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북계 영토와 그 지명이 혼탁해진 것은
금ㆍ원 시대 200여 년을 거치면서로 보여집니다
고려사와 그 후대의 조선왕조실록, 동국통감 등의 사서는 왕건의 평양이 고구려의 평양이요 선인왕검의 왕험성이라 적고 있으나
1) 삼국사기 근거, 신라는 고구려의 평양을 신라 영토로 편입한 사실이 없으며
2) 고구려 평양에 설치하고자 한 당나라 안동도호부는 실제 평양에 설치되지 못 했으며
3) 고구려 평양 지역은 곧 발해의 영토가 되었으며
4) 평양이라는 지명이 고구려 평양을 제하고도 여러 곳 등장하며
5) 현 평양의 기자사당과 무덤은 금ㆍ원 시대와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 등의 사실 교차로서
현 평양은 고려 서경이 맞으나 고구려 평양이 아님을 고찰한 바 있습니다
압록강의 경우
1) 10세기 중반에 고려가 요동까지 진출했으며
2) 10세기 후반에 압록강 안팎에 거주한 여진족을 고려가 소개시켜 일부는 복속하고 일부는 백두산 (길림합달령) 북쪽으로 내쫓았으며
3) 그 압록강을 따라 고려가 성보를 구축했으며
4) 요가 993에 대침략하였을 시에 강화협정을 통하여 이렇게 조성된 고려 서북계에 더하여 요나라의 요심지역과 여진의 경계로서의 압록강 동쪽, 이른 바 강동6주를 고려에 할양했으며
5) 그 압록강이 요나라 요심지역과 인접하는 등의
사서 기록 교차 검증을 통하여
지금의 압록강이 저 시대 압록강이 아니라
저 시대 압록강은 혼하~태자하라는 것을 고찰한 바 있습니다
또한 고려의 북계가
잉커우~태자하/혼하~장춘~(하얼빈)~길림~목단강이라는 것을 고찰하였고
흑룡강성과 연해주 전체가 고려의 속한, 즉 간접이든 직접이든 고려의 지배를 받았을 가능성 역시 추정한 바 있습니다
명나라와 고려의 경계는
1) 현 혼하와 본계 사이의 봉집현으로
2) 이 봉집현을 중심으로 동서 500리를 두 나라가 접했으며
3) 명나라는 여말선초 우리의 영역을 봉집현과 길림합달령 이남으로 인식했으며
4) 조선의 국력 약해지고 명나라의 지배질서에 순응하면서, 또 조선에 복속한 여진족이 명나라로 이탈하면서 조선의 북계가 봉집현에서 봉황성으로 축소가 되고 두만강 이북 지역 역시 지배력을 상실하면서
5) 16세기를 거쳐 17세기에는 현 압록강~두만강으로 북계가 고착되는 과정을 고찰하였습니다
고려시대의 고려에 영토사를 집중 연구하면
아래로는 조선시대 영토사,
위로는 발해, 고구려 영토사를 추적할 수 있으며
나아가 대륙백제와 삼조선, 위만조선의 위치 역시 그 윤곽을 잡아갈 수 있습니다
요하의 위치 변화,
유성과 룡성의 위치 변화,
패수의 위치 등을 고찰하는 것 역시 매우 심대히 요구된다 하겠습니다