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발굴된 낙랑 유물. 우리 같은 대중들에게는 항상 조작 시비에 걸려 의문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낙랑 발굴 주체가 한국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인데다 낙랑 자체가 한국사람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식민지 문제와 굉장히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알려진 조작 문제가 일부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미 일제강점기 때부터 몇몇 유물들(특히 봉니)에 대해 조작문제가 제기되기도 했고, 그 중에는 실제 조작된 유물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의문이 마구마구 증폭되었지만, 우리 같은 일반 대중들은 이 의문이 잘 해소되지 않았으니 계속 조작 시비가 나올 만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글을 쓰는 저도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그런 조작 문제에 대해 잘은 모릅니다. 저 역시 그런 조작 시비가 있다는 것은 여기 계시는 분들이 다 잘 알고, 자주 인용하시는 SBS 스페셜을 보고 알았고, 여기 나온 내용 이상은 알지는 못합니다.
그걸 모른다는 놈이 어떻게 쓰냐? 라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그거 외에도 낙랑 유물은 많으니깐요.
여기서는 그런 유물들보다는 실제 눈으로 관찰된 유물들을 토대로 말을 해보고자 합니다.
어떤 분이 말씀하기로 우리가 낙랑 유적을 발굴할 수도 유물을 볼 수도 없는데, 그게 조작인 지 아닌 지 어떻게 아냐? 며 굉장히 회의적인 말씀을 하신 것을 보았는데, 안타깝지만 낙랑 유물은 실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우리가 굉장히 잘 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꽤 많은 낙랑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2001년 ‘낙랑’ 특별전을 개최를 준비하면서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낙랑 유물들을 검토하여 상당 부분 검증이 이루어진 바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낙랑 유물 컬러 사진들이 이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또 이 때 일제강점기 당시 발굴은 되었으나, 수장고에 유물만 보관되어 있고, 보고서로 발간되지 않은 ‘봉산 양동리 전실묘’와 ‘평양 정백리 8,13호분’에 대해 보고서로 발간한 바 있습니다.(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읽어보세요.)
최근에도 오영찬 교수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봉니 99건 197점을 전수조사하고 검토하여 진위여부를 검토한 바 있습니다(오영찬 2015). 이 결과 일부 조작이 의심되는 유물들이 있긴 하나, 대부분 진품이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한국 내에 소장되어 있는 낙랑 유물들은 대부분 검토되었고, 더욱이 이 유물들이 일제강점기 때 발굴된 유물들임을 고려하면 위의 유물들을 모두 조작임을 인정하여도 모든 유물들이 조작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한국에 있는 것만을 언급하면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반출된 낙랑 유물들은 일언반구도 없지 않느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 같습니다. 다행이게도 일본에 남아있는 낙랑 유물들도 많은 검토가 이루어졌습니다.
낙랑 발굴사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일제강점기 당시에 지금의 동경대학교의 전신인 동경제국대학의 교수들을 중심으로 평양에 있는 낙랑 발굴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동경대학교 유물 수장고에는 당시 보고서를 낸다는 명목으로 일본으로 반출한 상당한 양의 낙랑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유물들은 이미 1980년대에 조금 알려졌는데, 일본학자인 타니 도요노부(谷豊信) 교수에 의해서입니다. 그는 동경대학교 수장고에 보관된 낙랑토기를 중심으로 관찰·분석 후 이를 토대로 4편의 논문을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당시 연구가 거의 되지 않았던 낙랑 고고학 연구에 단비와 같은 발표였지만, 토기를 중심으로만 보고가 되었고, 이후에는 추가 분석이 없었기에 더 이상의 정보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1999년 다시 세상에 알려졌는데, 현재 영남대학교에 재직 중이신 정인성 교수님에 의해서입니다.
정인성 교수님은 1997년 경북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일본 동경대학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그는 1999년부터 동경대학교 수장고에 있는 유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발굴은 하였지만, 정리되지 못한 채 여기저기 뒤죽박죽 쌓이고 쳐박힌 낙랑유물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1여년간 이 유물들을 세척하고 꼼꼼히 정리합니다.
그리고 이 유물들을 그냥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발굴하고 남긴 야장(야장이란 발굴현장에서 그날그날 한 작업들을 발굴한 당사자가 수기로 남긴 노트를 말한다. 이는 이후 발굴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참고가 된다.)들과 유물을 넣어둔 봉투의 기록들을 함께 꼼꼼히 비교·분석을 실시합니다.
이를 토대로 2000년부터 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성과들을 발표하였고, 2002년에는 이를 토대로 박사학위까지 받게 됩니다. 그는 낙랑토성 내에 청동기와 유리를 생산하는 공방이 있음을 밝혀냈고, 낙랑 봉니가 출토한 정확한 위치들을 복원해냈으며, 이 외에도 낙랑에서 제작된 여러 유물들의 제작기법 등을 밝혀내 당시 기초적인 연구조차 실시되지 못했던 낙랑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2008년에는 ‘일본에 있는 낙랑 유물‘이라는 도서를 편찬해 일본에 있는 낙랑 유물들을 정리하게 됩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에 산재해 있는 다양한 낙랑 유물은 이미 학자들에 의해 분석되었고,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일부 조작설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토대로 모든 유물들이 조작되었다는 그런 터무니 없는 조작설은 일축시킬 수 있습니다.
쓰다보니 매우 긴 글이 되었는데요. 마지막 한 가지만 더 추가하자면 최근에는 낙랑토기가 중심이긴 하지만, 한반도 중부지역(경기, 서울, 강원) 지역을 중심으로 약 30여개의 유적지에서 상당한 양의 낙랑토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역시 낙랑 유물 조작설을 일축시킬 수 있는 좋은 고고학적 증거가 아닐 까 합니다.
이상 글을 줄이고자 합니다. 두서 없이 써서 중간중간에 좀 어색한 문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