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만큼, 오히려 더 어려운게 표백이에요.
백색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인 것을..물론 일반 백성이 새하얀 옷을 입진 않았겠지만요...
그보다는 마이밀키님 말씀대로 조선이 추구하던 미적 목표인거죠.
고려시대만 해도 다양한 색을 사용했는데...그 염색기술이 다 사라질리가 없죠.
삼국시대나 고려시대까지는 사극을 봐도 혹은 고구려 고분벽화를 봐도 백성들도 염색한 옷을 입고 다니죠...
가옥과 의복..가구나 식기류등 생활모습도 조선보다 훨씬 더 윤택해 보이고 이유는 고대국가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상업과 대외무역을 장려했고 부국강병을 추구하던 시대죠...실용적이고 국제적인 시대고..서로 부족한게 있으면 재화를 서로 교환하고 팔기위한 물품도 대량으로 생산하고...국제적인 정보와 재화와 물류가 서로 넘나들던 시대죠..그러니 국가의 조세수입과 백성들의 삶이 좀더 윤택했죠...백성들도 농사만 짓지 않으니 더 안정적인 삶을 살수있는거고..
하지만 조선시대와선 대외무역도 금지되고 해금정책...거기다 상업을 천시하고 농사만을 강조했죠...당연히 서로간의 교류가 없으니 생산과 기술은 쇠퇴하고 서로간의 재화와 물류..정보,기술등의 교류도 거의명맥이 끊기다 보니 문명수준이 점차 퇴보하게 된거죠... 덤으로 국가의 조세수입과 백성들의 삶도 오로지 농사만 매달리는 형태로 생활수준도 떨어지고....
그러다 전란 혹은 재난..전염병이라도 터지면 백성들이 대량으로 죽게되고 그나마 남아있던 상품이나 여러가지 문명의 이기를 만들기위한 기술자들도 죽게되면 더이상 어디서 배워올 곳도 없게 되는 거죠...대외교역을 하지않으니...그러면 완전히 사라지거나 한참 퇴보한 수준의 것 밖에는 만들수없게 되는 거고...
밖의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발달되고 있는지도 알수없고 배워올수도 없고...
조선시대 백성들의 의복은 사실 흰색은 거의 없죠...누리끼리한 아이보리색에 가까운 염색되지 않은 천연색이 대부분이라는...
염색도 돈이 있어야 하는건데....성리학 탈레반들이 지배한 조선은 오로지 농사만을 강조했기에...국가의 재정도 백성들의 삶도 가장 열악했던 시대라는....
성리학 탈레반들이 지배한 조선은 사치품을 금한다면서 고대국가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생산되던 비단과 여러 사치품의 생산도 중단시키죠..
그러면서 왕실과 양반들이 필요한 것은 중국에서 수입해다 썼다는....
이러니 전반적인 국력과 문명수준이 조선시대에 와서 계속해서 퇴보할수밖에....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흰옷을 안입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네요...속에 입는 옷은 거의 다 흰옷이죠...겉에도 물론 흰옷도 입겠죠....다만 조선시대처럼 거의 모든 백성들이 흰옷만 입고 다니진 않았다는것은 고구려 고분벽화만 봐도 알수있죠....그만큼 조선시대 백성들의 삶에 여유가 없었다는 말이죠...
조선왕조자체가 문명의 퇴보죠...뭐 틀린거 있나요?..한글창제제외하고.....간단하게 시대를 고증하여 만든 우리나라 사극들만 봐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 생활모습이 얼마나 퇴보했는지는 바로 알수있지 않나요???....실제로도 성리학 탈레반이 지배한 조선왕조가 그런 멍청한 제도로 나라를 다스렸기에 그렇게 된거구요....
