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10. 11월부터~ 1911. 12월 말까지 1년 2개월 동안 전국의 각 도ㆍ군ㆍ경찰서를 동원하여 향교, 서원, 구가(舊家) 등을 샅샅히 수색해 압수한 서적은 총 51종 20여만 권이라고, 광복 후 제헌국회사와 <문정창(文定昌)>의 군국일본 조선강점 36년사에서 밝히고 있다. 그 중에는 독립군 홍범도장군과 오동진장군의 자금으로 1911년에 발행한 환단고기 책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일제의 서적 약탈 기간은 1910년 11월부터 그들이 만든 ≪조선사≫의 완간 직전인 1937년까지 27년간 지속되었다.
일제가 우리의 역사를 왜곡ㆍ말살하기 위해 1938년 6월에 발행된 ≪조선사 편수회 사업 개요(朝鮮史編修會事業槪要)≫에서는 1923년부터 1937년까지 15년동안 압수, 강탈한 사료가 무려 4천 9백 50종이라고 밝히고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글들을 편집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삼성기(三聖紀)라는 책은 세조실록에도 그 책 이름이 나온다. 민간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는 얘기다.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의 첫번째 주장은 1911년에 나왔던 『환단고기』의 초간본이 없기 때문에 위서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일본이 환국을 뿌리 뽑아서 우리민족의 환국과 배달과 단군조선의 역사를 말살시켜버린 것을 보면 『환단고기』의 초간본을 그들이 분명히 본 것이다. 신해년 1911년은 일제에 의해 사서 수거령이 내려진 해였다.
일제는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및 만주 전역에 걸쳐 수집하였다. 일본의 사학자이면서 평론가인 하라타사카에루(原田榮)의 저서 ≪역사와 현대≫를 보면, "1923년 7월 조선총독부 조선사 편찬 위원회 구로이타(黑板) 고문이 대마도에 사료탐방을 하였을 때 한국과 관계가 있는 문서, 고기록 등이 다수 있음을 알고, 고문서류 6만 6천 469매, 고기록류 3천 576책, 고지도 34매 등을 은폐 또는 분서(焚書)했다"고 밝히고 있다.
『환단고기』의 저자 운초 계연수선생은 1911년에 만주 관전현에서 스승 해학 이기(李沂,1848~1909)의 문중에서 전해 오던 『태백일사』(8권으로 구성)와 다른 4권의 정통 사서를 한 권으로 묶어 간행하였는데, 1920년 만주 관전현, 압록강 부근의 조선인의 사설학교 배달의숙(倍達義塾)에 일본 헌병대가 들이닥친다.
이 학교는 독립운동가인 석주 이상룡 선생과 송암 오동진 장군이 출연, 설립한 뒤 일대 독립군 및 그 자녀들에게 조선의 역사와 정신을 가르쳐오던 터였다.
일본 헌병들은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계연수선생을 체포하고 계연수선생과 여러 교사들이 수집하고 연구한 책과 저술, 자료 등 3천여 점을 강탈해 헌병대로 실어갔다고 한다. “헌병대가 강탈한 온갖 자료들 가운데는 당연히 『환단고기』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일본 헌병들은 운초 계연수선생이 『환단고기』를 펴낸 바로 그 인물인 것을 알고는 온갖 고문을 가하고는 팔다리를 다 잘라서 압록강에 내다버렸다. 그렇게 토막토막 잘려진 선생의 시신을 동포들이 수습하던 장면을 직접 목격한 분이 그의 제자인 한암당 이유립 선생이다.
환단고기 책은 그당시 독립군과 자손들이 배우고 가르쳤던 책이다. 그런 책을 식민사학자들은 왜 증오하다 못해 오히려 저주하는 것일까?
『환단고기』 책은 한민족의 고유사서
안함로의『 삼성기三聖紀 上』,
원동중의『 삼성기三聖紀 下』,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檀君世紀』,
범장의『 북부여기北夫餘紀』,
일십당 이맥의『 태백일사太白逸史』이 다섯 종의 책을 한 권으로 묶은 사서史書이다.
신라, 백제 전후부터 내려오던 고귀한 우리의 역사 기록을 거반 망라해서 묶어 놓은 책이다. 신라 때부터 마지막 왕조 근세조선 때까지 당대의 최고 지성인 다섯 분이 천년에 걸쳐서 기록한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오던 한민족의 고유사서들 대부분은 전란이 빈번하여 사서들이 소실된 경우가 많았고 외적에게 탈취되어 사라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궁궐과 많은 절, 건물들이 불에 타면서 그곳에 있던 서적들도 소실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유학에 물든 조선 조정은 우리 고유 사서를 민간으로부터 수거하여 궁궐에 비장하였다가 전란이나 화재로 사라진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환단고기』에는 『신지비사神誌秘詞』, 『진역유기震域留記』, 『삼성밀기三聖密記』, 『조대기朝代記』, 『고기古記』, 『밀기密記』, 『대변경大辯經』, 『삼한비기三韓秘記』, 『삼한고기三韓古記』, 『해동고기海東古記』, 『고려팔관 잡기高麗八觀雜記』 등 현재 전해지지 않는 고유 사서의 이름이 나온다. 이렇게 한민족사의 참 모습을 확인시켜 줄 사서들이 거의 다 사라져버린 지금, 『환단고기』와 『단기고사檀奇古史』, 『규원사화揆園史話』, 『제왕연대력帝王年代歷』 등 몇 종의 책들이 겨우 전해지고 있다.
일제와 이땅의 식민사학자들이 더욱 가관인 것은 1922년 12월에 조선사 편찬위원회를 만들어서 1938년까지 16년 동안 『조선사』 35권 (made in Japan)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냈다.
일제가 한민족의 대륙사를 반도사로 왜곡하여, 한강 이북은 중국 한족(漢族)의 식민지, 한강 이남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한국의 강제 점령을 논리적으로 합리화시키려 했다.
≪조선사 편수회 사업 개요≫ 4∼7면을 보면, 한국 사서의 대량 분서(焚書)와 한국사의 왜곡 편찬 배경을 극명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
"새로운 사서(『조선사』)를 읽히는 것이 조선인에 대한 동화(同化)의 목적을 달성하는 첩경이며, 그 효과 또한 현저할 것이다.
이것이 조선 반도사 편찬이 필요한 이유요, 또한 편찬사업의 근본정신이다."
조선 총독부 3대, 4대, 5대 총독의 시달 교육시책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서, 민족정신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 조상들의 무능과 악행을 들춰내어 조선인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조선의 청소년들이 그 조상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로서 반드시 실망과 허무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 때에 일본 사적, 일본 인물, 일본 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