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46890
‘인터넷 선구자’의 눈빛은 어느새 70년대 말로 거슬러갔다.
“대한민국 국적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을 스카우트하던 3공화국의 러브 콜을 받고 들어왔습니다. 당시 스카우트된 이들에게는 각종 혜택이 뒤따랐습니다. 박사 학위 받은 지 몇 년 안 되는 신출내기에게까지 기사 딸린 차를 줬으니까요. 그만큼 정부는 과학 기술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입니다.”
미국 UCLA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연구하던 그는 79년 2월 입국해서 전자기술연구소의 컴퓨터 시스템 개발 부장을 맡았다. 6,70명의 연구원과 함께 그에게 떨어진 임무는 ‘컴퓨터 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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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20년이 넘는 한국의 역사가 후발 국가들에게 많은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20년이 넘는 인터넷 기술자는 세계적으로 드물지요. 유럽에도 없습니다. 그런 소중한 인적 인프라가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지금의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서 ‘인터넷 강국’이라는 대목에 유난히 힘이 실린 까닭은 무엇일까? 컬러 TV를 겨우 만들기 시작한 배고픈 조국에 뿌린 씨앗이 풍요로운 열매를 맺은 자랑스러움 때문이리라. 그는 그렇게 조국의 과학 발전에 이바지했던 학자로 기억되길 바랄 뿐이다. “과학자가 연구를 하는 이유는 내 이웃과 조국, 나아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꾸미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UN에 인터넷 기구를 창설하려는 것도 궤를 같이 한다. “정보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구촌 식구들을 우리가 나서서 도와준다면 한국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선한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었다. 인터넷 선구자는 인류를 향한 씨앗을 가슴에 조용히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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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세슘 때문에 ㅂㄷ거리는 건 알겠는데, 좀만 더 열심히 찾아보고~
자폭원숭이... 측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