조선시대 서민 여성 복식,
'저고리의 모양은 반가녀의 것과 유사하였으나 주로 사용된 색상은 흰색이나 두록색 등이었고, 민저고리에 고름만 다른 색으로 달아 입었다. 치마의 형태 또한 반가 부녀자의 것과 비슷하였지만, 길이가 짧고 폭이 좁았다. 치마의 색상은 주로 흰색, 회색, 갈색, 두록색 등을 사용하였으며, 노동할 때에는 흰색이나 갈색의 앞치마를 둘러 활동을 용이하게 하였다.'
(흰 옷만??)
참고로 현재 국가별 1인당 GDP 순위에서 한국보다 앞선 캐나다에 제가 거주 중인데 여기 현지인들은 제가 봐도 안쓰러울 정도의 칙칙한 잠바떼기를 평소 자주 애용합니다.
화려하고 세련된 옷은 대부분 동양 이민자들이 주로 입지요. 그렇다고 현지 캐나다인을 가난하다거나 문명이 퇴보(?)했다고 말하지는 않아요.
(십수년 전에 탤런트 이승x 씨가 밴쿠버와서 밴쿠버 사는 사람들은 옷차림이 그지 같다고 쏴 대고 간 모양이지만... 못된 x)
그냥 눈에 보이는 것만을 기록한 사서나 그림을 맹신하며 그 문명 전체를 판별하는 주요 잣대로 보는건 오류로 보여집니다.
하물며 TV 사극을 예시로? 우리나라 사극의 복식 고증에 오류가 있다는 비판은 뿌리가 깊습니다.
평민의 상투도 마치 천민이 봉두난발한듯이 했다고 비난을 받는 터에...
그리스 문명의 양대 산맥인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비교하며 어느 미국 교수가 논평했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
후대에 우리는 아테네가 실제보다 더 찬란했다고 여기고, 스파르타는 실제보다 볼품 없었다고 여기는데 이것은 당연하다고 말입니다.
화려한 물질문명을 더 많이 추구한 아테네는 후세에 더 많은 유물을 남기고 자신들을 광고하며 과대평가를 받을 수 있으나,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문명을 추구한 스파르타식 정신문화가 후세에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을 수 밖에 없지요.
역시 화려함을 멀리하고 검소, 질박함을 찬양했던 조선 문명이, 후대에 들어 물질만능주의 속을 헤매이며 그 정신 문명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아니 이해 해보려 노력조차 안하는 사람들에게 불공정하게 저평가 받는건 너무나 당연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선도 분명 세계에 내세울만한 수 많은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동방의 주자라고 불렸던 퇴계 이황, 조선 유교문명의 극치 사군자, 서예, 그에 따른 종이, 서적의 발달, 시대를 뛰어넘는 복지 시스템 등등),
하물며 스파르타 따위는 비교도 안될 첨단 과학 문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고작 복식 문화를 가지고 한 문명을 폄훼하시는 건 공감할 수 없군요.
조선이 남긴건 마치 한글창제 밖에 없는 듯이 말씀하시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1983년 일본에서 편찬한 ‘과학사기술사사전’에 따르면 1400~1450년까지의 주요 업적으로 한국(Korea)이 29건, 중국(China)이 5건, 일본(Japan)이 0건이며, 동아시아 이외의 전 지역이 28건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제시했다.'
퇴보 퇴보 하시는데 사실 그대로 기록하고 후대의 공정한 판별을 원했던 조선인들과는 다르게, 나무만 바라보고 마치 숲인냥 오해하시는 어느 분께도 제가 말씀드릴 밖에...
'왜 조선인들보다 퇴보하셨는지??'
테러단체인 탈레반과 조선을 비교?
이건 제가 논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고요.
조선과는 비교도 안될 암흑시기의 서구 중세조차 재평가하고 있는 현 서구의 움직임도 아셨으면 합니다.
조선의 과학이란 게 엄청났군요; 하나부터 열까지 흠잡을데없이 통쾌한 말씀이십니다.
