로 끌려갑니다. 끌려간일부 고구려인들은 다시 당의 서부지역으로 보내집니다.(보장왕은 당에 의해 중국의 서남부인 쓰촨성으로 이동함)
하지만 우리가 고구려를 한국사로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까닭은 삼국통일전쟁 이후 신라가 민족융화정책을 펼치며 적잖은 고구려인들이 유입되었고(고구려의 귀족은 6두품에 편입,신라의 9서당 중 3서당이 말갈인과 고구려인으로 구성,고구려인이 비교적 많았던 황해도와 평안도 일부를 신라가 점유한 점)
그 고구려인들이 현재 한민족의 조상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발해는 옛고구려 땅에서 일어났지만 전쟁의 여파로 민족의 구성은 소수 지배층만이 고구려인이었습니다. 물론 정신과 문화는 분명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주장했습니다.(정효공주 묘의 고구려 양식,일본과 당에 보낸 국서의 고려왕 표기등) 그러나 거란의 침입으로 발해가 무너진 이후 발해인들은 대부분이 거란에 편입되었고 (극소수의 왕족과 군사들의 고려로의 귀부가 있긴함) 이들은 여진,송,고려와의 전쟁에서 활용되기도 합니다. 거란의 3차칩입 때 소손녕이 이끌던 거란의 10만 군사중에서는 발해인으로만 구성된 (4000명의 편제,지휘관은 고청명) 부대가 있을 정도였죠.
제가 말하고 싶은 요지는 발해를 한국사로 주장하기에 앞서 현 한국인의 피에 발해인의 피가 흐르냐는 겁니다. 개인적인 물음일뿐 결코 한국사를 폄훼하려는 목적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