당대 초강대국이던 중국이나 이슬람을 제치고, 조선의 과학업적이 초기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나 많다니 실로 대단한 유토피아였나 봅니다! 우리가 생각한 전근대적 국가의 이미지보다 훨씬 살기좋고 부국강병을 이룬 선진국이었나봅니다
이 말은 일본이 만들어 낸 말이죠
실제 60년대 70년대 이 의복 색깔 가지고 두 부류로 나뉘어, 선생이란 사람들이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한 부류는 제목처럼 염색기술의 미비, 또 한 부류는 고도로 발달된 염색기술.
실제 천연상태에서 표현하기 제일 어려운 색이 흰색이라건 알만한 사람들은 압니다
지금처럼 화학성분을 이용해서 염색하는 작금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노르베르트 베버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던가요? 이걸 보면 구한말의 어린이들이 입던 옷이 얼마나 천연염료 염색으로 알록달록한지 이야기하면서 이게 인공염료가 들어오면서 칙칙해지고 있다고 한탄하는 부분이 나오지요. 염료부족도, 기술부족도 아닙니다. 일정 계층 이상의 어른(어린이와 천민들은 염색된 옷 입습니다.)은 흰 옷을 입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을 뿐이지요.
백의민족이라는 것이 흰색옷을 즐겨 입는 민족이라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흰색 옷이 아니라 그저 화려한 무늬가 없는 옷을 즐겨 입었다해서 백의민족이라는 말로 쓰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흰색 옷을 즐겨 입었다는 현 통설을 존중하여
흰색 옷을 즐겨입는 풍속은 부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환선비동이전 부여국전에 따르면
부여사람들은 국내에 있을 때는 흰색을 숭상하고 흰 베로 만든 큰 소매달린 도포와 바지.. 그리고 가죽신을 신었다고 합니다.
다만 국외로 나갈 때는 비단 옷, 모직 옷을 즐겨 입고
대인은 그 위에 담비나 여우 살쾡이 원숭이 등.. 가죽으로 만든 갓옷 입으며
금, 은으로 머리를 장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수님 성함은 떠오르지 않지만, 성신여대 의류학과 교수님이 쓰신 "한국 복식사"에 보면
우리 조상이 고대로부터 흰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고)조선부터 고려시대까지 오색 복식이 널리 유행했고, 귀족 노예 구분 없이 기본적으로 오색 옷감을 입어왔다고 했습니다.
귀족, 양민, 노예의 복식적 구분은 장신구가 그 역할을 했다고 하더군요.
우리민족의 장신구 모양도 다른 문화권과 다르게 꽃 문양 보다는 잎사귀 문양을 선호했다고 했던게 기억나네요
우리민족은 기마민족의 후예로서 중국의 짱께들과 왜구들과는 다르게 남자든 여자든 귀걸이를 하고 다녔죠....
몽골족이나 여진족..거란족등 모든 동북아시아의 기마민족들은 중국짱께나 왜인들과는 다르게 귀걸이를 하고 다녔죠...
아래로 노예부터 평민..귀족...왕족과 군주에 이르기까지...남녀노소 가리지않고...다만 그 귀걸이의 재질이 금,은,옥등 여러 귀한걸로 만들어졌느냐..아니면 싸구려 재질로 만들어졌는냐로 신분을 구별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수천년간 내려오던 기마민족족 풍습이 성리학에 물든 조선시대에 드뎌 가장 못난 암군 선조가 금하므로서 귀걸이를 차는 풍습이 사라져 갑니다...
임진왜란때 명군이 조선인들의 수급을 베어서 일본군으로 둔갑시켜서 거짓전공으로 삼았는데 이때 조선인과 왜인을 구별하는 방법으로서 명나라 관리들에게 조선조정이 가르쳐준게 조선인은 모든 남성이 다 귀걸이를 했다고 하죠....그렇게 구분법을 가르쳐서 명군의 조선인 학살을 조금이나마 막으려고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